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일 화요일

일반상대성이론 완성한 집단지성의 힘


참호에서 발견한 첫 번째 해
칼 슈바르츠실트

전선에는 겨울비가 내렸다. 참호의 진흙 위로 깔아놓은 나무판자를 밟으며 벙커로 들어갔다. 슈바르츠실트는 독일 포츠담 천문대장으로 있다가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자원입대해서 동부전선에 복무하는 중이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론 방정식을 발표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전선에서 정확한 답을 하나 찾아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야전 의자에 우울하게 앉아 있었다. 그를 괴롭히는 자기면역 질환인 천포창 때문일 것이다. 손등에 물집 흔적이 보였다.

┗ 방정식의 정확한 해를 너무 빨리 구하셔서 아인슈타인도 깜짝 놀랐다던데요.




“그런가요? 내가 구한 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닌데…. 나는 가장 간단한 경우를 생각했을 뿐입니다. 구 대칭성만 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상태지요. 아, 아인슈타인 박사는 직교좌표계로 계산하셨던 모양입니다. 구 좌표계로 계산했더니 곧 풀렸어요. 간단하지만 의미 없는 해는 아닙니다. 오직 별 하나만 있는 경우지요.”

┗ 두 편의 논문을 보내셨더군요.

“네. 1915년 12월 22일의 논문은 별 바깥의 중력에 대해, 두 번째 논문은 별 안에서의 중력에 대해 구한 것입니다. 이 조건에서는 오직 별의 질량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 박사님이 구한 해에 특이점이 나타난다는 것은 아셨습니까?

“유한한 반지름에서 특이점이 나타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그런 것은 거리가 0이라든가 하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데요. 아직도 그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빛도 중력을 이기지 못해서 빠져나가지 못하거든요. 하긴 유한하다해도 태양이 반지름 3km 이하로 뭉쳐버리는 거니까 아마 그런 일은 없겠지요.”

나올 때에도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그가 앞으로 두 달 뒤에 죽는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는 팽창할 수 있다!
알렉상드르 프리드만


1924년 러시아 북서부 도시 성 페테르스부르크는 레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고 성 페테르스부르크 대학도 레닌그라드 대학이 되었다. 알렉상드르 프리드만의 연구실에는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비췄다.

┗ 교수님의 최근 논문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목이 “공간이 일정한 음의 곡률을 가지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해서”였죠.

“네,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시공간에 대한 방정식이라면 그 해는 세계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우주가 모든 곳에서 똑같이 균질하다는 가정 아래서 기하학의 가능성을 고려해보고자 한 겁니다. 곡률이 0이면 익숙한 평평한 공간이지만, 곡률이 음인 공간도, 양인 공간도 모두 가능합니다.”

┗ 그런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시간에 따라 우주의 스케일이 달라질수 있습니다. 즉 공간이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 정도는 우주의 에너지 밀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 아인슈타인은 처음에 반대했다던데요.

“아마도 결론이 뜻밖이다 보니 선입견 때문에 계산을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가서 제 답이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 우리가 사는 우주가 정말 팽창하거나 수축할 수도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수학자로서 이 방정식의 해를 구한 것입니다. 이 방정식이 정말 이 우주의 시공간을 묘사한다면, 그런 우주도 가능하다는 말이지요. 실제로 우주가 그런지는 관측을 해봐야 알겠지요. 그건 제 영역은 아닙니다만.”

프리드만 교수로부터 방정식의 풀이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듣고 연구실을 나올 때, 안경을 낀 젊은 학생이 나와 엇갈려서 연구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는데 학생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가모프라고 합니다.”

일반상대론의 2인자
아서 에딩턴


일식 때 태양 주위에서 빛이 휘는 현상을 직접 관측한 에딩턴 경을 만나러 영국 케임브리지 천문대에 도착했다. 에딩턴 경은 일반상대론을 유명하게 만든 사람이며, 동시에 일반상대론에 대해서는 당대에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 최근 팽창하는 우주에 관해 글을 발표하셨더군요.

“미국의 허블 박사가 발견한 결과를 보면 우리 우주의 공간이 팽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일반상대론 방정식의 결과와도 잘 어울리고요. 제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벨기에 출신의 르메트르 박사가 예전에 비슷한 내용의 우주론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번 허블 박사의 관측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는 셈이지요.”

┗ 경께서는 아인슈타인을 제외하면 상대성이론 최고의 전문가로 불리십니다.

“그런가요? 하긴 내가 1923년에 낸 책 ‘상대성의 수학적 이론’을 두고 아인슈타인도 ‘최고로 잘 쓴 책’이라고 칭찬했지요. 나만큼 일반상대론의 의미와 가능성을 바로 눈치 챈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일반상대론은 우주의 모습을 보는 아주 훌륭한 도구입니다.”

┗ 아프리카의 프린시페에서 빛의 휘어짐을 관측하셔서 일반상대론을 직접 증명하셨습니다. 관측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벌써 11년 전이군요. 사실 그날 아침에 비가 쏟아졌습니다. 일식이 일어났을 때 날이 개어서 천만다행이었지요. 사진을 16장 찍었는데, 분석할 수 있는 사진은 2장뿐이었어요.”

┗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사람밖에 없다는 말씀은 어떻게 된 거죠?

“그건 사실 실버스타인이라는 친구가 잘난 체를 하려고 한 말이었습니다. 프린시페에서 막 돌아와 관측 결과를 논의하는 왕립학회 회의에 참석했어요. 실버스타인이 내게 와서, 내가 상대성이론을 정말로 이해하는 세 사람 중 하나라는 겁니다. 아인슈타인과 자기가 다른 둘이라는 뜻인 거죠. 그래서 대답을 안 하니까, 왜 그렇게 가만히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세 번째 사람이 대체 누구일까 생각중이라고 말해줬죠. (웃음)”

에딩턴 경은 매력적이고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일반상대론에 이론적 기여를 크게 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먼저 그 가능성을 알아보고 연구했으며, 많은 책과 강연을 통해 이 이론을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주 팽창 발견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


미국 윌슨 산 천문대의 커다란 돔에 들어가자 거대한 100인치 후커 망원경이 위용을 드러냈다. 밤마다 이곳에서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허블이 1929년 20세기 천문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을 이룬 곳이다. 그는 그 옆에 파이프를 물고 군용 트렌치 코트를 휘날리며 서 있었다.

┗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박사님. 이 망원경으로 1929년의 그 발견을 하신 건가요?

“은하의 적색편이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당시에 멀리 있는 은하들이 강하게 적색편이를 보인다고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조수인 휴메이슨과 함께 46개의 은하를 체계적으로 조사했는데, 거의 모두가 적색편이를 보이더군요. 게다가 편이의 정도가 지구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일관되게 달라지는 겁니다.  분석 결과 지구에서의 거리와 적색편이로부터 구한 은하의 속도는 거의 비례했습니다.”


 

┗ 그 관계가 무슨 의미인가요?

“은하들이 모두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것은 지구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멀어지는 속도가 지구에서의 거리에 비례한다면…, 이걸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우주라는 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겁니다.”

┗ 우주가 정말 팽창한다면 첫 증거를 발견하신 셈이군요.

“그렇죠. 우리는 당장 더 많은 은하를 조사하기로 결정했고, 1931년에 다시 한번 거리와 속도의 관계를 확인했습니다. 사실 네덜란드의 드지터 교수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풀어서 우주가 팽창하면 우리의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하셨다는군요. 벨기에의 한 신부님도 그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요. 어쨌든 우리는 그것을 확인한 셈입니다.”

┗ 정말 대단한 발견을 하셨습니다. 노벨 물리학상은 확실하군요.

“감사합니다만, 천문학자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갈지는 글쎄요….”

노벨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내내 자신만만하던 허블의 눈빛이 일순간 간절하게 빛났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려서, 당신은 노벨상을 타지 못한다는 말은 도저히 해 줄 수가 없었다.

블랙홀과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


그는 이번 인터뷰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까다로운 인물이며, 또한 가장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한때 현대물리학의 상징이었고, 정치와 과학이 만나 일으키는 파열음 같은 존재였던 오펜하이머. 인터뷰는 그가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소장이었던 1949년, 그의 방에서 이뤄졌다.

┗ 1930년대 UC버클리와 칼텍에서 일반상대론에 대해 어떤 연구를 하셨나요?

“우선 중성자핵으로 이뤄진 중성자별이 무한정 커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봤습니다. 내 학생 중에 모스크바출신인 볼코프가 이 문제를 맡았습니다. 칼텍에 있는 동료 톨먼도 도와줘서, 우리는 중성자별에도 백색왜성처럼 가능한 최대 질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값을 추산해냈습니다.”

┗ 그 질량을 넘어서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중력이 강해서 시공간이 훨씬 심하게 휘어지고 일반상대론의 방정식을 풀기가 더욱 어려워지겠죠. 그래서 복잡한 수학문제를 누구보다 잘 푸는 스나이더를 택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간단한 경우, 즉 회전하지 않고 완전한 구형이며, 복사는 무시하고 밀도는 일정한 별을 생각했습니다.”

┗ 슈바르츠실트의 경우처럼요.

“그래요. 중력이 강해지면 별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 과정을 보기 위해 별이 안쪽으로 폭발(내파)하는 것을 방정식으로 만들고 이를 풀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내파하는 별은 내파가 느려지다가 궁극적으로 임계 크기에서 멈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실제로 내파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때문입니다. 별 입장에서 보면 임계 크기 이하로 내파는 계속되고 별은 계속 수축하지요. 시공간은 강하게 휘어지지만 결코 극단적인 곡률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중력이 무한대가 되는 것도 아니죠. 그러나 별이 임계 크기가 되면 별에서 나오는 빛의 적색편이는 무한대가 됩니다. 즉 별이 임계 크기가 되는 순간 외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임계 크기에서 잘려나가듯이 별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 그 논문이 그리는 것이 바로 블랙홀이군요. 그리고는 연구가 중단되었지요.

“잘 아시다시피…. 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린 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어요.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전쟁 후엔 세상도, 나도, 이전처럼은 결코 될 수 없었죠.”

┗ 다시 일반상대론 연구로 돌아가실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글쎄요. 지금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양자전기역학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나는 이 연구소를 맡게 되었고…, 모든 일에는 맞는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는 다시는 물리학 연구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시련이 이제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그로 인해 그는 상처 받고 모욕을 당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 그에게 상처를 준 사람 중 하나를 만나러 간다.



블랙홀의 아버지 존 휠러

휠러는 1960년대 미국에서 일반상대론 연구의 중심이었던 사람이다. 사실 그는 상대성이론뿐 아니라 파인만이나 휴에버렛과 같은 양자론 전문가들의 지도 교수기도 하다. 그는 또한 블랙홀, 웜홀, S-행렬 등 독특한 물리학 용어를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 교수님이 일반상대론을 연구하신 과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실 이전에 저는 핵분열에 관한 이론을 주로 공부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핵무기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물리학의 세계로 돌아오면서, 1956년쯤 갑자기 찬드라세카르, 란다우, 오펜하이머의 논문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질량이 아주 큰 별은 정말 어떻게 되는 걸까? 이것이 아마도 일반상대론에서 가장 중요하고 도전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학생 해리슨과 함께 핵반응이 끝난 별들의 상태방정식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양자역학과 핵물리학을 연구한 경험이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유리했을 겁니다.”

┗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미국의 수소 폭탄 프로젝트에도 관여하셨습니다.

“네, 저는 핵무기에 대해서 다른 물리학자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원자폭탄을 더 일찍 만들어서 전쟁이 더 일찍 끝났다면 1944년에 죽은 제 동생 조를 포함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들어야겠군요. 일반상대론 이야기로 돌아갈까요?

“그러죠. 다음으로 박사후연구원인 마사미 와카노와 함께 상태방정식으로 중성자별과 백색왜성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사실 수소폭탄 프로젝트의 경험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고도의 계산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아마 오피(오펜하이머의 애칭)가 30년대에 며칠씩 걸리던 일을 우리는 불과 한두 시간 만에 해치웠을 겁니다. 그 결과, 다양한 상태에서 별들의 운명을 알아냈습니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만드신 주인공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만든 건 아닌데(웃음). 원래 저는 별이 안으로 폭발해서 블랙홀이 생긴다는 오피의 결론을 믿지 않았습니다. 특이점을 싫어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특히 이론물리학자들의 본능이지요. 그런데 연구를 거듭하면서 점차 블랙홀을 인정하게 됐죠. 이론적으로 블랙홀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오피가 증명한 일이니까, 이를 받아들이는 건 심리적인 문제였다고 해야겠네요.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1967년에야 지은겁니다. 그때까지는 주로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들 불렀고, 저는 ‘붕괴된 별’, 정확히는 ‘중력에 의해 완전히 붕괴된 것’이라고 불렀죠. 강연을 할 때마다 그 이름을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세요(웃음). 그러다가 한 강연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청중 한 사람이 “블랙홀은 어때요?”라고 하더군요. 솔직히 저는 몇 달 동안 침대에서, 목욕탕에서, 차에서 시간날 때마다 이 이름을 가지고 고민했는데, 갑자기 블랙홀이 정답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참 저도 선생님이 제자들과 쓰신 ‘중력’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12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무거웠을 텐데(웃음).”

휠러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의 학생 하나가 말했듯이 그는 급진적인 보수주의자였고, 실용적인 몽상가였다.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펜하이머 재판에 증인으로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오펜하이머에게 치명적인 증언을 했던 텔러의 편에 선 극소수의 물리학자였다.

살아있는 전설 스티븐 호킹

그를 만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 두 차례는 그의 강연에 청중으로 앉아 있었던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2000년 한국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강연에서는 그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스티븐호킹은 살아있는 전설이다. 박사과정 중에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그의 삶과, 그가 남긴 업적 두 가지가 모두 그렇다. 하물며 그 두 가지가 한 사람에게서 이루어졌음에야.

┗호킹 박사님, 일반상대론 100년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하게 되어 기쁩니다. 우선 일반상대론과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재미있는 기획이군요. 나는 1962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일반상대론과 우주론을 연구해 왔어요. 당시 일반상대론은 1930년대 수준과 비슷한, 좀 낙후된 분야였죠. 처음에는 정상우주론으로 유명한 프레드 호일을 지도교수로 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데니스 시아마 교수 밑으로 들어갔어요.”

시아마 교수는 1960년대 이후 영국에서 상대론 학자 상당수를 길러내신 분 아닙니까?

“그렇죠. 내가 운이 좋았던 겁니다. 1960년대 중반에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가 발견되면서 빅뱅 우주론의 시대가 열렸으니까요. 처음에 내가 한 일은 로저 펜로즈 등과 같이 시공간이 시작할 때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인 일입니다. 그러면 특이점에서는 일반상대론이 깨지게 됩니다. 한 5년 동안 우리는 일반 상대론 내의 인과 구조에 대한 이론을 독점적으로 개발했죠. 아주 멋진 일이었습니다. 입자물리학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당신도 입자물리학을 연구한다면서요?”

네. 말씀대로 우리 분야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이 달려들죠. 저도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웃음). 1970년대에는 블랙홀을 연구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특이점 정리를 블랙홀에 적용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데이비드로빈슨과 블랙홀의 ‘털-없음 정리’를 증명했고 블랙홀 엔트로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사실 1973년쯤에는 이전에 성공한 게 있어서 좀 빈둥 거리고 있었죠(웃음). 그때부터 양자이론을 블랙홀과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사님의 가장 유명한 업적이 거기서 나왔지요?

“네, 첫 번째 실마리는 소련의 젤도비치가 1971년 6월에 내놓았습니다. 회전하는 블랙홀은 복사를 내놓는다는 것이었죠. 저는 1973년에 모스크바에 갔을 때 그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듣고 돌아와서 내 나름대로의 이론을 만들었어요.”



유명한 ‘호킹 복사’를 담고 있는 ‘블랙홀 폭발?’이라는 논문이 그거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블랙홀은 완전히 검지 않고 복사를 내놓으며, 시간이 지나면 증발해 버리는 존재가 되었어요. 실제로 증발해서 사라지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나요?

“직접 계산해 보시죠(웃음).”

음... 태양의 2배 질량을 가지는 블랙홀이라면 1067년쯤 되겠군요. 우주 나이가 지금 1010년쯤이니 정말 기다릴 만한 시간은 못되는군요. 게다가 무거우면 더 천천히 증발하죠?

“블랙홀이 클수록 온도가 낮아지기 때문이죠. 대략 블랙홀 질량의 세제곱에 비례합니다.”

이후의 연구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일반상대론이 완전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분명 양자중력이론이 있고, 그로부터 블랙홀의 엔트로피나 우주 시작의 특이점 같은 문제가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1980년대 이후 끈이론이나 고리중력이론 등이 발전해왔지만 아직 어느 길을 가야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내가 루카스 교수 취임 연설에서 ‘이론물리학의 끝’에 관해 언급할 때 내 마음 속에 있던 건 초중력이론이었습니다만, 초중력은 이제 빛이 바랬습니다. 우주상수와 암흑에너지, 중력파와 인플레이션 등 아직도 우리가 이해하고 설명해야할 문제는 산더미 같습니다.”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한다. 시공간을 돌아다니는 일은 대단히 피곤한 일이다. 더구나 내가 사용한 타임머신은 허버트 트위첼 박사 방식이라 여기저기의 시공간에 내 몸무게만큼의 물질을 남겨놓게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작용이 염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르메트르, 찬드라세카르, 가모프, 젤도비치, 펜로즈, 피블즈, 손 등의 이름 위에 아직 줄을 긋지 않은 인터뷰 리스트를 여기서 접는다.

과학동아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