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나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고속도로가 꽉꽉 막힌다. 한정된 도로에 많은 차량이 동시에 몰리다 보니 교통체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가끔은 원인도 모를 교통체증을 겪기도 한다. 신호도 없는 고속도로에 이유도 모를 교통체증은 왜 생기는 걸까?
특별한
원인도 없이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현상을 ‘유령체증’이라고 한다. 유령체증이 생기는 원인은 바로 운전자들의 ‘반응지체’ 때문이다. 가령
고속도로에서 맨 앞을 달리던 트럭이 있다고 하자. 달리던 트럭이 갑자기차선을 바꾸면, 트럭 뒤에 있는 차는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게 된다.
그러면 그 차 뒤에 있던 차 역시 영향을 받아 속도를 줄이게 되고, 뒤에 있는 차는 연속으로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교통체증을
겪게 된다.
수학자들은
이런 유령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의 수학자들로 이뤄진 연구팀은 교통체증이
‘폭발 파동’을 나타내는 식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폭발 파동이란, 말 그대로 어떤 물체가 폭발할 때 생기는 파동현상을 뜻한다.
폭발할 때 입자가 연쇄적으로 퍼지는 현상이, 차량의 움직임이 연쇄적으로 다른 차량에 영향을 주는 교통체증과 비슷했다. 교통체증과 전혀 다른
물리학의 파동 방정식이 교통체 증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 것이다.
또
수학자들은 도로 위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물과 같은 유체의 흐름과 비슷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이에 유체 역학을 이용해 교통체증을 해결하려는
수학적 모델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
막히는
길을 운전하다 보면 옆 차선은 잘 가는데, 유독 내가 가는 차선은 막힌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이에 관해서도 과학적인 이유를 연구한 적이
있다.
인지적인
착각 때문이다?!
1999년
캐나다 토론토대의 레델메이어와 스탠포드대의 팁시라니 교수는 인지적 차이에 의해 이런 현상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두
개의 차선을 만들어 차량의 위치와 행동, 속도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다른 차에 의해 추월 당할 때의 시간이 내가 다른 차를
추월할 때의 시간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내 차선이 더 막힌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고 결론지었다.
실제로
옆 차선의 차가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의 보스트롬 교수는 실제로 일정한 구간의 도로에서 천천히 가는 차선의 차량이 빠른 차선의 차량보다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로에 있는 전체 차량 중 무작위로 자동차를 선택하면, 막히는 차선에 있는 차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조사를 하면 자신의 차선이 더
막힌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2001년 ‘수학 플러스’라는 잡지에 발표됐다.
교통체증이
심각한 도로가 있다. 이 도로의 교통체증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쉽게 생각나는 방법은 정체구간이 심각한 도로를 대신할 또 다른
도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도로가 하나 더 생기면 정체구간에 있던 차량이 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로운 도로를 추가했을 때 교통 흐름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교통체증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브래스의 역설’이라고 한다.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래스가 1968년 발표한 ‘교통계획의 역설’이라는 논문에서 이 내용을 다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렇다면
브래스의 역설대로 교통체증을 더 유발하는 불필요한 도로가 있을까? 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는 미국 샌타페이연구소와 함께 교통체증이 심각한 미국의
뉴욕과 보스톤, 그리고 영국의 런던을 선택해 브래스의 역설을 직접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
먼저
각 도시의 도로망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특정한 두 지점을 출발점과 도착점으로 선택했다. 그런 다음 차량을 1대에서부터 점차 늘려가면서 운전자가
출발점부터 도착점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살폈다.
그
결과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 가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운전자가 가장 유리한 몇몇의 지름길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운전자의 선택은 곧 교통체증이라는 전체의 불이익으로 연결됐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으면
모두 실패하게 된다는 게임이론1) 의 ‘내쉬평형(Nashequilibrium)’이
교통문제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도로의 일부를 막아 보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했을 때 나타났다. 세 도시 모두 특정한 도로를 없앴더니, 그 도로가 있을 때보다
교통흐름이 빨라졌다. 즉, 세 도시에 모두 교통체증을 더 유발하는 불필요한 도로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불필요한 도로 중에는 다른 도로에
비해 압도적으로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도 포함돼 있었다. 지름길이 지름길이 아닌 것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면
교통 체증을 줄일 수는 없을까? 바둑판처럼 직교한 도로에 여러 개의 교차로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교차로 앞에서 녹색 신호등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다가 신호등이 바뀌면, 다음 교차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런데 단지 교차로 앞에 설 때마다 적색 신호등에서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났다면, 운이 좋은 걸까?
그
이유는 운이 아니라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운전자가 교차로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지 않도록 도로에 적합한 차량의 속도와 교차로 사이의 거리,
신호주기, 제한속도 등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녹색 신호등이 켜지도록 만든 신호체계를
‘연동신호체계’라고 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도로에서 차량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제
연동신호체계를 사용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보자. 그림 ➊은 연동신호체계를 사용하기 전, 자동차가 이동할 때 교차로에서 신호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보여 주는 그래프다. 400m마다 있는 교차로는 같은 시각에 30초를 주기로 신호가 바뀐다. 시속 30km로
달리는 자동차는 교차로 앞에 설 때마다 적색 신호등에 걸려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그림 ➋는 연동신호체계를 적용한 경우를 나타낸다. 모든
교차로 의 신호주기는 30초로 같지만, 신호가 바뀌는 시기를 엇갈리게 만들어 자동차가 그 다음 교차로 앞에 섰을 때 녹색 신호등으로
바뀐다.
이렇게
연동신호체계로 바꾸면 도로에서 차량이 원활하게 움직여 교통체증을 줄일 수 있다. 또 깜깜한 밤이나 새벽과 같이 차량이 없는 경우에는 신호에 자주
걸리면 교통질서를 어기기 쉽다. 이때 연동신호체계로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면, 운전자가 교통질서를 어기지 않고 지키게 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동시신호를 쓰고 있다. 한 번에 한 방향씩, 녹색 신호를 번갈아 주는 것이다. 십자형 교차로에서 네 방향 중 하나의 차로에 녹색 신호가
들어오면, 직진과 좌회전 그리고 우회전을 할 수 있어 동시신호라고 한다. 반면 비보호 좌회전은 좌회전 신호가 따로 없다. 녹색 신호가 들어왔을
때 직진 차량이 없는 틈을 타서 좌회전을 하는 방법이다. 눈치껏 좌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칫 사고가 날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보호 좌회전이 동시신호보다 훨씬 효율이 높다. 동시신호는 네 번 신호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한 번 놓친 신호를 기다리려면 3번의 신호를
기다려야 한다. 반면 비보호 좌회전은 1번만 기다려도 다시 신호를 받을 수 있다. 즉 비보호 좌회전의 신호주기가 2라면, 동시신호의 신호주기는
4다. 따라서 비보호 좌회전은 동시신호에 비해 2배 효율이 높다. 이 때문에 실제로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을 기본
신호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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