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태양보다 100京배 강한 빛 창조… 한국, 노벨賞으로 한 걸음 더

이전 세대보다 100억배 강력
원형으로 전자 돌리는 방식서 직선으로 변경, 투과력 높여… '나노미터' 시료도 관측 가능

-新藥개발·의학 등 광범위 적용
분자 내부까지 다 들여다봐 1000조분의 1초 살필수 있어… 새 목표는 '물 생성과정 관측'2015년은 국제연합(UN)이 정한 '빛의 해'다.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 하이삼의 '광학의 서(書)' 발간 1000주년을 필두로, 맥스웰의 전자기파이론(150주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완성(100주년) 등 빛의 역사에서 굵직굵직한 기념일이 몰려 있는 올해를 빛의 해로 제안해 2013년 UN 총회의 승인을 받았다.

유네스코는 1월 19일 프랑스 파리 본부에서 성대한 빛의 해 선포식을 거행한다. 국내에서도 한국광학회 주도로 빛의 과학을 알리는 다양한 행사가 연중 펼쳐진다. 올해 말 세계 최고 수준의 빛 연구 시설인 '4세대 방사광가속기'도 완공된다. 세상을 바꿀 빛의 제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지난 26일 경북 포항시의 포스텍에서는 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2015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진행 중인 직선형 4세대 방사광가속기 건설 현장이다. 완공되면 길이 1110m, 높이 3m로 국내에서 가장 긴 단층 건물이 된다. 3세대는 원형 가속기다.

방사광가속기에서는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모든 사물을 꿰뚫는 빛(X선)을 만든다. 이 빛으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신약을 만들고,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반도체의 결함도 잡아낸다. 현대 문명의 토대가 된 빛의 과학이 '빛의 고속도로'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과학자

빛은 현대 문명의 원동력이다. 무선통신은 빛의 파동인 전자기파를 이용한 기술이며, 빛 자체에 정보를 담은 광통신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나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정보를 볼 수 있는 것은 빛을 내는 반도체 LED(발광다이오드)로 만든 디스플레이 덕분이다. 노벨상에서도 빛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2014년 노벨 화학상은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빛의 원리를 밝힌 과학자들에게 돌아갔으며, 물리학상은 LED 개발자들이 받았다.


빛의 고속도로 방사광가속기.
/그래픽=구선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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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대성이론 완성 100주년의 주인공인 아인슈타인 역시 빛의 과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에 가깝게 달리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지 탐구하다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속도는 거리 나누기 시간이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면. 결국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므로 거리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다.

1915년 제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처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공간마저 휜다는 것을 예측했다. 4년 뒤 영국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일식 때 별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 실제로 휜다는 것을 관측한 후에야 인정받았다. 그에게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안긴 광전(光電) 효과는 금속에 빛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현상이다. 사물에서 반사된 빛을 찍어 전자 정보로 저장하는 디지털 카메라나 센서들은 모두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서 비롯됐다.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할 주인공도 빛이다. 광산업 전문기구인 포토닉스21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광산업 시장 규모는 2005년 2280억유로에서 2011년 3500억유로 성장했으며, 2020년에는 6150억유로가 될 전망이다. 성장의 주역은 태양광 발전이다. 2005년과 2011년 조사에서 디스플레이가 전체 광산업에서 각각 27%, 25%를 차지했다. 2020년에는 23%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대신 태양광 발전이 2005년 4%, 2011년 14%에서 2020년엔 16%로 약진할 것으로 예측됐다.

햇빛보다 100경배 강한 빛 만들어

올해 말 완공될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한국 광(光)산업의 신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사광가속기의 원리는 이렇다. 바륨(Ba)·란타넘(La) 등의 금속에 강한 전기를 가하면 전자가 튀어나온다. 이 전자를 가속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만들어 전자석 사이를 통과시키면 방향이 바뀐다. 그 순간 적외선에서 X선까지의 파장을 가진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방사광가속기는 이 중 X선 파장이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도록 설계돼 있다.

유청종 가속기연구소 빔라인부장은 "강력한 X선을 이용하면 물질에 별다른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서 "병원의 X선 장치가 뼈의 모양만 어렴풋이 알 수 있는 데 비해,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하면 연골이나 혈관까지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만들어내는 X선의 세기는 태양빛의 1억 배, 4세대는 그보다 100억배 센 100경배에 이른다. 3세대가 원형으로 전자를 돌리는 원형 가속기인 것과 달리, 4세대는 직선형 가속기다. 직선 중간에 3세대보다 훨씬 긴 전자석을 넣어 더 많은 빛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투과력을 극대화했다. 3세대에선 ㎜ 단위 시료를 분석했지만, 4세대에서 나오는 레이저 수준의 X선을 이용하면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시료도 밝고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조무현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되면 지금의 3세대 방사광가속기와 시너지를 통해 산업 발전은 물론 노벨상 수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타미플루 등 신약의 보고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미  비아그라의 단백질 결합 구조를 밝혀내 어떻게 치료 효능이 나타나는지를 규명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반도체나 철강재의 내부 문제를 파악하는 데도 기여했다. 포스코와 삼성전자 등은 자체적인 빔라인과 실험실을 구축해 이용하고 있다.

특히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신약 개발에 유용하다. 단백질이 자물쇠, 이에 결합하는 신약 물질을 열쇠라고 하면 자물쇠의 모양을 완벽하게 파악한 뒤 열쇠를 만들 수 있는 원리다. 미국에서는 방사광가속기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단백질뿐 아니라 하나의 분자 내부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찰나'로 불리는 짧은 순간을 관측하는 것도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3세대 방사광가속기의 X선은 1조분의 1초를 포착할 수 있고, 4세대는 1000조분의 1초까지 살필 수 있다.

물이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이 만들어지는 찰나의 순간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조 소장은 "현재 4세대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도 아직 물 생성 과정 관측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4세대 방사광가속기로 한국이 이뤄야 할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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