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다윈과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

다윈과 복잡계 이론
(complexity theory)
진화론이 설명 못하는 복잡한 자연현상 풀어내
김용학·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생물체의 진화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경제제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매우 강력한 이론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몇 가지 점에서 불완전했고, 현대의 복잡계 이론은 이를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윈은 "눈과 같이 복잡한 구조는 자연선택의 누적적 결과로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애초에 생물체에 질서 잡힌 구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하면 엔트로피의 증가, 즉 무(無)질서도의 증가가 우주를 관장하는 법칙이다. 그런데 과연 이 같은 강력한 법칙에 어긋나는 고도의 질서를 갖는 유기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의문은 줄곧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창조론 또는 '인텔리전트 디자인'(지적 설계) 이론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은 국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자기 조직화(self organizing)'라는 개념을 이끌어낸다. 색깔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가스를 밀폐된 공간에 섞으면 처음에는 제멋대로 섞이다가 나중에 질서 잡힌 규칙적인 패턴을 보이기도 한다. 물은 끓으면서 무질서하게 요동치지만, 특정한 조건에서는 안정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를 발견한 프랑스 물리학자의 이름을 따서 '베르나르 세포(Bernard Cell)'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대류(對流) 운동을 하는 분자들의 자기 조직화 때문이다. 자기 조직화가 유기체의 세포 구조나 나뭇잎에 패턴이 생겨나는 원초적 과정이었다는 주장인 것이다.
▲ 갈라파고스 섬의 바다표범. 바다표범은 대구를 먹고 살지만 복잡계 이론에 따르면 그 사이에 수많은 먹이사슬이 얽혀 있어, 개체 수의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 /조선일보DB
자기 조직화는 줄기세포에의 분화 과정을 설명하는 데도 사용된다.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는 기술이 개발 중이지만, 복잡계 이론은 그 미시적인 과정을 밝히려고 노력한다. 왜 동일한 줄기세포가 어떤 것은 머리카락으로, 또 어떤 것은 허파로 분화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어 보이지만, '유전자 정보가 발현하는 네트워크(gene expression network)'의 구조와 동학(動學)을 파악함으로써 생물체의 자기 조직화 현상의 비밀을 캐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종이 출현하는 '대(大)진화'도 유전자 네트워크의 '창발(創發·emergent)'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복잡계 이론이 다윈을 보완하려는 또 다른 지점은 자연선택 과정의 복잡성에 대한 것이다. 바람이 무척 센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새들의 날개는 몇십 센티보다 길 수 없다는 예측을 한다면, 이는 단순한 인과론으로 자연선택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복잡계 이론은 단순 인과론을 넘어선다.

자연선택의 복잡성에 대한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구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어민들은 대구를 먹고 사는 바다표범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서 이들을 사냥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인과 논리에 따르면 어민들의 주장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다표범을 줄인다고 대구의 수가 늘어날 것인지 확증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대구와 바다표범 사이에는 2억2000만 가지가 넘는 먹이사슬이 얽혀 있어 도미노 연쇄와 피드백 메커니즘을 갖는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란다.

먹이사슬의 네트워크가 너무나 복잡하여 천적(天敵)을 들여오거나 천적을 없앴을 때, 과연 그 효과가 무엇인지를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날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중기 혹은 장기 일기예보를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복잡계 이론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렵고, 법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추론해 볼 뿐이다.

생명체의 복잡한 구조는 모두 자연선택의 결과라는 다윈의 발견은 인류 지성사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음은 부인할 수 없다. 복잡계 이론은 그 미시적인 과정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생명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만 생명체의 복잡성과 진화가 생겨나도록 하는 '비선형적 피드백(非線型的·non-linear feedback)'의 과정을 밝혀낸다면, 이는 분명 과학사의 혁명으로 기록될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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