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살 과학자 피터 힉스는 1964년 영국 에든버러대에서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외모가 유행에 한참 뒤처진 듯한" 힉스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학술지에 짧은 논문 한 편을 보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일본 학자와 영국 학자가 완성한 이론에서 작은 허점을 발견하고 그 허점을 반박한 글이었다. 힉스는 평소에도 "가족보다 학문을 앞에 둔다"는 말을 들을 만큼 연구에만 몰두했다.
▶힉스는 우주 탄생 초기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갖게 해주는 가상(假想)의 입자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대학 강사 신분이었던 힉스는 학술지에 두 번째 논문을 보냈으나 게재를 거절당했다. "더 이상 물리학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힉스는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매우 수줍음을 탔다. 논문 게재를 거절했다는 소식에 그는 "저들이 내 이론을 이해 못했다"며 화를 냈다. 힉스는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보냈고, 그해 논문이 실렸다. 힉스는 여러 물리학자와는 다른 생각에 골몰했다. 그는 물리학계가 찾아내야 할 가상 입자가 '무거운 입자'일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해왔다. 한때 우주 만물이 물과 불, 흙, 공기로 만들어졌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이 원자(原子)를 발견한 후 핵폭탄이 나왔고, 전자를 발견한 뒤에는 온갖 전자 제품이 인간 사회에 소개됐다. 엊그제 스위스에 있는 CERN은 거대강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힉스 입자 발견으로 어떤 발명품이 탄생할지 알 수 없다. 힉스 입자가 우주 탄생의 출발점이라면 인간은 언젠가 힉스 입자를 이용해 우주를 발명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물리학은 용어부터 너무 어렵다. 우주 탄생 초기에 '힉스 입자가 다른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졌다'는 설명도 아리송하다. 보청기를 낀 여든셋 노인 힉스는 무신론자다. 그는 '신의 입자'라는 말도 싫어한다. 힉스는 화두(話頭) 하나를 물리학계에 뚝 띄워놓고 세상이 자기 이론을 증명할 때까지 기다렸다. 해답이 나오기까지 48년이 걸렸다. 그래도 죽기 전에 해답을 들어 행복할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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