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다윈과 지질학


화석을 통해서 '고(古)생물의 삶'을 읽어내다


장순근 해양硏 명예연구원





생물의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은 박물학자로서 또한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는 1831년 12월 영국을 떠난 비글호를 타고 대서양을 내려가다가 가장 먼저 올라간 작은 산 자고 섬에서 그 섬의 지층과 바위들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해 지질학에 대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어 남아메리카 남부지방인 파타고니아의 가없이 넓고 평탄한 지층을 보고, 지층이란 융기할 수 있고 지질시대를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넓은 곳을 덮을 정도의 엄청난 양의 자갈이 생긴다는 것을 이해했다. 다윈은 지금은 사라진 고(古)생물들의 화석을 채집하는 작업을 통해 환경이 서서히 변해가면서 그 환경에서 살았던 고생물들이 천천히 멸종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칠레 서해안에서 지진을 겪으며 큰 충격을 받은 다윈은 안데스산맥을 넘어가다가 자갈들이 덜그럭거리면서 굴러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높은 산맥이 침식되어 자갈과 모래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바위 속에 있는 조개화석을 보고선 그 바위가 엄청난 깊이로 가라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다윈이 채집한 화석으로 복원한 메가테리움이라는 동물의 뼈대 그림.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제공
다윈은 남아메리카에서 확인하고 채집한 지질과 화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질학과 고생물에 관한 일반현상을 쉽사리 파악했다. 기후·수심·염분·해류 같은 환경의 변화에 고생물이 적응하지 못하면 멸종한다는 점도 이해했다. 또 '지질시대(geologic age)'가 수십억년에 걸칠 정도로 길고 생물들의 진화 과정에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탄탄한 지질학 실력을 바탕으로 태평양에서 처음 본 산호초의 형성 과정을 훌륭하게 설명했다. 섬이 다 가라앉지 않아 산호초의 가운데 남아있으면 '보초(堡礁)'이고 섬이 완전히 가라앉으면 산호초만 반지처럼 남아있는 '환초(環礁)'이다. 반대로 섬이 솟아오르면 산호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 살면서, 산호초가 해안에 바짝 붙은 '거초(?`礁)'가 된다.

다윈이 1882년 세상을 떠난 다음 산호초는 다윈이 주장한 것처럼 '가라앉는 섬'이 아니라 '이미 가라앉은 섬'에서 생긴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주장을 처음 한 사람은 1872년부터 1876년까지 영국 챌린저호를 타고 세계를 일주했던 당대 최고학자 존 머레이 경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라 영국 학계가 둘로 갈라질 위험에 처하자, 영국학사원은 남서태평양의 푸나푸티 환초를 굴착하기에 이르렀다. 330m를 굴착했으나 산호바위 외에는 나온 것이 없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미국이 수소탄 실험을 하면서 비키니 환초와 에니웨토크 환초를 굴착했다. 비키니 환초에선 770m까지 산호바위만 나왔고 에니웨토크 환초에서는 1280m에서 5000만년 된 화산암 바닥에 닿았다. 이로써 다윈이 옳다는 것이 증명됐다. 다윈은 해저확장론·판구조론·맨틀의 열대류처럼 현대지질학에서 인정되는 이론들을 몰랐지만 지질 현상과 산호초 형성을 그 이론에 부합되게 설명했다.

한편 지구가 우주에서 날아온 물체에 충돌해 중생대에 발달했던 공룡들이 멸종했다는 주장이 1980년 제기되면서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쁘면 멸종한다며 다윈이 공격받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다윈의 주장은 그런 매우 드물고 예외인 경우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논점이 빗나갔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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