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6일 월요일

호기심 · 요령 있으면 6개월 만에 누구나 1등 될 수 있어"



"시험의 전략을 익혀 두면 누구나 성적을 올릴 수 있다"
"호기심 · 요령 있으면 6개월 만에 누구나 1등 될 수 있어"
'시험의 달인' 건국대병원 송명근 교수


건국대병원 송명근(56) 교수는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 전문의로 통한다. 1992년 한국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에 성공한 뒤 지금까지 260여 차례 메스를 들었다. 까다로운 수술이지만 수술 성공률이 98%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요즘도 송 교수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 각국 의사들이 한국을 찾는다.

하지만 학창시절 그는 엉뚱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미'와 '양'이 수두룩했다. 학교 공부 대신 책을 즐겨 읽었다. 심지어 대입을 앞둔 고3 시절까지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에 심취했다. 그러나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고3 시절 전교 280등에서 6개월 만에 1등으로 성적을 끌어올려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다. 그래서 '시험의 달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송 교수는 공부방법을 "호기심의 충족이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설명한다. 흥미있는 분야를 섭렵, 공부의 기초를 쌓으면 자연스레 문리(文理)가 트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호기심이 공부를 재밌게 만들고 여기다 시험의 전략(요령, 유형)을 익혀두면 누구나 6개월 만에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자는 건국대 병원 집무실에서 송 교수를 만나 2시간 넘게 흥미진진한 공부 이야기를 들었다.

■엉뚱한 답안작성

한국전쟁 후 미군 막사에서 수업을 받아야 했던 서울 돈암초등학교 시절, 한 반 학생수가 100명이나 됐다고 한다. 키가 컸던 송 교수는 언제나 맨 뒷줄에 앉았다.

"뒤에 앉아서 선생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알고 싶어도 알 재간이 없었죠."
게다가 시험을 치면 엉뚱하게 답하기 일쑤였다. 초등 3학년 때의 일이다. '모래는 어디서 나오나요?'라는 문제가 출제됐다. 정답은 '강'이었지만 송 교수는 '○○상회'라고 썼다. 지난 번 집 공사 때 모래를 구입했던 곳을 떠올린 것이다.

'빨간 불이 켜지면 어떻게 하나요?'란 문제는 '신호등 앞에 멈춘다'고 쓰지 않고 '좌회전 차량을 보면서 재빨리 건넌다'고 답했다. 당시엔 신호등이나 횡단보도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송 교수는 '3월은 무슨 계절이냐'는 문제엔 '겨울'이라고 답했다. 담임 선생님이 보기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당시 3월에 누나의 입학식(연세대 물리학과)이 있었는데 눈이 무릎까지 쌓였어요. 게다가 경북 영천의 군부대에 입대한 사촌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살을 에는 추위로 동상을 입었다'는 표현이 떠올랐죠. 그래서 겨울이라고 썼어요."

결국 그가 받은 점수는 68점. 송 교수는 아직도 그 점수를 기억한다고 했다. 성적을 아버지(송영환, 2001년 작고)께 보여드리며 차근차근 오답의 이유를 설명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근이 답도 일리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틀릴 수 있어. 그렇다고 존경심을 잊어선 안 돼. 과학자가 한 말도 항상 옳을 수는 없단다. 과학의 지식은 언제나 새로운 학설로 대체되기 마련이지. 지식이 진보하지 않으면 지금의 역사가 석기시대에 머물렀을 거야."

송 교수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하늘 같은 스승도 틀릴 수 있구나"하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책과 친해졌다. 책을 통해 선생님의 모호하거나 부정확한 지식들을 확인하며 새로운 사실을 깨쳤다.

"당시 책이란 게 뭐 있었나요. 학교 도서관이나 동네 책 대여점, 청계천 헌책방을 돌며 책을 읽었습니다. 과학과 수학분야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대학 교재로 쓰는 책들까지 읽게 됐죠.

■아버지는 든든한 후원자

학교수업엔 원체 흥미가 없었다. 게다가 과학수업은 딱딱한 이론 중심이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없었다. 수업에 흥미를 잃으니 성적이 오를 수 없었다. "5학년 중반까지 '미'와 '양'이 수두룩했다"고 했다.

묵묵히 그를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금은 걱정이 됐던지 "중학교에 들어가야 하니 이제 공부 좀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엔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이다.

"반에서 25등(70명 중에서)쯤 하다가 두 달 만에 3등까지 뛰어올랐고 6학년 말에는 1등을 했어요. 6개월 만에 성적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거지요. 책을 읽고 자유롭게 사고하며 교과서와 상관없는 시험답을 써서 60~70점을 받았지만 한번 공부하겠다고 결심하면 못할 게 없었어요. 암기 위주의 교육 보다는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아 공부의 기본을 닦은 것이 주효했지요.

중학교에 입학한 뒤 신이 났다고 했다. "'물상'이란 과목을 배우는데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달도 안되어서 실망하고 만다.

"처음 반짝 재미있다가 두 달 만에 흥미를 잃었어요. 선생님이 물리의 현상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수식으로 계산법을 가르치는 거예요. 시험을 쳐도 선생님이 원하는 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중3까지 성적도 중위권이었다. 하지만 고교 진학을 위해 '지적 호기심'을 잠시 접어두고 학교공부에 매진했다. 6개월 정도 피치를 올리니 중3 졸업 무렵에는 다시 1~2등을 차지했다.

고교 진학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호기심 충족을 위한 '교실 밖' 공부에만 열을 올렸다. 고교시절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빠져든 시절이었다"고 한다. 고3 초반까지 전교 석차는 280등. 서울대 진학은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대입 시험을 6개월 앞두고 공부를 하려니까 힘이 들더군요. 고입과 달리 공부할 게 너무 많았어요. 그때부터 하루 3시간만 자고 공부에 매달렸어요. 국어는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죠. 수학과 과학은 과학적 배경지식이 쌓여선지 기출 문제를 풀어봤더니 답이 보였어요."

송 교수는 서울대 의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그러나 의대에 진학해서도 공부방법은 다르지 않았다.

"기본서적을 다 읽고 시험을 치르면 성적이 형편없었어요. 동료들에게 공부방법을 물었더니 시험에 났던 것을 모아 둔 '족보'가 있다는 거예요. '의학을 공부한다는 의대생이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시험에 났던 문제를 달달 외워서 어떻게 환자를 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미련하게 전과목 책을 다 읽고 공부했습니다."

■학교시험을 위한 공부, 강요하지 않아

그는 어떤 시험이든 6개월이면 자신있다고 했다. 지금껏 시험을 쳐서 떨어져 본 일이 없다. 유학시절, 미국 의사자격 시험도 6개월 만에 끝냈다.

"비결은 따로 없어요. 제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좋은 부모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저를 이해하셨고 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셨죠. 궁금한 점을 풀어주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으로 절 데리고 가셨습니다. 입학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공부를 택하셨지요. 당연히 공부가 재밌을 수밖에 없었어요."

송 교수는 아들 준영(28), 딸 윤주(26) 씨에게도 학교시험을 위한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 현재 두 자녀 모두 아버지 뒤를 이어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성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보다 사물에 대한 판단 능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쳤고 '왜''어떻게'라는 의문을 갖게 했어요. 아이들에게 의대 진학을 권유한 적도 없어요. 오히려 의대 진학을 말렸지요. 끝까지 하겠다고 우겨요. 그래서 '나중에라도 힘들다고 불평하지 말라'고 했죠."

스스로 찾아 읽는 공부가 쌓이면서 호기심이 더욱 커지는 상승효과가 일어나 공부에 자극이 된다. 그 자극은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공부의 길로 이어진다. 배경지식이 깊어지면 막연히 알던 지식이 '자기 것'이 되는 신기한 현상을 체험하게 된다. 창의적 사고는 덤으로 갖게 된다.

"요즘 부모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아이들의 호기심을 사교육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입시라는 틀에 가둬놓고 학교에서 가르친 것만으로 점수 따고, 1점에 울고불고 하는 공부라면 미래가 없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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