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물·기름 다 막는다" 꿈의 코팅제 나와


 

버섯모양 돌기가 비밀… 물·기름 스미지 못하고 털면 떨어져

오리는 물에 젖지 않는다. 물에 들어가기 전 주둥이로 깃털에 기름을 발라 방수(放水)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양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으로 온몸이 기름범벅이 될 수밖에 없다. 방수 기능을 갖춘 휴대폰의 유리 역시 물이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기름은 막지 못해 지문이 쉽게 남는다.

재미(在美) 한국인 유학생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액체를 밀어내는 코팅제를 개발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길을 열었다. 물방울은 물론, 온갖 종류의 기름도 표면에 스며들지 못하고 방울로 있다가 조금만 흔들어도 금방 떨어진다. 음료수를 흘려도 참기름을 흘려도 얼룩 하나 남지 않는 무(無)세탁 옷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 물(푸른색)과 석유성분인 세탄(cetane\붉은색)이 방울 상태로 버섯 모양 돌기 위에 올려져 있는 모습. 실제로는 돌기 사이 공기층 위에 올려져 있어 조금만 표면이 기울어도 쉽게 굴러 떨어진다. 액체방울들의 지름은 약 3㎜다. /MIT 제공
미세 돌기로 기름 방울 띄워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의 게레스 맥킨리(McKinley) 교수와 화학공학과 로버트 코헨(Cohen) 교수 공동 연구진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10일자 인터넷판에 발표한 논문에서 "물이든 기름이든 어떤 액체라도 밀어내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논문의 공동 제1저자는 맥킨리 교수팀의 최원재(34) 연구원과 코헨 교수팀의 아니시 투테이자(Tuteja) 박사다.

비밀은 표면의 미세한 돌기에 있다. 물이나 기름은 돌기 틈새의 공기방울에 밀려 표면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방울 상태로 떠 있게 된다. 때문에 살짝 흔들어도 금방 떨어져 버린다.

자연에서도 표면이 매끈한 잎에는 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물방울 상태로 떨어진다. 표면이 물을 싫어하는 기름성분의 왁스(wax)층으로 돼 있는 데다 미세한 돌기가 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방수 의류는 대부분 이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름은 다르다. 대부분의 물질은 기름과 잘 결합한다. 이 경우 기름은 돌기 사이로 끼어들어간다. 방수 의류라도 기름을 흘리면 바로 스며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름을 싫어하는 새로운 물질 개발에 매달려 왔다. 반면 MIT 연구진은 표면이 기름을 좋아해도 돌기 모양을 다르게 하면 기름방울이 스며들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차 연구 결과는 지난해 12월 '사이언스'지에 발표됐다. 역시 최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표면에 작은 버섯모양 또는 우산 모양의 돌기를 배열하면 설령 물질 자체는 기름을 좋아하더라도 기름이 그 돌기 사이로 파고들 수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는 표면에 기름방울을 살며시 올려놓을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기름방울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기름은 돌기 사이로 스며들어 버렸다.

기름 묻지 않는 옷감도 곧 발표

액체가 방울이 되는 것은 같은 분자끼리 잡아당겨 가능한 한 표면적을 작게 만드는 표면장력 때문이다. 최 연구원이 만든 돌기는 표면 에너지가 어떤 액체의 표면장력보다 작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여기에 닿는 모든 액체는 표면장력으로 둥글게 돼 밀려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력이나 충돌 순간의 관성력처럼, 액체 내부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압력 등에 의해 액체 표면이 돌기 사이로 부풀어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 최 연구원은 "다른 힘에 의해 액체 방울의 아래쪽이 부풀어 올라 돌기 사이의 바닥에 닿거나 돌기를 타고 흘러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돌기 사이 간격을 더 좁게 해 액체 방울이 들어갈 틈을 없애기로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좁게 할 수는 없다. 돌기 사이에 액체 방울을 밀어낼 충분한 공기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최적의 돌기 높이와 간격을 계산해냈다. 그 결과 높은 곳에서 기름을 떨어뜨려도 물방울처럼 튕겨지지 스며들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미 공군이 지원했다. 기름을 밀어낼 수 있다면 항공기나 로켓의 부품에 기름이 스며들어 부식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수용으로도 가치가 크다. 최 연구원은 "이번에 개발한 기술로 오리 깃털을 코팅한 결과 기름이 묻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며 "현재 이 코팅법을 발전시켜 '기름이 묻지 않는 옷감'에 관한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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