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7일 일요일

개미가 페르마의 원리를 안다고?




개미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치게 생겼다. 얼마 전, 개미가 먹이를 찾아 움직일 때 페르마의 원리를 따른다는 연구가 나왔다.
페르마의 원리란 빛이 두 지점 사이를 움직일 때 최단 시간으로 갈 수 있는 경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개미가 어떻게 이런 어려운 계산을 할 수 있을까. 개미의 수학 능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구 세 편을 소개한다.



#1 먹이? 거기서 네 발짝만 가~

수를 세거나 간단한 셈을 할 수 있느냐는 동물의 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주목해 온 능력이다. 지금까지 수를 셀 수 있는 능력이 밝혀진 동물도 꽤 많다. 침팬지, 고릴라, 붉은털원숭이와 같은 영장류와 몇몇 조류, 돌고래 등이 그렇다.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 연구팀이 지난 2011년 학술지 ‘행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개미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붉은숲개미와 직접 고안한 미로를 이용해 개미가 수를 셀 수 있는지 연구했다.

이들이 만든 미로는 직선 또는 원 모양의 줄기에 30~60개의 가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달린 모양이다. 각각의 가지 끝에는 먹이통이 있으며, 단 한 곳에만 시럽이 들어 있고 나머지는 물로 채워져 있다. 먼저 정찰대원 역할을 하는 개미에게 시럽이 어느 가지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집으로 돌아온 개미는 더듬이로 다른 개미에게 시럽이 들어 있는 먹이통 정보를 전달한다.

그동안 연구팀은 정찰개미가 남긴 페로몬을 없애기 위해 미로를 새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먹이통도 전부 물로 채워 개미들이 시럽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정찰개미가 동료와 의사소통하는 시간을 측정한다. 의사소통 시간은 더듬이 접촉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개미 두 마리가 먹이를 찾아 둥지를 떠나는 순간까지로 정했다. 152번을 실험한 결과 개미들이 시럽이 있던 먹이통으로 직행한 경우가 117번이었다. 반대로 정찰개미가 동료에게 정보를 알려주지 못하게 한 실험에서는 거의 대부분 실패했다.








연구팀은 정찰개미가 동료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데 걸리는 시간과 시럽이 있는 가지의 번호 사이에서 비례 관계를 발견했다. 시럽이 있는 가지의 번호가 낮을수록(가까울수록) 정보 전달 시간이 짧았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미가 수를 세거나 적어도 정량적인 측정을 할 수 있으며, 이를 다른 개미에게 알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덧셈이나 뺄셈도 가능할까. 이어지는 실험에서 연구팀은 특정 가지에 시럽을 더 자주 배치했다. 이게 반복되자 개미들은 시럽이 자주 나오는 가지를 ‘특별한 가지’로 인식했다. 그 뒤 다시 무작위로 고른 다른 가지에 시럽을 넣고 실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정찰개미가 정보를 전달하는 시간이 ‘특별한 가지’에서 시럽이 있는 가지까지의 거리에 비례했다. 예를 들어, 앞선 실험에서 11번가지에 시럽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70~82초가 걸렸다면, 10번 가지를 ‘특별한 가지’를 인식한 뒤에는 11번 가지에 시럽이 있음을 전달하는 데 10초 내외밖에 걸리지 않았다. 즉, 정찰개미는 동료에게 “시럽이 ㅇ번 가지에서 ㅇ번 떨어져 있더라”는 식으로 정보를 전달한 것이다. 개미가 덧셈이나 뺄셈을 했을 수 있다는 소리다





하노이의 탑

유명한 퍼즐인 하노이의 탑을 2차원 미로로 변환한 모습. 원판을 움직이는 경우의 수를 갈림길로 표현해 삼각형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 뒤 반전시킨 삼각형을 붙여 미로를 만들었다. 퍼즐을 해결하는 순서를 따라 움직이면 미로를 최단거리로 지나가는 경로가 된다.
연구팀은 최단거리를 찾는 개미 무리의 능력을 이용해 하노이의 퍼즐을 풀었다.




                    


#2 퍼즐도 뭉치면 쉽다

앞서 소개한 개미의 수 세기와 간단한 셈 능력은 기본적인 수학 능력이다. 물론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초보적인 수준이며, 엄밀히 말해 수 세기보다는 거리나 양을 측정하는 능력에 가까울 수 있다. 하지만 개미 한 마리가 아니라 개미 집단이 되면 그 수준은 크게 올라간다. 집단지성을 이용해 복잡한 퍼즐도 해결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호주 시드니대 연구팀은 하노이의 탑을 이용해 최단 경로를 찾는 개미의 능력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실험생물학회지’에 발표했다. 하노이의 탑은 막대기 세 개와 크기가 서로 다른 원판을 이용하는 퍼즐이다. 처음 시작할 때 원판은 가장 큰 게 아래에 오도록 막대기 하나에 모두 꽂혀 있다. 퍼즐을 풀려면 원판을 처음 순서 그대로 다른 막대기에 옮겨야 한다. 이때 원판은 한 번에 하나만 옮길 수 있고, 크기가 작은 원판 위에 큰 원판을 쌓을 수 없다.

연구팀은 원판 3개로 이뤄진 하노이의 탑을 평면 위의 미로에서 최단 거리를 찾는 문제로 바꿨다. 하노이의 탑을 푸는 과정에서 생기는 경우의 수를 모두 보드게임 말판처럼 평면 위에 늘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이를 대칭으로 만들어 입구에서 출구(먹이가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최단 거리가 하노이의 퍼즐을 해결하는 과정을 나타내게 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3만 개가 넘었다.

연구팀이 미로 입구에 500마리의 굶주린 개미를 넣자 개미들은 먹이를 향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처음에는 갈림길을 따라 무작위로 움직였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개미들이 이루는 경로는 최단 거리, 즉 하노이의 탑 퍼즐을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을 나타냈다. 그러나 개미는 주변 환경을 360°로 탐험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경로로 모였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개미들이 최단 경로를 찾은 건 우연일 수 있었다.

그래서 연구팀은 가장자리에 있는 연결통로를 막고 개미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개미들은 수직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걸어가 다른 연결통로를 찾았다. 연결통로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경로였다. 일단 새로운 연결통로를 찾은 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개미들은 비효율적으로 돌아와야 했던 경로 대신 미로를 통과하는 또 다른 최단 경로만을 이용했다.

이 연구는 목적지가 바뀌거나 원래 경로가 막히는 등 역동적인 상황이 생겼을 때도 개미가 여전히 가장 짧은 경로를 찾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페로몬에 의해 이뤄진다. 처음에는 개미가 무작위로 움직이면서 먹이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움직인 경로에 페로몬을 남기는데, 페로몬이 짙을수록 다른 개미가 이끌려온다.

가장 짧은 경로는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개미가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페로몬이 쌓이고 더 많은 개미를 끌어들인다. 그렇지 않은 곳은 페로몬이 점점 옅어져 경쟁력을 잃고 사라진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별것 아니지만, 개미 무리의 집단지성은 시행착오를 통해 바뀐 환경에 적응해 최적의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페르마의 원리

빛은 물속에서 속도가 느려진다. 따라서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최단 시간에 가기 위해서는 공기 중에서 많이 움직이고 물속에서 조금 움직여야 한다.

두 구간의 비율이 최적화될 때 최단 시간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빛이 수면에서 굴절하는 원리다. 처음에 개미들은 먹이를 향해 무작위로 움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최단 시간이 걸리는 경로로 움직이게 된다.

아래는 논문에 실린 실험 사진.









개미도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빠른 속도로 걸을 수 없는 울퉁불퉁한 지표면에서는 움직임을 줄이고 매끄러운 지표면에서 더 많이 움직인다.


#3 편한 길은 많이, 힘든 길은 적게

마지막으로 좀 더 고난도의 수학 능력을 보여주는 개미를 만나보자. 페르마의 원리는 빛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하는 원리로 잘 알려져 있다. 빛이 비스듬한 각도로 물속에 들어가면 수면에서 진행방향이 꺾인다. 이것은 빛이 공기 중에서보다 물속에서 속도가 더 느리기 때문이다. 빛이 가장 시간이 짧게 걸리는 경로로 가기 위해서는 물속에서 움직이는 시간을 줄이고 공기 중에서 움직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이 때문에 진행방향이 꺾이는 것이다.

사람도 종종 이 원리를 따라 움직인다. 어딘가 가고 있을 때 현재 위치와 목표 지점 사이에 사람이 붐비는 구역이 있고 한산한 구역이 있다면 한산한 곳에서 움직이는 시간을 늘려 전체 시간을 단축하려 한다. 바닷가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는 구조대원도 육지에서 뛰어가는 시간과 물속에서 헤엄치는 시간을 조절해 최적화를 한다.
그런데 지난 3월 독일 게렌그부르크대, 중국과학원 공동연구팀은 개미 역시 서로 재질이 다른 두 가지 표면의 경계에서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경로의 진행 방향을 바꾼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했다. 먹이까지 가는 도중 바닥 재질이 바뀌어 걷는 속도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경로를 최적화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상자에 마디개미와 먹이를 놓고 실험했다. 상자의 한쪽 구석에는 개미가 들어오는 입구가 있었고, 대각선으로 맞은편 구석에는 먹이를 놓았다. 단순히 거리로만 따진다면 대각선이 최단 경로였다. 그러나 바닥은 반으로 나눠 서로 다른 재질로 만들었다.

거친 폴레에스테르 천과 부드러운 폴리에스테르 천, 폴리에틸렌 유리위에서 개미가 걷는 속도는 거친 천에서 1.73mm/s, 부드러운 천에서 2.97mm/s, 유리 위에서 4.89mm/s였다. 무작정 대각선으로 가다가는 천천히 걸어야 하는 바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연구팀은 3가지 바닥 종류를 조합한 6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먹이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 가며 다양하게 실험했다.

연구팀이 상자에 개미 무리를 넣자 먹이를 향해 가는 경로가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예측한 경로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직선 경로를 따른 게 아니라 속도가 느린 바닥에서는 조금, 속도가 빠른 바닥에서는 많이 걸었다는 결과였다. 이 역시 원리는 같다. 최적화된 경로에는 다른 곳보다 페로몬이 많이 남게 되므로 결국 나중에는 무리 전체가 이 경로를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개미의 집단지성은 컴퓨터보다 똑똑하다

개미 한 마리 한 마리가 사람을 능가하는 수학자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는 사람처럼 머리를 써서 퍼즐을 풀거나 페르마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단순하게 움직일 뿐인 개미가 군집을 이루면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낸다. 동물의 집단지성을 다룬 ‘스마트 스웜’의 저자 피터 밀러는 “때로는 무리가 영리한 개인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개미 집단지성 능력은 특히 최적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연구는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지금까지 외판원의 이동 경로, 교통, 통신네트워크, 일정관리, 단백질 구조 파악 등을 최적화할 수 있는 알고리듬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은 앞으로 점점 개미를 닮아갈지도 모른다.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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