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4일 금요일

베토벤과 그를 존경한 브람스가 만났다면…


"브람스, 우린 많이 닮았구먼… 음악적 열정과 괴팍함까지"
"베토벤 선생님 뒤따라 음표와 평생 씨름했죠"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2017년은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과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가 세상을 떠난 지 각각 190년, 120년이 된 해이기 때문인데요. '음악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이 두 사람은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는 명곡들을 많이 남겼어요. 특히 브람스는 앞선 시대에 살았던 베토벤을 존경하면서도, 그를 뛰어넘기 위해 평생을 바쳤지요.

이틀 뒤인 3월 26일, 베토벤의 사망 190주기를 맞아 두 사람의 삶과 음악을 이야기로 재구성했습니다. 이들이 하늘나라에서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여 볼까요?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나소연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한 ‘세기의 음악가’
브람스: 베토벤 선생님! 드디어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6년 뒤에 독일의 북부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작곡가 브람스라고 합니다. 선생님은 저뿐만이 아니라 당시 음악가들에게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산을 넘으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지요. 저 역시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친구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거인(베토벤)의 뒤를 따라가며 음악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 가끔 환청이 들리기도 했어요. 등 뒤로 뚜벅뚜벅 쫓아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 악보에 구멍이 날 때까지 열심히 곡을 쓰고, 또 썼습니다.

기사 이미지
베토벤: 하하, 그 마음이 가상하군. 자네가 나를 ‘롤 모델(role model)’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익히 전해 들었네. 자네가 20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발표한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10번째 교향곡’이란 찬사를 들었다지? 뭐, 들어줄 만은 하더군. 하지만 내 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교향곡 4번은 자네만의 색깔이 묻어나서 좋았다네. 장엄하면서도 진한 고독감이 묻어났달까. 자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내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음악가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뿐이라네. 어린 시절 그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브람스: 저도 아는 아주 유명한 일화지요. 독일 본에서 나고 자란 선생님이 열일곱 살 무렵 음악 공부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가셨을 때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모차르트 앞에서 즉흥 연주를 하셨다던데요. 그때 모차르트가 옆 방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서 한 말이 전해집니다. “잘 지켜봐. 저 청년은 앞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이야기할 만한 작품을 남길 거야.”

베토벤: 그래 맞아. 나를 존경했다더니 나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군. 궁중 악사였던 우리 아버지는 내가 모차르트처럼 되기를 바랐어.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지. 하지만 난 모차르트 같은 신동은 아니었어. 그저 피아노와 오르간을 좋아하는 소년이었다네. 차츰 실력이 쌓이면서 연주를 통해 돈을 벌었지.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거든.

브람스: 저도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이 무척 가난했거든요. 무명 연주가였던 아버지는 돈을 얼마 벌지 못했고, 그마저도 자신이 노는 데 써버렸습니다. 전 열심히 피아노 공부를 했어요. 술집에서 밤늦게까지 연주를 하며 돈을 벌었지요.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제 대표작 중 하나인 ‘독일 레퀴엠’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만든 곡입니다.

완벽주의자들에게서 탄생한 완벽한 곡

기사 이미지
베토벤: 나도 그 곡 들어봤네. 내가 4년이란 시간을 들여 선보인 ‘장엄 미사’에 견줄 만하다고 칭찬들을 하더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음악 작업에 영감을 주곤 하지. 그리고… 신체적 장애 등 삶의 고난과 역경도 말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지상에서 26세 무렵부터 귓병을 앓지 않았나? 30대가 돼서는 아예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네. 사랑하는 음악, 내가 만든 곡을 들을 수 없다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들었지.

브람스: 선생님이 32세가 되던 1802년, 동생들한테 유서도 쓰셨다지요?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음악적으로) 꺼낼 때까지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선생님의 강한 의지와 열정이 ‘운명’이란 이름이 붙은 교향곡 5번에 고스란히 녹아 있더군요. “딴딴딴, 딴-”이라는 웅장한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운명이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기분이 듭니다. 침묵 속에서 완벽한 소리의 세계를 창조하셨더라고요.

베토벤: 제대로 느꼈구먼. 운명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쓴 곡이라네. ‘합창’이라고도 불리는 교향곡 9번에는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지. 이 곡을 무대에 처음 올렸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 공연이 끝난 뒤, 나는 무대 한편에 가만히 서 있었지. 그런데 알토 독창자가 다가와 옷소매를 당기더군. 그제야 객석을 봤네.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기뻤다네.

기사 이미지
브람스: 저도 선생님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곡을 쓰기 위해 음표 하나하나와 힘겹게 씨름을 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선생님과 같았는데요. 완성한 작품에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발표하지 않고 태워버리기 일쑤였지요. 교향곡 4개, 피아노 협주곡 2개,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3개, 헝가리 무곡, 대학 축전 서곡 등을 남겼어요. 친구의 아들이 태어난 걸 축하하기 위해 만든 자장가도 현대 사람들이 무척 좋아하더군요.

베토벤: 나 역시 자네처럼 ‘대충’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네(웃음). 걸어 다니면서도 늘 작곡에 몰두했지. 머리와 옷차림은 엉망진창이었어. 음악은 물론 커피 끓이는 방식까지 완벽해야 했네. 매일 커피콩 60알을 세서 커피를 끓였지. 자네도 커피를 좋아했다지?

브람스: 네, 커피 기계를 샀을 정도예요. 선생님과 저는 성격도 닮았습니다. 낯을 가리고 괴팍한…. 하하. 선생님이 시인 괴테와 길을 걷다가 귀족을 만났는데, 뒷짐을 지고 거만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전 손님들을 반기지 않았고, 때로는 골방에 숨어서 집에 없는 척했어요. 그러나 친한 음악가들은 많았습니다. 그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받았지요.

베토벤: 자네나 나나 마지막까지 곡을 쓰다 죽은 사람 아닌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음악 선물을 한 아름 건넸으니 말일세. 비록 고달팠지만, 멋진 인생이었네.

>> 알쏭달쏭 클래식 용어

소나타:
여러 악장으로 구성된 소규모 기악곡을 말합니다. 악장이란 여러 개의 독립된 작은 곡들이 모여 큰 악곡을 이룰 경우, 각각의 작은 곡들을 일컬어요. ‘울려 퍼지다’ ‘연주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소나타(sonata)는 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를 위한 작품이 많답니다.

교향곡: 관악기와 현악기가 조화롭게 연주하는 대규모 기악곡입니다. 즉, 여러 오케스트라 악기가 함께 합주를 하는 형식이죠. 대게 3~4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고, 그중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인 경우가 많아요. 교향곡을 뜻하는 ‘심포니(symphony)’란 단어는 ‘소리의 조화’를 뜻하는 그리스어 ‘신포니아(sinfonia)’에서 유래했어요.

협주곡: 관현악단과 독주 악기가 함께 협력해 연주하는 형태입니다. 독주자가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 따로 마련되기도 해요. 협주곡은 콘체르토(concerto)라고도 불린답니다. ‘경쟁하다’ ‘협력하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콘체르타레(concertare)’에서 온 단어예요. 조선일보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