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에서만 노벨상 13명.
일본의 비결은
끈질긴 연구 근성… 학문도 '장인정신'으로
올해 노벨상에서 일본은 물리학상 수상자 3명과 화학상 수상자 1명을 배출했다. 이로써 일본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모두 13명으로 늘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왜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우리는 '13 대 0'의 기록으로 일본에 뒤지는 것일까?
◆연필과 종이, 장인 정신
일본 노벨상의 시작은 '연필'과 '종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8일 "여러 물리 분야 가운데 종이와 연필로 우주의 근본 법칙을 생각해내는 이론물리나 소립자물리는 거대 실험실이 없어도 독창성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일본의 특기 분야"라고 평가했다.
19세기 말 서구의 자연과학을 받아들였을 당시 일본은 실험장치도 변변치 않고 산업의 뒷받침도 부족했다. 대신 생각하고 계산하는 이론 연구에 승부를 걸었다. 첫 성과는 50여년 만인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노벨 물리학상(소립자물리이론 연구)을 받으며 빛을 발했다.
이런 성과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KAIST 유룡 교수는 "몇 대(代)를 걸쳐 가업(家業)을 이어받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학계에도 녹아있는데, 이게 일본 기초과학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가령 올해 소립자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는 둘 다 나고야대 출신으로 2차대전 직후 일본 소립자 물리학의 초석을 닦은 사카다 쇼이치(坂田昌一) 박사의 제자들이다. 사카다 박사는 당시 마스카와가 영어와 국어 성적이 나빠 대학원 입학이 불투명해지자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주는 '특혜'까지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제자들이 주눅들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연구실에서 '○○상(씨)'을 제외한 존칭을 못 쓰도록 했다.
2002년 대졸(학사) 학력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도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케이스. 그는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기업에 입사했고, 노벨상 수상 후에도 회사가 제의한 이사직을 거절하고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연구원직을 택했다.
◆거대 과학으로 재도약
이런 장인정신의 토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 시카고대 명예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물리학의 묘미는 퍼즐과 같은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라며 "일본 초등학교 과학시간이 가장 흥미를 느낀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퍼즐을 푸는 형식으로 흥미를 유발하며 과학에 접근시키는 '과학교육 접근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또 관심 있는 분야를 누가 뭐라 해도 지속적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교육방식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 역사에서 전반부가 이론연구였다면 후반부는 이를 입증하는 실험 덕분"이라고 말한다. 일본에는 거대입자 가속기나 지하의 우주입자 검출장치 등 세계적인 거대 과학실험 장치가 여럿 있다. 2002년도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이런 실험장치에서 비롯됐다. 이론연구로 노벨상을 받고, 실험으로 입증해 다시 노벨상을 받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된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본 관방장관은 8일 "우주 탄생의 원리 규명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선형가속기(ILC)를 일본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건설에만 수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겐 이런 세계적인 거대 과학실험장치가 없다.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는 "일본이 처음 했던 것처럼 거대 과학실험 장치 없이도 가능한 획기적 연구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과기대 조무제 총장은 "1~2년 내에 성과를 바라지 않고 한 분야를 10년 이상 파고들 수 있도록 교수 평가에도 융통성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스위스 취리히의 IBM 연구소는 미국 본사 연구소에 비해 규모가 10분의 1도 안 되지만,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한 분야를 집중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두 번이나 배출했다.
◆차세대 연구자 양성이 관건
일본 과학에도 문제점은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제자들이 스승의 연구를 이어서 하다 보니 창의적 연구가 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해외 유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도 새 연구흐름에 뒤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6년 첫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짜면서 '박사 후(post-doc) 연구원 1만명 확보' 같은 우수 인재 유치로 해결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지난 7일 노벨상 수상자들을 국내 대학에 유치해 우수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공계 교수들은 "은퇴를 앞둔 노벨상 수상자를 데려오기보다는 국내 박사나 대학원생들을 한창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연구자 밑으로 보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실제 아시아 국가 출신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그런 학자의 연구실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학자는 누구일까. 수치로만 보면 임지순 교수다.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수는 물리학상의 경우 5508회, 화학상은 4871회였다. 국내에선 임 교수가 5000회를 넘겼고, 1000회 이상은 4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국제학계에서 자주 인용된 논문 연구자 5000여명에는 포항공대 화학과 박수문, 서울대 물리학과 김수봉, 연세대 경제학과 유병삼 교수 등 3명이 포함됐다. 그러나 일본은 그 숫자가 258명이나 된다.
조선일보
◆연필과 종이, 장인 정신
일본 노벨상의 시작은 '연필'과 '종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8일 "여러 물리 분야 가운데 종이와 연필로 우주의 근본 법칙을 생각해내는 이론물리나 소립자물리는 거대 실험실이 없어도 독창성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일본의 특기 분야"라고 평가했다.
19세기 말 서구의 자연과학을 받아들였을 당시 일본은 실험장치도 변변치 않고 산업의 뒷받침도 부족했다. 대신 생각하고 계산하는 이론 연구에 승부를 걸었다. 첫 성과는 50여년 만인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가 노벨 물리학상(소립자물리이론 연구)을 받으며 빛을 발했다.
이런 성과는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았다. KAIST 유룡 교수는 "몇 대(代)를 걸쳐 가업(家業)을 이어받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학계에도 녹아있는데, 이게 일본 기초과학의 저력"이라고 말했다.
가령 올해 소립자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교수는 둘 다 나고야대 출신으로 2차대전 직후 일본 소립자 물리학의 초석을 닦은 사카다 쇼이치(坂田昌一) 박사의 제자들이다. 사카다 박사는 당시 마스카와가 영어와 국어 성적이 나빠 대학원 입학이 불투명해지자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주는 '특혜'까지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제자들이 주눅들지 않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연구실에서 '○○상(씨)'을 제외한 존칭을 못 쓰도록 했다.
2002년 대졸(학사) 학력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은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도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케이스. 그는 실험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작은 기업에 입사했고, 노벨상 수상 후에도 회사가 제의한 이사직을 거절하고 실험을 계속할 수 있는 연구원직을 택했다.
◆거대 과학으로 재도약
이런 장인정신의 토대는 초등학교 때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 시카고대 명예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물리학의 묘미는 퍼즐과 같은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라며 "일본 초등학교 과학시간이 가장 흥미를 느낀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퍼즐을 푸는 형식으로 흥미를 유발하며 과학에 접근시키는 '과학교육 접근법'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또 관심 있는 분야를 누가 뭐라 해도 지속적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교육방식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과학자들은 "일본의 노벨상 수상 역사에서 전반부가 이론연구였다면 후반부는 이를 입증하는 실험 덕분"이라고 말한다. 일본에는 거대입자 가속기나 지하의 우주입자 검출장치 등 세계적인 거대 과학실험 장치가 여럿 있다. 2002년도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은 이런 실험장치에서 비롯됐다. 이론연구로 노벨상을 받고, 실험으로 입증해 다시 노벨상을 받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된 것이다.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이다.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본 관방장관은 8일 "우주 탄생의 원리 규명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선형가속기(ILC)를 일본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는 건설에만 수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에겐 이런 세계적인 거대 과학실험장치가 없다.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는 "일본이 처음 했던 것처럼 거대 과학실험 장치 없이도 가능한 획기적 연구에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과기대 조무제 총장은 "1~2년 내에 성과를 바라지 않고 한 분야를 10년 이상 파고들 수 있도록 교수 평가에도 융통성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스위스 취리히의 IBM 연구소는 미국 본사 연구소에 비해 규모가 10분의 1도 안 되지만,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한 분야를 집중 연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두 번이나 배출했다.
◆차세대 연구자 양성이 관건
일본 과학에도 문제점은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제자들이 스승의 연구를 이어서 하다 보니 창의적 연구가 빈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해외 유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도 새 연구흐름에 뒤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6년 첫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짜면서 '박사 후(post-doc) 연구원 1만명 확보' 같은 우수 인재 유치로 해결에 나섰다.
우리나라도 지난 7일 노벨상 수상자들을 국내 대학에 유치해 우수 인력을 배출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공계 교수들은 "은퇴를 앞둔 노벨상 수상자를 데려오기보다는 국내 박사나 대학원생들을 한창 두각을 나타내는 젊은 연구자 밑으로 보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실제 아시아 국가 출신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그런 학자의 연구실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학자는 누구일까. 수치로만 보면 임지순 교수다.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수는 물리학상의 경우 5508회, 화학상은 4871회였다. 국내에선 임 교수가 5000회를 넘겼고, 1000회 이상은 4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국제학계에서 자주 인용된 논문 연구자 5000여명에는 포항공대 화학과 박수문, 서울대 물리학과 김수봉, 연세대 경제학과 유병삼 교수 등 3명이 포함됐다. 그러나 일본은 그 숫자가 258명이나 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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