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가임은 탄소 원자 하나의 두께로 벌집 모양을 이룬 이차원 결정인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2010년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2000년에는 자석을 이용해 개구리를 공중에 띄우는 기발한 실험으로 ‘이그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의 과학잡지
에어(AIR)가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노벨상을 패러디하여 제정한 것으로 물리학, 화학, 의학, 경제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
기발하고 독특한 연구 성과를 낸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가임은 강력한 전자석을 이용해 개구리를 자석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개구리 자석과 전자석이
서로 밀치도록 만들어 공중부양에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자석이란 것은 서로 같은 극끼리 마주할 때만 밀치고 다른
극이 가까이 오면 당기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개구리 자석은 공중에 뜨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전자석에 달라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우선, 개구리 공중부양에 필요한 힘의 근원을 얘기하기 전에 자석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먼저 알아보자. 자석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마그네트(magnet)’는
고대 그리스의 ‘마그네시아(magnesia)’라는
현재 터키 서쪽 해안 지역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그곳은 자철광이 많은 지역이라 자석 성질을 띤 돌이 철과 같은 쇠붙이를 끌어 당기는 힘이
관찰됐던 곳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자철석이 다른 자철석이나 쇠를 끄는 현상 혹은 호박을 모피에 문지른 후 깃털을 끌어 당기는 현상을
물체에 영혼이 깃들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쓰는 자석(磁石)이라는
단어는 본래 자애로운 돌이라는 의미의 자석(慈石)으로
쓰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자애로운 어머니(자석)와 자식(쇠)이 서로 끄는 힘으로 자석의 인력 현상을 설명했다고 한다. 자석의 또 다른
이름은 ‘지남철(指南鐵)’이다.
남쪽을 가리키는 쇠라는 뜻이다. 지구의 남북 방향을 알려주는 자석은 나침반의 핵심이다. 화약, 종이, 인쇄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발명으로
강조되는 나침반은 세계 근대문명을 일으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자석
주변에 쇳가루를 뿌리면 일정한 형태로 달라붙는다. 철을 잘게 부수어 만든 쇳가루는 보통 자석 성질을 띠지 않지만 자석을 가까이 대면 쇳가루
조각이 자석의 성질을 띠게 된다. 막대 자석의 양쪽 끝은 N극 또는 S극이 되는데, 두 개의 막대 자석을 대면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치고, 다른
극끼리는 끌어당기는 성질을 보인다. 자석의 N극에 작은 쇳가루 조각을 붙이면, 쇳가루 조각 중에 자석의 N극에 닿은 부분은 S극이 되고 반대편에
닿은 쇳가루는 N극인 자석으로 변한다. 이 쇳가루 자석에 또 다른 쇳가루 조각을 붙이면 그 조각도 역시 (S-N)극을 갖는 자석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작은 쇳가루 조각을 연속해서 붙이면 막대 자석의 N극에서 출발해 (S-N)-(S-N)-...-(S-N)으로 연결되는 기다란 줄을
만들 수 있고, 그 긴 쇳가루 줄의 끝 부분에 만들어진 N극은 막대 자석의 S극에 연결시킬 수도 있다.
쇳가루가
만든 자석 줄의 모양을 보면 N극에서 뿜어져 나온 자성의 흐름이 S극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런 형태로 막대 자석의 N극에서
S극으로 전달되는 자성의 흐름을 자기장이라 한다. 이 자기장의 흐름에 쇳가루 같은 작은 자석의 N극 또는 S극이 놓이면 흐름의 방향과 같은 방향
또는 반대 방향으로 힘이 작용된다.
사실은
지구도 거대한 자석이다. 지도상의 북극은 자석의 S극, 남극은 N극이라서 지구가 만든 자기장의 방향은 지표면에서 북쪽을 향하기 때문에 나침반의
N극은 북쪽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자석의
N극과 S극 사이에 펼쳐진 자기장에 다른 자석의 N극 또는 S극이 걸치면 힘을 받게 된다고 해석을 했지만 ‘왜’ 그런 힘이 생기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앞선 글 [스마트폰 배터리 한 개로 들어올릴 수 있는 사람 수는?]에서 보면, 전기 현상에서는 “전하를 띤 물체 사이의 힘은 두 물체의
전하 크기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을 밝힌 쿨롱 법칙으로 전기의 존재와 힘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막대 자석 주변에
뿌려진 쇳가루의 형태를 자기장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시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석의 힘은 전기에 비해 시각적으로 수월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자기장이라는 것의 정체는 수수께끼다.
19세기
초 덴마크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인 에르스텟은 전선을 전지에 연결해 전류를 흐르게 해 전기줄에서 열과 빛을 내게 하는 실험을 하던 중 언뜻 전기와
자기의 연관성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그는 주변에 있던 나침반을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바싹 가져다 댔고 나침반이 전류의 흐름에 반응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에르스텟의 머리 속에서는 전류가 만들어낸 자기장의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일어난 일이지만 여기서 에르스텟은 자기력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찾았던 것이다.
에르스텟이
실험 결과를 보고한지 일주일만에 프랑스의 물리학자 암페어는 에르스텟이 실험을 통해 얻은 전류와 자기장의 관계를 명확한 수학적 이론으로 정리한
암페어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에르스텟에 의해 자철석에만 국한되었던 자기장의 존재가 전류에서도 드러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전기줄을 원통 모양으로
감아서 만든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류를 흐르게 할 때 생기는 자기장의 형태는 원통 모양의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의 모양과 같다. 현재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전기 모터에 쓰이는 전자석은 바로 이 솔레노이드 코일을 기본 모델로 하고 있다. 암페어의 법칙은 전기의 흐름인 전류가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까지만 설명한다. 그러나 “왜 자기장에 놓인 N극과 S극에 힘이 작용하는 것인지” 또 “자기장에 의한 힘의 근원이 전기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나란히
놓인 두 도선에 작용하는 힘의 방향은 도선에 흐르는 전류의 방향에 의해 달라진다. 양 도선의 전류 방향이 같으면 당기고 다르면 밀친다. 이
현상은 “자기장에 놓인 N극과 S극에 작용하는 법칙”과 일치한다. 두 개의 나란한 도선을 구부려 두 개의 원형 도선으로 만들면 각 도선은 한 번
감은 솔레노이드 코일, 즉 두 개의 고리가 된다. 여기에 전류가 흐르면 각 고리는 N-S극을 갖는 자석이 되는데, 같은 방향으로 전류가 흐른다면
두 고리 자석의 극은 (N-S)-(N-S)로 배열되어 N극과 S극이 마주보는 형태가 되어 서로 당기는 힘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한 쪽 고리의
전류 방향을 뒤집으면, (N-S)-(S-N) 형태가 되어 서로 밀치게 된다. 따라서 전류가 흐르는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자기장에 놓인
N극과 S극에 작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첫머리에서 말했던 ‘솔레노이드’ 자석 위에 떠있는 개구리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보통 쇳가루와 같은 상자성 물질1)은
자석을 가까이 대면 자기장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N극이 생기는 자석이 된다. 그런데 물이나 구리, 흑연 같은 물질은 자기장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N극이 향하게 되어 반자성 물질이라고 부른다. 생명체의 조직을 이루는 단백질이나 유기물, 그리고 플라스틱은 모두 반자성 물질에 속한다.
하지만 이런 반자성 성질은 자화되는 크기가 너무 작아 웬만한 세기의 자석으로는 효과를 보기가 쉽지 않다. 개구리를 자석 위에 띄우려면 적어도
지구 자기장의 32만 배 크기인 16테슬라(T)의 자기장이 필요하다. 이 정도의 자기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수력발전소의 발전 용량에 버금가는
4메가와트의 전력이 들어가는데, 사실 이 전력은 대부분 코일의 저항으로 소비되어 버린다. 만일 개구리가 아니라 사람을 자석 위에 띄우려면 최소
40테슬라의 자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개구리의 경우보다 1천 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하다. 현재 기술로는 어려운 일이다.
철과
같은 상자성 또는 강자성 물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물질은 외부 자기장을 걸어도 자석 성질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자철석이나 희토륨
자석은 외부 자기장 없이도 상온에서 자석이 된다. 특히 희토류 원소 네오디뮴과 철, 붕소 원소를 섞어 만든 네오디뮴 자석은 자기력이 매우 강해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기공명영상(MRI),
스피커, 헤드폰, 자동차 전기모터 등 강한 자석이 필요한 곳에 유용하게 쓰인다. 앞에서 전류가 흐르는 솔레노이드 코일이 원통 모양 자철석 자석과
같은 형태의 자기장을 만든다고 했지만, 실제 자철석 자석의 내부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 자철석이나 네오디뮴 자석이 자기장을 만드는 원리는
코일에 흐르는 전류가 자기장을 만드는 것과 다르다.
자철석과
같은 강자성 물질의 자성은 그 물질을 이루는 원자와 전자의 양자역학적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20세기 양자물리학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전자 스핀은 자성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스핀(spin)은
음전하를 띤 전자가 제자리에서 회전하여 맴돌이 전류처럼 자기장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전자의 스핀은 실제 공간에서 회전은
하지 않으면서 겉보기로만 회전하는 효과를 내는 양자상태로써 자기장을 만든다. 자철석 내부에 있는 전자들의 스핀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게
된다면 전류의 흐름이 없더라도 각 스핀이 만든 자기장이 합쳐져 원통 모양의 자석에서 나오는 자기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자석으로
다른 물질을 자화시켜 힘을 주고 받는 현상은 모두 자석의 N극 또는 S극에 가해진 자기장의 힘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해석은
여전히 자기장에 의한 힘이 전기에 의한 힘인 전기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 주지 못한다. 전기력과 자기력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근거해, 정지한 관성계와 움직이는 관성계의 차이를 고려하여, 전류가 흐르는 도선과 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전류가 흐르는 일직선 도선을 생각해 보자. 단위길이당 같은 양의 양전하와 음전하로 채워진 전기줄 안에 양전하는 정지해 있고 음전하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하자. 양전하와 음전하의 양이 같기 때문에 전하의 합은 ‘0’이다. 그러면 이제 도선에서 일정한 거리만큼 떨어진 거리에
음전하가 놓여 있다고 하자. 정지한 음전하 관성계에서 보면 도선의 전하량은 ‘0’이고 결과적으로 서로 주고 받는 전기력은 없다.
이제
도선 밖의 음전하가 도선 속의 음전하와 같은 속력으로 도선에 평행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를 생각하자. 도선 밖의 음전하가 있는 관성계에서
보면, 도선 속의 음전하는 정지해 있고 양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같은 크기의 속력으로 움직이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정지한
관성계에서 관측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운동 방향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도선 속 움직이는 양전하 간의 거리가 줄어들고 양전하의 밀도가 음전하의
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음전하가 정지해 있는 관성계에서는 도선 속의 양전하가 더 많아져 전하의 합이 양수가 되어
음전하를 당기는 전기력이 생긴다. 따라서 움직이는 음전하의 관성계에서 음전하는 도선 쪽으로 힘을 받아 가속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도선
밖 움직이는 음전하와 도선 사이에 작용하는 힘은 음전하가 정지한 관성계든 도선이 정지한 관성계든 상관없이 존재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제는 도선이
정지해 있는 관성계에서 도선과 움직이는 음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설명할 ‘어떤’ 힘이 필요하다. 앞선 글 [원심력은 가짜 힘]에서,
회전기준계에서 물체가 휘는 현상을 코리올리의 힘으로 해석한 것과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도선이 정지한 관성계에는, 전하의 합이 ‘0’이
되어 전기력은 사라지지만, 도선 밖 음전하가 있는 관성계에서 작용하는 전기력과 동등한 힘이 필요하다. 이 힘의 크기는 도선의 전류가 만들어낸
‘자기장’의 크기와 움직이는 전하의 속도에 비례하고 또 힘의 방향은 도선을 향해야 하는 복잡한 형태를 띠지만, 결국 움직이는 전자가 자기장
안에서 받는 힘에 대한 법칙은 음전하가 정지해 있는 관성계에서 작용하는 전하 간의 힘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 네이버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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