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도형 인간이 2차원 선분 세상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4차원 도형 인간이 3차원의 세계에 놀러온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100년도
전에 이런 상상을 담은 소설, ‘플랫랜드’가 영국에서 나왔다. 플랫랜드의 작가는 19세기 영국의 신학자이자 문학가이고 교육자이기도 한 에드윈
에벗(1838~1926)이다. 정교한 수학적 논리로 4차원 세계를 예측한 플랫랜드는 과학적 가치가 높은 문학작품이어서 1952년 2판이
출간되었을 때 아인슈타인의 동료인 바네시 호프만이 추천사를 쓸 정도였다.
소설
표지에 저자는 ‘정사각형(A Square)’으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사회적 모순과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필명을 사용한 것이다. 또 저자는 비교적 가벼운
내용의 플랫랜드가 자신의 학문적 명성에 누가 될까봐 필명으로 발표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대표작은 바로
이 소설이다.
플랫랜드(Flatland,
1884년)’는 제목이 의미하듯 평평한(flat)
세계(land),
즉 2차원 평면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1부는 플랫랜드에 살고 있는 평면도형 자체에 대한 설명, 그리고 평면도형의 생활과 제도를 기반으로
전개된다. 플랫랜드의 평면도형들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지고 사고를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데, 그 모양은 성별과 신분에 따라
결정된다.
우선
여성은 넓이가 없는 선분이다. 양끝이 날카로운 선분이 다른 도형과 부딪힐 경우 다칠 수 있으므로, 여성의 행동 지침은 법으로 정해져
있다.
1차원
선분으로 표현되는 여성과 달리 남성은 넓이를 갖는 평면도형이다. 하층 계급은 이등변삼각형, 중간계급은 정삼각형, 전문직 종사자는 정사각형이나
정오각형, 귀족은 정육각형 이상의 정다각형으로, 신분이 높을수록 변의 수가 많다. 특히 성직자는 원으로 표현된다. 이는 소설이 나올 당시 지나친
특권을 누리고 있었던 영국 성직자를 비판한 것이다.
하층
계급인 이등변삼각형은 신분이 낮아질수록 밑변의 길이가 짧아지고 꼭지각이 작아진다. 이처럼 이등변삼각형의 모양이 뾰족해지면 선분에 가까워지므로
남성 하층 계급의 최저 신분과 여성은 맞닿게 된다. 저자는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이 투철했지만, 당시 지배적이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여성을 평면도형보다 한 차원 낮은 선분으로 표현한 것이다.
플랫랜드의
평면도형들은 서로를 평면도형이 아닌 선분으로 식별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동전을 갖고 실험해 보자. 실제 3차원에서 동전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으로 보이지만, 점차 평면에 가까운 위치에서 보면 타원 모양으로 납작해지다가, 평면에서는 동그라미가 선분으로 보인다. 이런식으로 2차원의
평면도형들은 서로를 1차원 선분으로 보게 된다.
소설의
2부는 주인공이 1999년 마지막 날 꾸는 꿈으로 시작된다. 꿈 속에서 주인공인 정사각형은 1차원인 라인랜드(선분)와 0차원인 포인트랜드(점)를
차례로 방문한다. 정사각형은 라인랜드와 포인트랜드에서 더 높은 차원의 플랫랜드가 존재함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그 세계에 사는 도형들은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이번에는
스페이스랜드(입체도형)의 구(Sphere)가
플랫랜드를 방문해 3차원 세계에 대해 설명 한다. 주인공인 정사각형은 라인랜드나 포인트랜드의 도형들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3차원 세계의 존재를
믿지 못한다.
구는
가로와 세로에 높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추가하면 3차원이 됨을 설명하지만 2차원 평면세계에 익숙한 주인공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에 구는
평면을 관통하면서 구의 단면인 원의 크기가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었고, 비로소 정사각형은 구의 존재를 인식하고 2차원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정사각형은
새로 알게 된 3차원 세계의 복음을 플랫랜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 했지만, 불온한 사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소설의 끝은 투옥 후 7년이 경과한 시점으로, 정사각형은 차원의 진리를 알리기 위해 감옥에서 글을 남기기로 결심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지금부터는
조금 어렵다. 그렇다면 4차원 도형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4차원 도형을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만들기는 어렵지만, 1차원 선분에서 2차원
평면도형으로, 또 2차원 평면도형에서 3차원 입체도형으로 차원을 높인 과정을 적용하면 4차원 도형을 추론할 수 있다. 정사면체에서 출발해 4차원
도형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2차원
평면도형의 기본은 꼭짓점이 3개인 삼각형이고, 3차원 공간도형의 기본은 꼭짓점이 4개인 사면체이다. 그렇다면 4차원 도형의 기본은 꼭짓점이
5개인 도형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한편
2차원의 변이나 3차원의 모서리는 두 개의 꼭짓점을 연결해 만들어진다. 즉 사면체의 모서리 개수는 4개의 꼭짓점에서 2개를 선택하는 경우의 수와
같고, 이는 조합(combination),
즉 4C2=6을
이용해 구할 수 있다. 사면체를 이루는 삼각형 면의 개수는 4개의 꼭짓점에서 3개를 선택하는 경우의 수와 같고, 조합 4C3=4를
이용해 구할 수 있다. 이 방법을 4차원에 적용해보자. 4차원 기본 도형은 5개의 꼭짓점을 가지므로, 모서리의 개수는 5C2=10이고, 삼각형 면의 개수는 5C3=10이다. 또 4차원 기본 도형이 포함하는 사면체는 4개의 꼭짓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사면체의 개수는 5C4=5이다.
1차원
도형은 선분, 2차원 도형은 다각형, 3차원 도형은 다면체이고, 4차원 도형은 초다면체라고 한다. 2차원 평면도형은 변의 개수에 따라 n각형,
3차원 입체도형은 면의 개수에 따라 n면체라고 하는 것처럼, 4차원 도형은 포함하고 있는 입체의 개수에 따라 n-셀(n-cell)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만든 4차원 도형은 5개의 사면체를 포함하므로 5-셀 혹은 5포체라고 한다. 이 4차원 도형은 3차원 도형인 사면체, 즉
피라미드를 한 차원 높인 것이기 때문에 초사면체(hyperpyramid)라고도
한다.
| 5셀과 8셀을 애니메이션으로 표시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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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면체에서
출발한 초입방체는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에 건축물에 이용되기도 한다. 파리 서쪽 라 데팡스 지역에 위치한 신개선문 ‘그랑드 아르슈(Grande Arche)’는
초입방체 모양이다. 1989년 7월 14일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세운 그랑드 아르슈의 높이는 105m로, 파리 중심에 위치한 개선문
크기의 두 배다. 4차원 초다면체들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대칭 모양이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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