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8일 수요일

운명 다한 한국 교육, 누가 어떻게 바꿀 건가

2010년 3월 10일 아침 교육부 출입기자들이 장관실로 황급히 향했다. 입시 관련 긴급 정책브리핑이 있었다. "올해부터 치르는 수능은 EBS 교재와 수업에서 70% 나옵니다." 정부는 '수능·EBS 연계 정책'을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일종의 사(私)교육 대책이었다. 이렇게 하면 학원 안 가도 되고 사교육비 부담이 줄어든다고 했다. 하지만 고교생 1인당 사교육비는 그 후에도 꾸준히 올랐다.

이 정책 효과는 엉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을 암기왕으로 키웠다. EBS 교재에 나오는 문제와 지문을 통째로 외웠다. 영어 지문을 번역본으로 공부하는 편법이 생겼다. 그렇게 하면 수능에서 영어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다고 한다.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고교 교사 200명과 학생 800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대다수 학생이 문제 푸는 기계가 됐다고 한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EBS 교재 풀이만 반복한다"고 응답했다. 나라 밖에서는 창의성 교육을 한다고 뜨거운데, 한국 교육은 정반대 지점에 있다.

해방 후 우리 입시제도는 3년에 한 번꼴로 바뀌었다. 최근엔 매년 바뀌다시피 한다. 고 1·2·3학년이 치르는 수능이 모두 다른 때도 있었다. 그래도 객관·주입·암기식 입시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지선다형 수능' 틀 안에 갇혀 있다. 그 수능 문제를 보고 포스텍(포항공대) 김도연 총장이 "화가 난다"고 했다. 문제를 이리저리 꼬고, 함정 만들고,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마치 국가가 학생 상대로 '꼼수'를 부리는 것 같다는 거다. '있는 대로 다 고르시오'라고 하면서 답이 하나인 것은 학생들에게 '골탕 한번 먹어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수학은 '50분에 25문항 풀기' 같은 속도 경쟁이 수십 년째 이어진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질문하는 학생은 살아남기 어렵다.

대학수학능력시험장 모습. /조선일보 DB

최근 일부 학교에서 토론 수업, 프로젝트 수업을 활발히 한다. 정부가 도입한 자유학기제가 이런 교육에 씨를 뿌렸다. '지금 교육으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입시 앞에선 모든 논쟁이 중단된다. 객관·주입·암기 교육의 결정판인 수능이 버티고 있는 한, 아래 학년에서 아무리 신선한 시도를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와 형편이 비슷했던 일본은 2014년 교육개혁안을 발표하고 입시 개혁을 시작했다. 200개 고교에 우선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커리큘럼을 도입해 점차 확대하기로 했다. 토론식 면접으로 대학 정원의 30%까지 선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식 암기보다 사고력, 판단력을 중시해 학생을 뽑겠다는 선언이다.

수능이 도입된 지 25년째다. 이 시험은 초기에 통합적 사고를 평가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점점 암기형·함정 피하기 시험으로 변질됐다. 10년 안에 직업 절반이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 변화 속도는 산업혁명의 10배, 규모는 100배, 임팩트는 3000배라 한다. 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생각의 유연성과 근력을 키워줘야 한다. 한국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 남 따라잡는 인재(fast follower) 키우는 데 최적화돼 있다. 그 역할은 끝났다. 지금 나라 안팎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누군가는 미래를 내다보고 교육을 어떻게 바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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