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고 진학이 명문대 입학을 보장해줄까. 전국의 수많은 초·중학생들이 저마다 희망을 안고 특목고 입시에 매달린다. 그러나 정작 특목고생과 학부모들은 "특목고 진학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충고한다. 특목고 진학 후 성적이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친 학생들의 잿빛 사연 때문이다. 한 학부모는 "상위권 학생끼리 경쟁할 때 성적 격차가 더 크게 드러난다"며 "특목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입시준비 보다 몇 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고에서 '영어' 실력만 믿지 마라
영어특기자로 서울지역 외고에 입학한 A양. 영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토플시험을 치르면 대부분 만점을 받았을 정도. 자신만만했던 A양은 '대학도 영어특기자로 가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내신,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어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믿었던 수시 영어특기자 전형에서 모두 낙방한 것이다. 수능성적 비중이 큰 정시전형은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재수학원에 다니는 신세가 됐다.
외고 졸업생들은 "외고에서 영어실력만 믿다가는 큰코다친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학년에 외국어특기자로 들어오는 학생만 20명이 넘고, 일반전형 합격생들도 그에 못지않은 영어실력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 영어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뜻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학부모 B씨는 아이를 외고에서 일반고로 전학시켰다. 딸 친구의 부모로부터 "그 집 아이가 성적 때문에 울 때가 많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였다. B씨는 "아이가 욕심이 많아 입학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만족할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입학 후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표정도 어두워지는 것이 걱정됐던 B씨는 아이와 의논한 끝에 외고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어렵게 들어간 학교지만, 아이가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인 문제도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 올해 외고를 졸업한 C양은 "외고생이라고 해서 모두 부유하지는 않다"며 "친구들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이런 경제적 상황은 대입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외고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수시전형에서는 내신 외에 비교과영역이 중요하게 반영돼요. 그런데 경제적 형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걸 쌓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비교과 경력이 없다 보니 정시만 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죠."
상위권 학생 간의 치열한 경쟁은 과학고에서도 벌어진다. 특히 수학·과학 분야에는 타고난 영재들이 많은 만큼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D씨는 "펑펑 놀아서 성적이 떨어진 거라면 차라리 속편했을 것"이라며 "정말 죽어라 노력하는데도 옆 친구를 따라잡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라고 한탄했다.
"상위 10% 아이들 빼고는 전부 다 한번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상위권 아이들은 자존심이 세다 보니 누구에게도 심정을 토로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좌절하고 포기해 버리기 쉬워요. 아이의 이런 심리상태를 잘 살펴주는 것이 과학고 학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죽어라 노력해도 친구 못따라가 좌절
과학고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하지만 기숙사와 학교가 아이들을 100% 관리해주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자율'을 강조하는 과학고에서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도 깨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율'은 때로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 학부모 E씨는 입학 1년 만에 아이를 기숙사에서 나오게 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통제불능'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집으로 불러들여 몇 달간 설득한 뒤에야 겨우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1~2학년 때 바닥을 친 내신 때문에 수시합격이 어려워진 것이다. E씨는 "과학고에 보내기만 하면 부모의 몫은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고 털어놨다.
민사고 학부모 F씨는 "1학년 때는 '지옥'이라고 할 만큼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아이를 민사고에 보내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기쁨은 한순간이었다. 선행학습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1학년 내내 그야말로 '밑바닥을 깔아주는' 신세였다. 성적표에도 C가 즐비했다. "유아기를 외국에서 보내고 귀국 후 외국인학교를 다녔는데 영어조차 C를 받았을 정도"라고 했다. 속이 상하다 보니 "왜 너는 친구들처럼 못 하느냐"며 아이를 야단치고 면박주기 일쑤였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이 늘면서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F씨는 강남 엄마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교육정보를 모으고, 방학이 되면 아이가 어려워하는 과목 위주로 그룹과외, 특강을 듣게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며 아이를 도왔다. "1학년 때 공부는 하지 않고 동아리 활동 등에만 신경 쓰는 아이를 참고 보기 힘들었다"며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마저 없었다면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진작 학교를 그만 뒀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목고, 보낸 뒤가 더 힘들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 G씨는 "민사고 엄마들 중에는 학부모 모임 참석 후 앓아 눕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3학년 누구는 어느 대학에 붙었고, 2학년 누구는 어느 국제대회에서 수상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다음에야 엄마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답답해서 선생님께 상담을 청하면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있다. 다만, 뛰어난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하라"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이성적으로는 학교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입장에서는 자꾸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조급한 엄마들은 매일 밤마다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하루 일과와 공부 상황을 체크하기도 한다. 그녀는 "엄마와 아이 모두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민사고 진학을 재고해 보라"고 조언했다.
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철저히 성적관리를 하고, 다양한 과외활동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G씨는 "아이 혼자 내버려둬도 아이비리그에 척척 간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하지만 그것은 정말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한탄했다.
[조선일보]
외고에서 '영어' 실력만 믿지 마라
영어특기자로 서울지역 외고에 입학한 A양. 영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토플시험을 치르면 대부분 만점을 받았을 정도. 자신만만했던 A양은 '대학도 영어특기자로 가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내신, 모의고사 성적이 형편없어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믿었던 수시 영어특기자 전형에서 모두 낙방한 것이다. 수능성적 비중이 큰 정시전형은 지원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재수학원에 다니는 신세가 됐다.
외고 졸업생들은 "외고에서 영어실력만 믿다가는 큰코다친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학년에 외국어특기자로 들어오는 학생만 20명이 넘고, 일반전형 합격생들도 그에 못지않은 영어실력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 영어만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는 뜻이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학부모 B씨는 아이를 외고에서 일반고로 전학시켰다. 딸 친구의 부모로부터 "그 집 아이가 성적 때문에 울 때가 많다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였다. B씨는 "아이가 욕심이 많아 입학 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만족할만한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입학 후 말수가 점점 적어지고 표정도 어두워지는 것이 걱정됐던 B씨는 아이와 의논한 끝에 외고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어렵게 들어간 학교지만, 아이가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인 문제도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 올해 외고를 졸업한 C양은 "외고생이라고 해서 모두 부유하지는 않다"며 "친구들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 이런 경제적 상황은 대입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외고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수시전형에서는 내신 외에 비교과영역이 중요하게 반영돼요. 그런데 경제적 형편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런 걸 쌓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비교과 경력이 없다 보니 정시만 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많죠."
상위권 학생 간의 치열한 경쟁은 과학고에서도 벌어진다. 특히 수학·과학 분야에는 타고난 영재들이 많은 만큼 그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목동에 사는 학부모 D씨는 "펑펑 놀아서 성적이 떨어진 거라면 차라리 속편했을 것"이라며 "정말 죽어라 노력하는데도 옆 친구를 따라잡지 못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다"라고 한탄했다.
"상위 10% 아이들 빼고는 전부 다 한번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거예요. 상위권 아이들은 자존심이 세다 보니 누구에게도 심정을 토로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좌절하고 포기해 버리기 쉬워요. 아이의 이런 심리상태를 잘 살펴주는 것이 과학고 학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죽어라 노력해도 친구 못따라가 좌절
과학고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한다. 하지만 기숙사와 학교가 아이들을 100% 관리해주지 않는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의 '자율'을 강조하는 과학고에서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도 깨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는 '자율'은 때로 아이들에게 '독'이 된다. 학부모 E씨는 입학 1년 만에 아이를 기숙사에서 나오게 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통제불능'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집으로 불러들여 몇 달간 설득한 뒤에야 겨우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1~2학년 때 바닥을 친 내신 때문에 수시합격이 어려워진 것이다. E씨는 "과학고에 보내기만 하면 부모의 몫은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고 털어놨다.
민사고 학부모 F씨는 "1학년 때는 '지옥'이라고 할 만큼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학원 한번 보내지 않고 아이를 민사고에 보내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기쁨은 한순간이었다. 선행학습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1학년 내내 그야말로 '밑바닥을 깔아주는' 신세였다. 성적표에도 C가 즐비했다. "유아기를 외국에서 보내고 귀국 후 외국인학교를 다녔는데 영어조차 C를 받았을 정도"라고 했다. 속이 상하다 보니 "왜 너는 친구들처럼 못 하느냐"며 아이를 야단치고 면박주기 일쑤였다.
다행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이 늘면서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F씨는 강남 엄마들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교육정보를 모으고, 방학이 되면 아이가 어려워하는 과목 위주로 그룹과외, 특강을 듣게 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하며 아이를 도왔다. "1학년 때 공부는 하지 않고 동아리 활동 등에만 신경 쓰는 아이를 참고 보기 힘들었다"며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마저 없었다면 아이가 견디지 못하고 진작 학교를 그만 뒀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목고, 보낸 뒤가 더 힘들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 G씨는 "민사고 엄마들 중에는 학부모 모임 참석 후 앓아 눕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3학년 누구는 어느 대학에 붙었고, 2학년 누구는 어느 국제대회에서 수상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수없이 듣기 때문이다. 자기 아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닌 다음에야 엄마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답답해서 선생님께 상담을 청하면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있다. 다만, 뛰어난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 이해하라"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이성적으로는 학교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입장에서는 자꾸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조급한 엄마들은 매일 밤마다 기숙사에 전화를 걸어 하루 일과와 공부 상황을 체크하기도 한다. 그녀는 "엄마와 아이 모두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를 견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다면 민사고 진학을 재고해 보라"고 조언했다.
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철저히 성적관리를 하고, 다양한 과외활동을 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G씨는 "아이 혼자 내버려둬도 아이비리그에 척척 간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하지만 그것은 정말 꿈 같은 이야기"라고 한탄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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