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송 시대에 유학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해 성리학을 완성시킨 주자가 백록동서원을 세웠을 때입니다. 당시 주자의 경쟁자였던 육상산이 와서 축하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주자에게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서원을 세웠다고 여기라고 했습니다. 육상산은 논어의 말을 인용해 “학문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 돼야 한다”고 강변한 것입니다.
학문의 유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입신양명만 추구하는 학문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사회를 어지럽게 할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을 죽이게 됩니다. 칼은 한 사람의 몸을 찌르지만 지식은 수많은 영혼을 찌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지식이나 학벌로 보면 최고 수준인 사람들이 국민들을 분노와 도탄에 빠뜨리고, 자신마저 파멸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위인지학을 책망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생명에 유익함을 얻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국민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