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일 토요일

"로스쿨 합격 비결? 오늘에 충실하며 다양한 경험 쌓은 덕분"


하버드·예일 로스쿨 동시 합격한 윤소현씨 인터뷰
폭넓은 활동, 진로 선택에 도움 美 대학 원한다면 고전 독서 필수
세계적 명문대인 하버드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예일 로스쿨에 동시 합격했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는 석사과정 합격도 모자라 전액 장학금까지 제시했다. 타고난 영재인 걸까. 주인공 윤소현(23)씨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선천적으로 지능이 우수하다고 생각하거나 평가받은 적은 없으며, 거대한 목표와 계획을 좇기보다 매일 일상에 충실하다 보니 길이 조금씩 열렸다고 밝혔다. 이달 하버드대를 졸업한 윤씨는 오는 10월 옥스퍼드에서 석사과정을 시작, 2년 뒤 예일 로스쿨에 진학할 예정이다.




예일 로스쿨 입학을 앞둔 윤소현씨가 “일상에 충실하며 시간을 쪼개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이어간 덕분”이라고 합격 비결을 밝히며 하버드 캠퍼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진로 선택 도와… 세상에 관심 가져야
지난 4년간 윤씨는 그 누구보다 바빴다. 공부하느라 시간이 빠듯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하버드 학부 기간에 '이상하고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는, 전공과 관련 없는 활동이 많아서다. 사회적 기업 대상 콘퍼런스를 만들어 운영하고,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시에는 인턴기자로 활동했으며 건축사무소 등에서도 인턴으로 일했다.

"흔히 하버드생들은 공부하느라 매일 날을 새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가 많아요. 대신 운동이나 비교과 활동에 시간을 많이 씁니다. 다양한 경험이 학과 공부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아침 7시에 하루 일과를 시작했는데, 오전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고 정리한 다음에는 거의 비교과 활동을 했습니다."

비교과 중 가장 오랜 기간 애정을 쏟은 활동은 보스턴 내 공립고등학교에서 국제관계를 주제로 수업한 것이다. 학부 기간 내내 일주일에 한두 차례 수업을 진행한 그는 "우리나라에 대해 무지한 미국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며 "현재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공 외 다양한 분야의 수업도 많이 들었다. 1학년 때는 생물 등 이공계 과목을 많이 접했다. 그는 "여러 가지 분야를 접하고 경험하면서 내게 맞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았다"며 "이러한 작은 방황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강조했다.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는 세미나식으로 진행되는 미국 대학 수업 방식도 한몫했다.

"수업 대부분이 과제나 시험, 교재 없이 다양한 사회 쟁점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형식이었어요. 세상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수록 학점을 잘 받기 유리했죠. 대학에서도 사회로 눈을 돌린 인재를 원하는 거예요. 대부분의 하버드생이 중·고등학교 때 다양한 고전을 깊이 있게 접한 경우가 많아서, 이를 전제하고 수업을 진행해요. 제가 만약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더라면 대학에 와서 부랴부랴 책을 읽느라 다른 활동은 전혀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낯선 환경에서도 주변 의식하지 않고 적응력 높여
그가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뽑은 건 '빠른 적응력'이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심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일곱 살 때 캐나다 토론토에 가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 채 캐나다에 갔지만 되도록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상을 즐겼다. 7년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놀았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치열한 내신 경쟁 앞에서 적잖이 놀랐다. 그렇지만 주어진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차근차근 공부하는 습관을 들였다.

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 유학반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각종 전국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으려 애썼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위축되기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응해 보고자 노력했다. 여러 대외활동을 기웃거리기보다 평소 관심 가진 인권이나 환경 관련 활동에 집중했다. "하버드에 입학하고 나서 입학사정관으로부터 제 합격 파일을 건네받아 본 적이 있어요. 그 자료에는 '해당 학생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 활동을 급조하기보다는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한 흔적이 보임'이라고 쓰여 있었죠. 사실 저는 제 시험성적이 너무 뛰어나서 뽑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로스쿨 합격도 마찬가지죠. 그간 열정을 가지고 매일 열심히 살았을뿐더러, 이를 에세이에 잘 반영한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버드에 입학해서 그의 적응력은 빛을 발휘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적잖이 당황한 일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입장과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한 번은 시험 직전에 친구가 '나 진짜 공부 많이 했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같으면 공부를 많이 해도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알리기를 꺼리잖아요.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으면 저렇게 말하나 싶어서 기가 죽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친구들은 모든 것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저도 수업 때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려 애썼어요."

윤씨는 석사과정을 위해 영국에 가기 전까지 소수인종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할 계획이다. 2년간 다양한 경험을 하고 나서는 예일대 로스쿨에서 국제 인권변호사가 되기 위해 수학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제 인생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진로 계획은 좀 더 뒤로 미루고 영국에서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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