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과학분야 노벨상 13명 배출…한국은 언제쯤 받나?
일본이 올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에서 수상자 4명을 배출하면서 과학부문 역대 수상자수를 13명까지 늘리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까지 과학부문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한국 과학계로선 부럽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분야 노벨상은 어떻게 뽑고 한국 과학자 중 노벨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 한국 수상 어려운 이유는?
=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은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이론이나 실험결과를 제시한 연구자 △특정 현상이나 물질을 처음 발견하거나 만든 연구자 △연구성과가 인류의 삶과 복지에 상당하고 직접적인 기여를 한 연구자들이었다.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노벨상 수상자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1960년대부터 과학자를 배출하기 시작한 한국으로선 노벨상과 거리가 먼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에선 사실상 1980년대부터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영국 독일 미국 등 기초연구 강국과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기초과학 분야에 탄탄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이미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계량적인 분석도 있다. 서울대 자연대는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 피인용 횟수를 검토하고 흥미있는 결과를 내놨다.
미국과학정보연구소(ISI)의 논문인용 횟수를 분석한 결과 25년간 물리학과 화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46명의 평균 논문 피인용 횟수가 물리 5508회, 화학 4871회였다는 것.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ISI 논문 피인용 횟수가 5000회를 넘기는 과학자들이 나오고 있다.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의 연구성과를 인용한 횟수는 5000회를 넘었고, 나노 물질 설계와 합성의 권위자인 유룡 KAIST 화학공학과 교수는 8000회에 육박하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연구결과가 전 세계 과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다. 하지만 아직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과학선진국에 비해 이런 과학자의 숫자가 많지 않다. 노벨상 수상 잠재 후보군의 규모가 작다는 얘기다.
또 노벨상을 받는 수상자들이 짧게는 10~15년 전의 업적, 길게는 40여 년 전의 업적으로 상을 받는다는 점도 한국에는 불리하다. 최근 한국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연구결과와 세계 최초 연구성과를 많이 내고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들 성과는 적어도 10~~20년 후 시대적 해석을 거쳐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다.
김수봉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노벨상은 절대 '벼락치기'는 통하지 않고 탄탄한 학문적 전통이 있어야만 수상할 수 있는 것"이라며 "한국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있지만 단시일 안에 노벨상을 받기는 어렵고 지금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투자하면 2030년께에는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노벨상 수상은 행운과 장수도 중요한 요소다. 노벨상은 반드시 생존해 있는 과학자에게만 수여되기 때문이다. 특정 관심 주제나 인류가 당면한 문제가 수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들이다.
세계 최대 가속기인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최근 가동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실제 이들의 연구성과는 LHC 건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힉스입자, 반물질 등과 맞닿아 있는 것들이었다.
◆ 수상 거론되는 한국 과학자는?
= 한국인 과학자 중에도 노벨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연구성과를 냈거나 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우선 물리학 분야에서는 '양성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의 세계 첫 개발자'로 유명한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이 꼽힌다.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조 박사는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스톡홀름대, 미국 UCLA 등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분야 연구를 선도해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이미 CT, MRI의 첫 개발자들은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다.
중성미자(뉴트리노) 연구의 대가로 불리는 김정욱 고등과학원 명예교수와 김수봉, 임지순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도 이 분야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김정욱 교수는 입자물리 실험을 거쳐 확립된 대통일장이론이 고에너지에서 통일된다는 사실을 초대칭이론의 도입을 통해 처음 증명했다.
또 김수봉 교수는 지난 1998년 대기중성미자에서 중성미자 진동현상을 최초로 관측했고, 2001년에는 현대 물리학의 최대 과제로 꼽혔던 '중성미자도 질량을 가진다'는 가정이 사실임을 규명했다. 이 밖에 입자물리학자인 미국 컬럼비아대 이원용 교수와 브라운대 강경식 박사, 핵물리학자인 프랑스 샤클레연구소 노만규 박사 등도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
화학 분야에서는 박홍근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 피터 김 머크 연구소장, 유룡 KAIST 교수,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서울대 수석졸업과 32세에 하버드대 교수 임용,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로 유명한 박홍근 교수는 1개의 원자나 분자를 트랜지스터로 이용할 수 있는 단원자 트랜지스터 분야를 선도하는 석학이고, 피터 김 소장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침투원리를 처음으로 밝혀낸 업적이 있다.
유룡 교수는 나노물질의 설계ㆍ합성 분야 권위자로 이를 만들기 위한 기반물질인 '메조다공성 실리카'를 단결정 형태로 합성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특히 생리의학 분야는 두각을 나타내면서 미래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 과학자들이 유난히 많아 기대된다. 치료유전자 전달을 연구하는 김성완 유타대 생명공학과 교수, 뇌졸중 치료의 길을 연 최원규(데니스 최) 에모리대 생화학과 교수, 전달 리보핵산(RNA)의 구조를 밝혀낸 김성호 UC버클리 화학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또 국가과학자 1호인 신희섭 KIST 신경과학센터장, 역시 국가과학자인 이서구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교수, 제정호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 류성언 생명공학연구원 박사 등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신창진 한양대 물리학과 교수는 "현재 기초과학을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수 세대들이 퇴장하면 그 뒤를 이을 인재와 사람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돈이 되는 기술은 국가가 키우고 국가는 기초과학을 연구할 사람을 키워야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 과학자들의 연구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정헌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우수한 인재들이 지방 교수로 자리를 잡으면서 연구비가 없어 연구를 못 하는 것도 큰 문제"라며 "아무리 훌륭한 연구자도 연구를 3년 정도 못 하면 말 그대로 완전히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한국 과학기술계의 잠재력과 저변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서 교수는 또 "앞으로 정부의 역할은 30년 후 한국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면서 기초과학에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라며 "노벨상 수상은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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