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우주물리학과 '고흐'가 만나니 물리가 즐거워



최무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내가 만일 우주여행을 다녀온다면 너희들보다 더 젊어질 수 있을 텐데…" "왜 낮은 밝은데 밤은 어두운 걸까? 해도 결국 하나의 별일 뿐이고, 밤하늘 그 끝없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모든 별들의 빛을 다 모으면 햇빛만큼 밝아지지 않을까?"

고등학교 시절 물리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식의 황당한 얘기를 들으며 잠시나마 물리학자가 되어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눠 가르치고 있는 이 끔찍한 '원시 교육국가'에서도 물리를 한 번이라도 배운 학생이라면 이 같은 근원적인 거대 질문에 나름의 상상력을 총동원해본 짜릿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쌍둥이의 역설'과 '올베르스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위의 두 질문은 우리들 대부분에게 그저 한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끝났을 뿐 진지한 물리학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책갈피)를 읽으며 이 책이 만일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출간되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쯤 물리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 추천의 글을 쓴 우리 물리학계의 원로 장회익 선생님의 표현대로 우리 과학문화의 바탕이 될 소중한 책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2002년에서 2005년까지 서울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25차례의 강의 내용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게재했다가 묶은 책이다. 나 역시 서울대와 EBS에서 26회에 걸쳐 강의했던 내용을 엮어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이란 제목으로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내가 강의한 동물행동학에 비하면 물리학은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기 정말 어려운 학문이다. 그런 물리학을 고전역학에서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 통계역학, 그리고 복잡계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구수하게 버무리는 그의 실력과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과학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그의 강의는 '공간과 시간' '측정과 해석' '혼돈과 질서' 등등 가히 철학 수업을 방불케 한다. 그런가 하면 우주물리학을 설명하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미학 해설과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 《유레카》의 과학적 상징성에 관한 문학비평을 곁들인다. 자연과학은 공학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학에 가까운 학문이라며 문학·미술·음악의 영역을 자분자분 그러나 거침없이 넘나든다. 그에게는 학문의 경계 자체가 무색해 보인다.

그는 또한 '우리말로 과학하기 운동'에 누구보다도 적극적이다. '한곳성(국소성)'과 '검정체내비침(흑체복사)'처럼 어색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에돌이(회절)' '엇흐름(대류)' '떠오름(창발)' 등은 정말 우아하고 깔끔한 용어들이다. 고운 우리말로 배우는 물리학의 맛이 더욱 새롭다.

에셔와 마그리트의 도발적 모순을 사랑하는 물리학자 최무영. 그는 기존 지식에 대한 '의식적 반성'이 과학적 사고의 첫째 요소라며 우리에게 태양중심설을 의심하고 지구중심설을 사색해도 괜찮다고 부추긴다. 와아, 물리학은 정말 신나는 학문이네.
[최재천의 행복한 책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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