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노벨상 일본' 뒤엔 정부가 있었다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은 3명의 일본인 물리학자에게 돌아갔다. 그중 나고야대학의 선·후배인 고에너지연구소(KEK)의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교수와 교토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는 1973년 쿼크의 5번째와 6번째 입자를 예견한 공로로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쿼크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근본 입자. 왜 그들은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에야 노벨상을 받게 됐을까.

실험으로 입증돼야 노벨상 가능

노벨상 위원회는 이론 연구는 반드시 실험으로 검증돼야 수상 대상이 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해당 이론의 저자에게 하루라도 빨리 노벨상을 주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실험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고바야시·마스카와 교수의 연구 결과는 1973년 일본의 한 학술지에 발표됐다. 당시까지는 쿼크의 존재가 4개까지 알려져 있었다. 고바야시·마스카와 교수는 쿼크가 2개 이상 추가로 존재해야 다른 입자 물리학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철저히 이론만으로 새로운 입자를 찾아낸 것이다.

일본 정부는 두 교수의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1999년 고에너지연구소에 1조원 이상을 투자해 거대 가속기를 세웠다. 우주의 근본 원리를 파헤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목표도 숨어 있었다.


실험은 원자핵을 엄청난 속도로 충돌시켜 이때 나오는 소립자들을 관찰함으로써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검증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2001년 일본의 KEK는 미국의 스탠퍼드 가속기연구소(SLAC)와 동시에 두 교수의 이론에 부합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경상대·경북대에서 20여명이 이 실험에 참가했다.

당시 논문의 공동저자였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선기 교수는 "2001년 당시 실험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두 교수는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본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두 교수의 이론을 일본 정부가 투자한 거대가속기에서 검증한, 철저히 일본의, 일본에 의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정부 지원이 숨은 공로자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받은 노벨상은 처음이 아니다. 도쿄대의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 교수는 쿼크와 같은 소립자의 일종인 중성미자를 발견해 2002년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고시바 교수의 수상 뒤에도 역시 80년대로서는 거금인 30억원에 달하는 일본 정부의 투자가 있었다. 또한 하마마츠라는 세계적인 실험 장비 회사의 지원도 결정적이었다.

중성미자는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질량이 거의 없어 다른 물질과 힘을 거의 주고받지 않는다. 그만큼 검출하기가 어렵다. 고시바 교수의 부탁으로 하마마츠는 중성미자를 검출할 수 있는 장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일본 정부는 재정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연구 성과는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실험으로 입증하기 위해 어떻게 기업·정부의 역량을 모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수봉 교수는 "2002년의 고시바 교수나 올해의 노벨상 수상자 모두 실험이 성공만 하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경우였다"면서 "노벨상이 정부가 거대 과학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면 얻을 수 있는 열매라는 사실을 국내 사회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중성미자 분야에서 또 다른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2조원 이상을 들여 양성자 가속기인 J-PARC(Japan Proton Accelerator Research Complex)를 세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성미자의 생존시간·변환 등 각종 특징을 규명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다른 일본 노벨 물리학상이 예약된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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