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질문은 없고 점수만 좇는 곳에서 창의적 인재 나올 수 없다

대한민국 대학교육의 현장

서울대 학생, “대학에서 명강의는 사라진 지 오래”
⊙ 중앙대 학생, “질문을 하도 안 해서 질문하면 점수 준다”
⊙ 질문 없는 강의실, 교수는 학생 탓, 학생은 교수 탓
⊙ 미국 대학, 대형 강의실에서도 여기저기서 질문 쏟아져

[편집자 주]
기사에 나오는 학생들의 이름과 학번, 소속 공개에 대해서는 본인들로부터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이 아직 재학중이기에 학교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연세대의 대형 강의실이다.
  라운드넥(round neck) 티셔츠, 청바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챙이 평평한 모자, 스냅백은 요즘 대학생들의 흔한 복장이다. 기자가 이런 복장을 하고 다시 ‘임시 대학생’이 되었다. 잠입 취재를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기자는 가방에 대학생 복장을 약 한 달 동안 따로 챙겨 다녔다. 일종의 대학생 코스프레(costume play의 줄임말)를 하게 된 이유는 우리 대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얼마나 자주 질문을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창조경제와 창의인재가 화두다. 과연 이런 화두에 맞는 인재들을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은 양성하고 있을까.
 
  기자는 미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지인들로부터 한국 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줄곧 들어 왔다. 여기에 최근 기자가 읽은 책, ‘질문의 힘’(저자 제임스 파일)과 창의력과 관련한 도서들은 기자에게 이번 취재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런 부류의 책들에서 하나같이 지적하는 말은 ‘질문은 창조와 창의력의 원동력’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마크 저크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에디슨, 뉴튼 등 내로라하는 발명가들과 성공한 창업가들은 ‘왜?’라는 사소한 질문에서 모든 창조를 시작했다.
 
 
  의문이 창조의 출발점
 
  뉴튼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만유인력을 밝혀 낸 사람이다. 그는 전 세계인들의 역사와 과학에 한 획을 그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등도 당시 없던 물건, ‘왜 이런 것은 없을까?’라는 궁금증과 사람들의 니즈(needs)를 충족하고자 새로운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질문을 두려워했다면, 오늘날 새로운 혁신과 창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질문이 정답보다 중요하다. 곧 죽을 상황에 처해, 단 1시간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55분을 질문을 찾는 데 할애할 것이다. 올바른 질문은 답을 찾는 데 5분도 걸리지 않게 한다.”
 
  이렇게 그는 질문이 답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G20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전 세계 기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을 위해 준 특별한 기회였던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절호의 찬스에 한국 기자 누구도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 기자가 질문을 던졌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중국인 기자의 질문을 보류하면서까지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모름지기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질문을 생활화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질문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조차 질문을 못했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기자는 서울에 있는 대학 중 무작위로 4군데를 선정했다. 서울대, 연세대, 홍익대, 중앙대학교이다. 기자가 남자인지라 여대는 제외했다. 참석한 강의 역시, 최대한 기사의 분별력을 높이고자 30명 내외의 작은 강의에서부터 100명 내외가 참석하는 강의까지 다양하게 골랐다. 강의의 주제 역시 문과계열에서 이공계열까지 모두 참석해 보았다. 본 기사의 구성은 전반부에는 기자의 대학가 탐방, 후반부에는 학생과 교수의 인터뷰로 묶어 보았다.
 
 
  대학가 탐방
 
수업 중 학생들은 모두 책상 위 노트를 보며 필기에 여념이 없다(사진 왼쪽). 서울대에서는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교수에게 달려가 질문을 했다(사진 오른쪽).
  가장 처음 기자가 발을 들인 곳은 서울대의 58동 건물, 경영대학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9월의 어느 날, 오후 1시55분, 파생상품론(Financial Derivatives)을 진행하는 강의실에 앉았다. 강의실에는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는 빌트인 에어컨이 천장에서 가동 중이었고, 프로젝터가 칠판 가운데 내려온 캔버스에 빛을 쏘고 있었다. 강의실 앞쪽에는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조교가 미리 학생들의 지정좌석을 지도해 주고 있었다. 그는 2시 정각에 교수가 들어오자 강의실에서 나갔다. 교수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백발을 드러낸 6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같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교수는 해당 분야에서는 학계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인물이라고 했다.
 
  2시를 조금 넘겨 수업을 시작했다.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화면에서는 영문으로 된 수업자료가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했다. 교수는 한국어로 강의를 했지만, 대부분의 용어는 영어를 사용했다. 과연 이것을 영어 수업이라고 해야 할지 한국어 수업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수많은 경제용어들, hedge(헤지), collateralization(담보설정), Asset(자산)과 같은 단어들이 쉼 없이 교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기자가 포착한 장면은 바로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학생들은 교수가 입을 열자 곧바로 교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책상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들이 왜 교수의 눈을 피하는가 싶어서 기자가 유심히 보니, 그들은 교수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책상 위 노트로 눈을 내린 것이다. 사제 간의 눈 맞춤이 없는 수업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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