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 수요일

꿀벌의 춤 1초간 꼬리 흔들흔들, 1㎞ 거리에 꿀 있다는 뜻


꽃 위치 기억했다가 동료에게 공유
저장해온 꿀 뱉어 꽃 종류 알려주고 뱅글뱅글 돌면 100m 내에 있다는 뜻
꼬리를 오래 흔들수록 먼 거리 의미

꼬리 '흔들춤'은 1528가지로 다양… 이동경로, 꿀의 가치 등 세세히 전달

3월에 접어든 요즘, 낮 동안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봄을 준비하는 식물들이 눈에 띄고 있어요. 매화·풍년화 등 이른 시기에 개화한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는 꿀벌의 활동도 시작됐지요. 그런데 꿀벌은 무작정 꽃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꽃의 종류와 꽃이 피어 있는 장소 등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똑똑한 곤충이랍니다. 과연 꿀벌은 어떻게 정보를 전하고 서로 의사소통할까요?

꿀벌 생존과 직결되는 꽃에 대한 정보

꿀벌은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모아 먹이로 삼아요. 잔털이 많은 작은 몸으로 꽃가루를 모아서 뒷다리에 동그랗게 공처럼 붙이고, 꿀은 삼켜 보관하면서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죠. 꿀벌이 꽃을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 식물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가 꿀벌의 몸에 묻고, 이 꽃가루가 다른 꽃의 암술에 묻는 '수분'이 일어나는데, 이런 과정으로 수정하여 번식하는 꽃을 충매화라고 해요.
[재미있는 과학] 1초간 꼬리 흔들흔들, 1㎞ 거리에 꿀 있다는 뜻
▲ /그래픽=안병현
꿀벌은 보통 여왕벌 한 마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개체가 집단생활을 하고, 집단 내에서 분업이 잘 이루어져 있어요. 알을 낳아 집단을 형성하는 여왕벌과 번식을 위해 정자를 제공하는 수벌, 애벌레를 돌보고 벌집을 만들어 유지하며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는 등 많은 일을 담당하는 일벌이 대표적이지요.

한 해 동안 꿀과 꽃가루를 열심히 비축해서 다 같이 겨울을 보내야 하므로 일벌의 채집 활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꿀벌에게는 어느 위치에 어떤 꽃들이 얼마나 피어 있는지를 아는 것이 생존에 영향을 주게 되지요. 무작정 꽃을 찾아 나섰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체력과 식량만 소모하거나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꽃과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카를 폰 프리슈(1886~1982)는 꿀벌의 움직임에 특별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1914년 그는 설탕 시럽이 담긴 작은 접시 밑에 색종이를 깔고 벌이 색을 구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합니다. 그 결과 꿀벌이 흰색과 노란색, 파란색, 보라색을 다른 색과 구별할 수 있고, 태양의 위치와 하늘에서 산란한 빛의 편광 패턴, 자기장 등을 이용해서 꽃이 피어 있는 장소를 정보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정보를 동료에게 전달한다는 것이었어요. 프리슈는 수백 마리의 벌을 준비하고, 각 벌의 등에 여러 가지 색깔의 페인트로 작은 점들을 찍어 구분할 수 있게 한 후 벌들의 행동을 관찰했어요. 그 결과 우선 일벌 중 일부가 먼저 정찰에 나서 발견한 꽃의 꿀을 가지고 벌집으로 돌아오고, 이후 다른 일벌들도 정찰벌이 다녀간 장소로 몰려가 채집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즉 정찰벌이 다른 일벌들에게 꽃에 대해 알려준 것이죠.

우선 정찰벌은 다른 일벌 앞에서 자신이 발견한 꽃의 꿀을 뱉어 꽃의 종류를 알려요. 그러고 나서 그 꽃의 위치를 춤으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민들레꽃의 꿀을 한 방울 뱉어놓고 한 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원형춤'을 춘다면 민들레는 벌집에서 50~100m 이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만약 민들레가 그보다 더 먼 곳에 있다면 정찰벌은 '흔들춤'을 추게 됩니다. 흔들춤을 출 때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꽃이 있는 곳의 각도만큼 틀어서 짧게 전진한 후, 오른쪽으로 반원형으로 돌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왼쪽으로 반원형으로 돌아요. 이때 꽃까지 거리가 멀수록 전진할 때 꼬리를 더 많이 좌우로 흔들흔들거려요.

심지어 꼬리로 춤을 추는 시간은 꽃이 있는 곳까지 거리에 비례한다고 해요. 프리슈는 벌이 꼬리로 1초간 춤을 추는 것이 약 1㎞ 거리를 뜻한다는 것도 알아냈어요. 그는 이 모든 연구에 대한 공로로 197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춤으로 이동 경로도 자세히 알려

꿀벌의 의사소통 연구는 프리슈 이후에도 많은 과학자가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최근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진은 2015년부터 3년 동안 넓은 대초원의 서로 다른 위치에 꿀벌 두 집단을 놓고 행동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어요. 연구 결과 꿀벌의 흔들춤을 1528가지로 구별할 수 있고, 이 동작들은 마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처럼 꿀이 있는 곳까지 상세한 이동 경로와 그 꿀이나 꽃가루의 상대적 가치까지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즉 벌들이 기존에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서로 전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또한 일 년 중 채집 활동이 거의 마무리돼 가는 늦여름과 가을 무렵에 꿀과 꽃가루를 찾기 위한 춤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다는 사실과, 벌들이 다른 지역보다 자신이 사는 지역 고유종에서 꿀이나 꽃가루를 채집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도 밝혀냈어요.

꿀벌은 꿀이나 프로폴리스 등 자원을 제공하고 수분을 돕는 등 생태계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맡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그 수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어요. 꿀벌의 행동과 소통에 관한 연구 결과는 꿀벌이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정보를 주기 때문에 꿀벌 보호에 도움을 주고 있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들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결국 공존하는 방법이 되는 셈이지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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