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20일 월요일

단순한 계산을 넘는 수학적 발견의 즐거움


일본인 독립연구자인 모리타 마사오가 한국 수학교육의 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는 지난 22일24일까지 청소년, 학부모, (수학)교사 등에게 가톨릭청년회관, 광주하남교육청, 강명초등학교에서 수학콘서트를 펼쳤다. 모리타 마사오는 “무의미한 알고리즘의 훈련을 견딜 수 있는 강인함과 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섬세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리타 마사오는 일본에서 수학을 주제로 수학연주회를 열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대중강연자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미국 시카고에서 자라나 일본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도쿄대 문과에 입학했다가 다시 수학과로 편입해 졸업했다. 그는 2010년부터 수학도장을 설립해 대중들과 소통하며, 일본 전역에서 ‘어른을 위한 수학 강좌’를 열고 있다. 음악에 작곡가와 연주가가 있듯이, 수학에도 연구자와 대중강연자(연주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토크 콘서트는 시작됐다.

이번 대중 수학콘서트는 수학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 중인 ‘수어빌(수학으로 어깨 빌려주기. 팟캐스트와 페이스북 참조)’에서 주최했다. 이 모임에선 모리타 마사오의 『수학하는 신체』(에듀니티, 박동섭 옮김, 2016)를 읽고 감동을 받아 저자를 불러오기로 했다. 이번 수학콘서트는 역자인 박동섭 독립연구자가 맡아,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독립연구자의 만남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수학 대중화의 가능성 확인

모리타 마사오는 수학이 단지 계산에 대한 학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수학은 숫자보다는 마음과 정서에 의한 발견의 기쁨에 더욱 가깝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이다. 그런데 ‘mathematics’를 ‘數學’으로 번역함으로써 마치 계산만이 전부인 것처럼 오도됐다.
모리타 마사오는 하이데거의 개념을 인용해 수학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수학은 마음과 정서로서 “끝없는, 열린 결말의, 창조적 행위”인 것이다. 정서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계산을 의미하는 ‘calculate’는 원래 기록하다는 의미였다. 실제 의미의 세계에서 사과 2개에 1개가 더해지면, 기호인 2+1로 기록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기록 자체만으로도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사칙연산으로 확장되고, 마이너스 개념,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 개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무의미한 계산(기호조작·syntax)을 반복하더라도 그 안에서 의미(semantics)의 세계를 만들고, 다시 창조된 의미가 기호조작으로 반복되는 캐치볼 같은 순환이 바로 수학의 역사라고 모리타 마사오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17세기 수학자 파스칼은 “2-4=0”이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특히 파스칼은 이걸 모르는 수학자들이 많다고 비웃을 정도였다고 한다.

숫자는 양을 나타내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숫자에 위치의 개념을 창조해 수직선이 탄생한다. +는 오른쪽으로, -는 왼쪽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숫자는 이제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된다. (-1)×(-1)=1이 되는 것은 180도 회전을 두 번 하여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설명된다. 의미의 세계에서 기호조작으로, 기호조작에서 다시 의미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무의미한 기호조작에서 의미의 세계를 창조

모리타 마사오는 초등학생을 위한 수학교재를 집필한 바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엔 숫자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너희들이 가장 멀리 가본 곳은 어디였을까요?”, “우리가 가장 멀리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등의 방식으로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내가 실제 가본 곳과 가장 멀리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간극을 조금씩 좁혀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사고를 확장하고 의미를 발견해내며 기뻐하자는 것이다.

수학콘서트에 참가한 관객들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자)’가 되지 않고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 질문했다. 모리타 마사오는 계산의 극단화인 알고리즘 훈련의 계산이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이 전혀 나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된 훈련을 견뎌내는 강인함이 중요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일궈낼 수 있는 섬세함이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그건 비단 학교 안에서만 발생하는 차원이 아니라 삶의 다양성과 살아있음 그 자체에서 가능하다.

모리타 마사오는 학생들과 만나 교육의 방법 차원에서 구체적인 걸, 즉 실천의 차원에서 흔히 생각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낸 바가 없다고 한다. 학생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정서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며 우리가 왜 수학을 공부하는지, 신체를 토대로 했던 수학이 어떻게 다시 신체를 이탈하며 우리 몸으로 돌아오는지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알고리즘의 세계에 제대로 푹 빠져보는 게 필요한지 모른다.

모리타 마사오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수학자 오카 기요시가 쓴 수학책에 숫자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부터였다. 국내에는 『수학자의 공부』(사람과나무사이, 2018)로 번역되기도 했다. 오카 기요시는 다변수 복소 해석학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오카 기요시는 ‘비판’보단 ‘정서’를 강조한다. 수학 문제를 못 푼다고 평가하고 지적하기 보단 따뜻한 마음과 발견의 기쁨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정서를 키워가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리타 마사오에 따르면, 오카 기요시는 제자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흔한 수학 수업처럼 매번 계산과 증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 하나를 매일 보여주고 온전히 화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오면 화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서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때 수학의 세계에서도 그런 깊이와 넓이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 건 아닌가 짐작해본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가본 사람만이 또 다른 준험한 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리타 마사오는 초등학생들에게 숫자가 어디서 탄생했는지 물어보면, 나무에서 열매로 맺어졌다거나 수학교과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답변을 종종 들었다고 한다. 귀여운 답변이지만, 숫자라는 건 인류가 발명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숫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며 절대성을 지니지 않는다. 역사성과 소통, 상황과 맥락 속에서 탄생한 수학, 이 수학에서 수학적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고 모리타 마사오는 강조했다.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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