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6일 수요일

일본의 수능 풍경엔 '부모'가 없어요



우여곡절 끝에 올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지난주 치렀습니다.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한국의 입시는 외신 단골이지요. 올해는 지진으로 연기돼 더 화제가 됐습니다. 한국만큼은 아니라지만 명문대 간판 통하고, 재수(再修) 문화 공유하는 일본에선 어떻게 바라볼까요?

김미리(이하 김): 올 수능 최고 화제는 '수능 큰절' 같아요. 한 고3 수험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차로 데려다 주고 떠난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오시라 전화했어요. 아버지가 놀란 마음에 황급히 차를 돌려 갔더니 아들이 그 사이 감사한 마음 담아 아버지께 큰절을 올린 거예요. 깜짝 이벤트였죠. 보는 저도 흐뭇하던데 부모는 얼마나 대견했을까요.

오누키(이하 오): 일본에선 상상 못 할 일!

: 왜요? 남의 시선 때문에?

: 수능에 해당하는 시험으로 일본엔 '센터시험'이 있어요. 전국에서 동시에 치르는 대입 시험이죠. 그런데 그날 부모님하고 같이 가는 고등학생은 눈 씻고 봐도 없어요. 고등학생은 아이가 아니잖아요. 부모님이 데려다 주면 '마마보이'라 할 거예요. 안 그래도 같이 사는 친정 엄마랑 TV로 수능 풍경 보면서 "일본하고 참 다르다"고 얘기했어요.

: 뭐가 그리 다르던가요.

: 듣기 평가 때 비행기 멈추고, 경찰이 지각 학생 태워주는 풍경은 익히 알려진 거라 그러려니 했어요. 와서 보니 제 눈엔 부모·자식 관계가 더 보였어요. 신문 사진 설명을 읽어 보면 하나같이 "수험생들이 '부모와 함께' 시험장을 빠져나오고 있다"고 돼 있어요. 부모 자식 얼싸안고 고생했다 하는 모습도 신기했고요. 스킨십 어색한 일본에선 아이 때 빼곤 부모 자식이 끌어안는 일이 없다 보니(웃음).

: 그날 수험생 부모들은 자녀 못지않게 온종일 긴장 상태예요. '일하고 있어도 맘은 아이와 같이한다'면서 점심 굶는 선배도 봤어요. 고3들한텐 '苦3' 해방 날이기도 하지만, 부모들한텐 뒷바라지 해방 날이기도 해요. 애가 고3이면 부모도 고3인 게 한국 현실이니까요.

: 일본에선 부모가 주도해서 아이 교육을 결정하는 건 중학교 때까지예요. 사립중, 일부 명문 공립중 들어가려면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부모가 정보를 갖고 개입하죠. 그렇지만 학업 길라잡이로서 역할은 중학교로 땡. 고교생 자녀는 알아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그러고 보니 한국선 대입 설명회는 으레 학부모가 동석하는 걸로 생각하네요. '엄마는 자녀의 매니저'라면서 학부모가 자녀의 학업 코치가 돼야 한다고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마케팅도 답답하고요. 그나마 '인구 절벽'이 '신입생 절벽'으로 이어져 입시 지옥이 해소되지는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봐요. 올 수능 응시자 수는 59만4000명 정도. 2000년 89만 6000명에 비하면 43.7% 줄어들었어요.

: 일본은 지원자 수가 대학 전체 정원에 못 미친다고 해요.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15년 대학 수용력(대학 지원자 대비 입학자 비율)이 93.7%였어요. 수치상으론 지원하면 거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해서 '전입(全入) 시대'라 부르지요.

: 경쟁률이 낮아졌나요?

: 미안한 얘기지만, 반대예요. 대학 양극화가 뚜렷해졌어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학교는 가나 마나 한 학교가 돼버렸어요. 명문대 경쟁률이 더 높아졌지요. 요즘 일본은 경기가 회복돼 취업률이 좋은데 그러면서 명문대 쏠림이 더 심해졌어요. 경기 안 좋을 땐 명문대 나와도 어차피 취직 안 되니 굳이 명문대 고집할 필요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는데, 경기 좋으면 명문대 출신들한테 더 많은 기회가 몰리니까요.

: 그 논리라면 대학 가려는 학생이 줄어도 양극화가 심해져 중소 대학은 문 닫고 'SKY(서울대, 연·고대)' 경쟁률은 더 심해질 거란 얘기네요.

: 한국은 명문대 범위가 좁고 서울에 집중돼 문제가 더 클 수 있어요. 일본은 명문대가 지방에도 흩어져 있고, 명문대 범위도 넓어요. 학벌 따지는 분위기도 여기 정도는 아니에요. 한국에선 강의하거나 업무상 만날 때 사전에 프로필부터 보내달라고들 해요. 뭔 말인가 했더니 어느 대학 출신인지를 묻는 거더군요. 사회부터 바뀌어야 입시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요?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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