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



"사회적 약자 도태돼야" 극단론 기초 제공
홍성욱·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일리는 19세기 초 출간된 《자연신학》이란 책에서 생명체의 완벽함과 오묘함이 이를 설계한 신(神)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라고 했다. 그가 특히 좋아한 기관은 인간의 눈이었다. 페일리는 우연의 축적을 통해서는 뾰루지나 점이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눈과 같은 복잡하고 정교한 것은 생겨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윈은 그로부터 반세기 후 출판된 《종의 기원》에서 처음에는 단순하고 불완전했던 생명체의 눈이 조금씩 변이를 거쳐서 지금의 복잡하고 완벽한 인간의 눈으로 발전한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페일리에게는 신의 존재를 입증한 증거가 다윈에게는 우연한 변이의 축적과 분화라는 자연선택 메커니즘의 타당성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생물학을 넘어서 과학과 철학 전반에 미친 다윈의 영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찾아진다. 다윈 이전에는 감탄이 나올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대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신의 섭리나 설계밖에는 없었다. 신이 설계한 자연에서 인간의 도덕적 원칙들도 도출되었다. 그렇지만 다윈 이후에는 우연한 환경의 변화, 우연히 그 환경에 적합한 기능을 가진 구조의 자연적 선택,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변이의 축적과 시간에 따른 종의 분화가 동일한 자연을 설명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더 이상 신의 섭리나 설계, 우주의 절대자에 의존하지 않고서 자연을 설명했고, 이러한 세계에 맞는 새로운 도덕적 원칙을 찾아야 했다.


▲ 독일 나치시대에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다윈주의는 사회적 부적응자를 거세해야 한다는 우생학으로 연결됐고 그 가장 극단적 형태가 홀로코스트였다. /조선일보DB
진화의 개념을 생명계 밖에 처음으로 적용한 사람은 다윈의 동시대인이었고 '적자생존(適者生存)' 개념을 주창한 허버트 스펜서였다. 그는 생명의 세계만이 아니라 물질의 세계·우주·인간 사회 모두에 진화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20세기 사상가 떼이야르 드 샤르뎅은 무기물의 진화·생명체 같은 유기물의 진화·그리고 정신의 진화라는 진화의 세 단계를 설정했다. 인간이 주인공인 마지막 단계는 진화의 방향을 설정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이전 단계들과 질적으로 차이를 지닌다. 샤르뎅은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진화론과 유신론의 조화를 꾀했다.

다윈이 맬더스의 '생존경쟁'과 같은 개념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윈의 동료이자 역시 진화론을 주창한 알프레드 러셀 월러스는 다윈에게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 개념을 버리고 스펜서의 '적자생존' 개념을 택할 것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의 '자연선택' 개념이 진화론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부적격자는 도태되고 최적자(最適者)만이 살아남는다는 스펜서의 적자생존 개념은 많은 개체가 사멸한다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반영했지만, 다윈의 자연선택은 진화가 새롭게 적응하는 자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창조'의 과정임을 강조했다.

19세기 중엽 이후 '적자생존' 개념은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사회진화론)의 기초를 제공했다. 사회다윈주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복지 정책을 국가가 자연적으로 소멸할 계층의 번식을 독려함으로써 자연적 진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판했다. 여기에서 사회적 약자와 부적응자들을 격리하고 거세해야 한다는 우생학(優生學)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다윈은 우생학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이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사회에도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같은 진화의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다윈의 진화론 이후 생존경쟁과 여기서 살아남은 종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생각이 과학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다윈의 진화론이 우생학을 낳은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우생학에 과학적 외피를 제공한 점은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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