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수술대에 오른 대입 修能 돌고돌아 문제은행(SAT)식으로 가나?

“문제은행식 역시 이미 문제은행에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합숙 토론도 하면서 더 정확하게 고쳐 출제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겉보기에는 출제 오류의 확률이 낮아질 것 같지만, 해보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요”(연세대 이상오 교수)

⊙ 수능, 17차례 고치며 ‘물수능’과 ‘불수능’ 오가
⊙ “미국 SAT의 가장 큰 매력은 연중 6회 응시할 수 있다는 점”
⊙ 국가권력이 공교육을 놔두고 국가과외(EBS)를 하는 나라는 한국이 唯一
⊙ “수능 평가를 자격증화하고,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넘기는 것이 중론”

중·고교 6년 공부가 60년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수능이다. 모든 수험생이 서울대 진학을 꿈꾼다.
 
2015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역대 최고 쉬운 수능으로 결론나자 교육부가 2014년 12월 3일 수능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2년 연속 수능시험 출제 오류가 발생한 점도 수능 수술(手術)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수능 시스템 재검토를 지시했다. 지난 11월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현재의 수능 출제 방식을 재검토해 원래 수능을 시작한 근본 취지, 수능을 왜 시작했는지 하는 취지가 바르게 실천되도록 재검토하라”고 했다.
 
  수능이 수술대에 오르는 ‘칼질의 반복’은 연례행사다. 1994학년도 대입수능 이후 큰 틀만 17차례 고쳤다. 꿰맨 데 또 꿰매는 식이었다. 그러나 고칠 때마다 문제점이 불거져 냉탕과 온탕을 반복했다. ‘물수능’의 해는 동점자가 늘어 수시 경쟁이 치열했고, 난도(難度)를 높인 ‘불수능’의 해는 중하위권 수험생 간 변별력이 떨어졌다.
 

2014년 11월 13일 대전 둔원고 수능 고사장.
  수능개선위가 발족하자, 정부 여당에서 수능을 미국 SAT처럼 문제은행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해마다 문제를 새로 내다 보니 오류가 생긴다”며 “미국의 SAT처럼 아예 문제은행식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SAT식 수능이란, 출제위원들이 문제를 상시적으로 만들어 은행처럼 보관하고 있다가 그 일부만 골라 시험에 출제하는 것을 말한다.
 
  기초과학연구원장을 역임한 서울대 오세정(吳世正) 교수(물리천문학부)는 “많은 문제를 만들어놓은 뒤 이 중 아주 일부만 출제하면 사전 문제 유출의 위험성도 크지 않다”며 “또 출제위원들이 시간을 충분히 갖고 문제를 내기 때문에 창의성 있는 문제 출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SAT의 가장 큰 매력은 한국의 수능처럼 단 한 번이 아니라 연중 6회 응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다만 미국 SAT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와 미국교육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은 2013년 7월 문제 유출 사건이 터져 SAT 시험 기회를 연 4회로 줄였다.) 복수 응시가 가능하다 보니, 학생 개인별 입시전략이 달라 학교 수업시간에 SAT 대비 문제집을 풀어주는 일은 없다고 한다. 미국은 대입 사교육이나 과외가 없는 나라다.
 
  그러나 일선 고교 진학교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교실 현장을 모르는 학자연(學者然)한 탁상공론”이라는 얘기다. 진로상담 교사모임인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소속 한 교사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SAT식 문제은행 출제 검토 소식에 헛웃음을 지었다. “수능을 SAT 방식으로 대체하고, 연중 여러 번 치른다고 해서 미국과 같은 효과가 나겠느냐”며 “학교 현장은 어떻게든 문제집을 많이 풀려 할 것이고, 학원은 새로운 방식의 문제집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제도의 變遷史
 
“수능은 미국의 SAT와 비슷한 표준화 검사로 개발”

    한국의 대입제도는 곡절이 많다.    광복 후 대학별 단독시험(1945~61), 국가고시제(1962~63), 대학별 단독시험기(1964~68), 대입 예비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기(1969~80), 대입 예비고사와 고교 내신(1981), 대입 학력고사와 고교 내신 병행기(1982~87), 선(先)지원 후(後)시험제(1988~93), 수능제도(1994) 등 복잡한 진화를 거쳤다.    먼저 광복 후 1961년까지는 입시관리 운영이 대학 자율에 거의 맡겨졌다. 대학이 학생 선발의 전권을 가졌던 시기다. 대학별 고사는 필답고사, 신체검사, 면접.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고교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내신을 대입전형에 반영하도록 권장했으나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1963년까지는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의해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시제’가 만들어졌다. 대학의 입시부정과 비리로 사회적 불신이 높았던 시절이다. 전형방법은 국가고시 성적과 대학 자체 실기·신체검사·면접 점수를 합산했다.     그러다 1964년부터 대학별로 단독시험제로 회귀했다. 국가고시제가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시험은 대학이 고교교육 과정과 계열별 학과 특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정했다.    이 제도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대학 간 입시기준의 편차와 특정 교과목 위주의 시험 폐단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결국 1969년 대입 예비고사제가 도입됐다. 예비고사는 자격고사의 형식을, 본고사는 특정 교과에 집중된 고학력 경쟁고사의 성격을 띠었다. 이 제도는 1980년까지 대학별 본고사와 병행됐다.    전두환(全斗煥) 정권은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통해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이라는 교육개혁을 단행했다. 이듬해 대학 본고사를 없애고 출신고교 내신과 예비고사 성적으로 학생을 뽑았다.    1982년에는 예비고사가 ‘대입 학력고사’로 이름이 바뀌었고 논술도입(1986~87)과 함께 선지원 후시험, 복수지원제가 차례로 허용됐다. 그러나 눈치작전이 극심했다.    수능은 1987년 교육개혁심의회의 ‘교육개혁종합구상’에서 처음으로 논의됐다. 수차례의 공청회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출신의 교수들(황정규·이종승·박도순)의 검토를 거쳐 미국의 대입평가 방식인 SAT와 ACT의 성격을 융합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국회입법조사처 정환규 박사는 “수능은 미국의 SAT와 비슷한 표준화 검사로 개발됐다. 이는 학력고사 중심의 대입전형 제도가 평가신뢰도 부족 때문에 암기 위주의 대입준비 경향을 초래한다는 평가 설계상의 문제점과 응시 과정에서 극심한 눈치작전과 같은 폐해가 발생하는 시행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개발된 것”이라고 했다.
 
  미국식 SAT 도입, 學者然한 空論?
 

작년 11월 24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김성훈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수능 출제 오류에 사과하며 인사하고 있다. 김 원장은 사의를 밝혔다.
  만약 미국 고교처럼 한국 고교가 정규 수업시간에 SAT 문제집을 풀지 않는다면 학생들은 수업을 외면하고 사교육에 기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교사의 계속된 말이다.
 
  “한국의 대입시험은 외국과 사정이 다릅니다. 중·고교 6년 공부가 60년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수능입니다. 수능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라 불릴 만큼 절박한 싸움입니다. 학교는 전쟁터고 수험생은 군인이며 교과서·문제집으로 무장해 밤을 새워 싸우죠. 미국식 SAT와 단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외국의 입시 전문가들은 한국의 수능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수능 당일, 관공서와 직장의 출퇴근 시각이 늦춰지고 모든 중·고교 1~2학년은 임시휴교를 한다. 초등학교도 단축수업에 동참한다. 시험장 주변에 경찰이 출동, 200m 이내 모든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지각 수험생을 경찰 사이드카로 실어나르며 아픈 학생이 양호실에서 시험을 봤다는 미담 기사가 매년 반복된다.
 
  수능은 한국 교육의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역대 정부마다 수능을 교육개혁의 잣대로 삼아 수술대에 올렸다. 심지어 수능폐지안까지 나왔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집권 초기 “시험 성적으로 전국 학생을 줄 세우는 폐단을 고친다”며 수능 폐지(수능 대신 ‘지역단위별 학력고사 도입’과 서울대 폐지)를 꺼냈다가 유야무야됐다.
 
  경기도율곡교육연수원장을 지낸 강원대 강치원(姜治遠) 교수(사학과)는 “수능을 뜯어고칠 게 아니라 고교 공교육의 정상화가 답”이라며 “학교 수업만으로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하고, 고교 간 내신의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받아들일 수 있는...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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