서울과학고 수학동아리 MO의 1, 2학년 학생들이 21일 학교 수학강의실에서 올 3월 아시아태평양수학올림피아드에서 출제됐던 문제를 같이 풀면서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재웅 김지수 김선우 유호문 지은수 서제니 김면후 학생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혜화로 서울과학고 ‘수학강의 1호실’. 이 학교 수학 동아리 MO(Mathematics Olympiad)의 회원 7명이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가득 적어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 문제는 올 3월 아시아태평양수학올림피아드 5번 문제로 서울에서 치러진 이 시험에 응시했던 2학년 김선우 학생이 문제를 암기해 온 것이다. 이번 학기 기말고사를 앞두고 연습문제로 함께 풀고 있었다.》
서울과학고는 국내 4개 과학영재고 중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꼽힌다. 매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 출전할 한국국가대표 선발에서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다수 선발된다. 2011년에는 한국대표 6명이 모두 서울과학고 출신이었으며 2010년과 2012년에는 6명 중 각각 5명이 이 학교 출신이다. 서울과학고에서도 ‘수학에 미친’ 학생들이 모인 곳이 동아리 MO다.
회원은 선배들이 낸 필기시험과 면접 등을 거쳐 선발되며 올해는 7명을 뽑는데 19명이 지원했다. 2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이고, 누구라도 어려운 문제를 같이 풀자고 소집하면 모인다.
지난해에는 김선우 학생이 제안한 서울 시내 택시 요금에 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매일 영업용 택시 한 대의 수입 편차는 다르지만 현재의 운임체계와 평균 주행거리, 기름값 등을 기초로 수입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김선우 군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여행을 가는 도중에도 불현듯 연구 주제가 떠오르곤 한다”며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수학적으로 연구 발전시키는 과정이 재밌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에서는 학생들끼리의 동아리 활동 외에도 대학 교수와 공동 연구하는 ‘연구교육(R&E·Research and Education)’이나 과제 연구도 진행된다. 국내에서 수학과 과학 분야를 포함해 보통 한 해 60여 개의 R&E 프로젝트가 운영되며 올해 수학 관련 R&E팀만 13개라고 한다. 수학 R&E에 참가한 학생들은 ‘복잡유체의 유동특성에 관한 연구’(서울대), ‘미니멀 곡면에 대한 수리모델과 3차원 입체 프린팅 연구’(고려대) 등의 주제로 대학 및 연구기관에 속한 전문가와 함께 3월부터 12월까지 연구 활동을 한다.
고교생이라 연구 수준이 높지 않으려니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윤주 서울과학고 수학 교사는 “지난해 서울과학고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한 연구가 외국 수학저널인 ‘이산수학(Discrete Mathematics)’에 실렸고 삼성휴먼테크 논문대회에서는 서울과학고가 고등학교 부문에서 최다 수상학교로 선정됐다”고 소개했다.
MO 멤버들처럼 과학영재학교에는 세계 최고를 목표로 노력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수학엘리트 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공대의 A 교수는 “공학분야 전공 수업을 받으려면 고차편미분 방정식을 풀고 고급 통계를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 같은 대학 수업용 수학은커녕 기본적인 미적분도 못해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전공 강의보다 기초 수학 교육을 먼저 가르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대는 부진한 학생들의 수학 실력 향상을 위해 ‘학습 도우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수학 잘하는 고학년 선배가 후배를 맡아 지도하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의 수학 성적이 아직은 희망적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3년마다 시행하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에서 한국의 평균 성적은 2009년 전체 65개 평가 대상 국가 중 중국, 싱가포르, 홍콩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그러나 나라별로 성적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눌 때 한국은 최상위인 6등급 학생 비율이 2006년 9.1%에서 2009년 7.8%로 줄었다. 이는 중국 상하이(上海), 싱가포르, 홍콩에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26.6%, 15.6%, 10.8%인 것보다 낮다.
수학 잘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현상은 IMO 성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5년간 4강을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IMO 기록은 2011년에 13위를 기록하며 성적이 뚝 떨어져 7위인 북한보다 뒤졌다.
IMO 한국 대표팀을 맡고 있는 송용진 인하대 교수(수학과)는 “지난해 순위가 떨어진 것은 참가 학생의 실수도 있었다”면서도 “2009년 발표된 정부의 올림피아드 축소 정책 때문에 IMO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과학고 및 대학입시 등에 IMO 등 수학올림피아드 수상 실적을 반영하지 않도록 하면서 올림피아드 응시생이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서울과학고 수학동아리 MO가 발행하는 ‘셈사랑’. 교내에서 5000원씩 받고 판매하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고 한다.
송 교수는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 내신 및 수능 성적에 피해를 봐 대학 가기 힘들다는 의식이 만연하다”며 “수학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는 효과가 높은 IMO의 좋은 취지마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수학 영재가 줄어드는 현상 외에 일반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수학 교육의 위기로 꼽힌다. 정부는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줄여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높이기 위해 올해 초 ‘실생활 수학’과 스토리텔링 서술 방식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는 전혀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 현장 교사들의 평가다. 경기도 모 중학교 B 교사는 “수업 시간에 들어가면 4분의 1 정도는 자거나 떠들면서 집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중학교는 나은 편이고 일반고에서는 한 반에 절반 이상이 수학을 포기하고 잠을 잔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는 “지나치게 어려운 시험이 수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결국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시험 문제를 풀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다시 학원을 찾게 되고 문제풀이 위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다”고 지적했다.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