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페르마, 취미로 수학연구를 하다
수학자가
아니면서 업적을 남긴 대표적인 사람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 유명한 피에르 드 페르마이다.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t,1601~1665), 1670년 출간된 피에르 드 페르마의 주석이 달린
디오판토스의 '산술' (Arithmetica) - wikimedia
‘정수론의
창시자가 피타고라스라면 정수론을 학문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은 페르마’라는 말이 있을 만큼, 페르마는 현대 정수론의 선구자로 불린다. 미분이라는
개념을 거의 처음 쓴 사람도 페르마다.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확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걸 확률론의 효시로
보고 있다.
이렇게
대단한 페르마는 평생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을까?
현대
정수론의 선구자로 불리는 페르마의 직업은 변호사. 취미는 수학연구였다 - GIB 제공
놀랍게도
정답은 ‘1!’ 단 한 편이다. 수학은 변호사이자 지방 의원이었던 페르마의 취미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페르마는 틈틈이 생각나는 것을 노트나 책
귀퉁이에 낙서처럼 쓰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발견을 알렸다. 그런 짤막한 내용이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변호사이자
지방의원이었던 페르마의 취미생활이 수학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 GIB 제공
박부성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는 “17세기 최고의 수학자를 하나만 말하라면 페르마를 꼽겠다”며, “페르마의 수학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고 전했다.
다만 “논문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주로 편지에서만 장난치듯이 수학 내용을 남기는 등 아마추어같이 행동했다”고 덧붙였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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