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일 금요일

음수의 역사

고대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음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기원전 2~3세기경의 중국의 수학자 유휘의 「구장산술주(九章算術註)」에서는 양수는 빨간색, 음수는 검정색 수막대로 표시를 하였다. 또한 음수와 양수를 이용하여 연립일차방정식의 풀이법을 설명한 것으로 볼 때, 중국인들은 일찍부터 음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인도에서는 빚을 나타내기 위해 음수를 사용하였다. 즉, 인도인들은 양수와 음수의 관계를 재산과 빚 또는 전진과 후퇴라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로 나타냈다. 이렇게 음수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용하면서부터 양수의 범위에서는 자유롭게 계산할 수 없었던 뺄셈이 항상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6세기 인도의 수학자인 브라마굽타는 음수의 사칙 계산에 관한 책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 방정식의 해로써 음수를 인정하게 된 것은 16세기경이다. 그 이전의 수학자들은 인도나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책들을 통해서 음수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음수는 실용성이 없는 무의미한 수 또는 모순된 수라고 생각하였다.

'대수학(代數學)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의 해가 음수가 될 경우에는 답이 없는 것으로 취급하였다. 디오판토스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의 수학자 알콰리즈미의 방정식에는 모두 양의 근만을 다루었으므로 음의 근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2세기 인도의 수학자 바스카라는 1150년에 이차방정식에 두 근이 있고, 음의 근이 존재한다는 것을 최초로 인식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서 이탈리아의 수학자 카르다노(Cardano, 1501~1576)는 음의 근의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했으나 결국 불가능한 해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7세기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는 좌표를 고안하여 음수를 직선 위의 눈금으로 나타내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음수의 존재를 인정하였으나 음수가 0보다 작기 때문에 잘못된 수로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17세기에 들어와서도 일부 수학자들은 여전히 음수를 부정했다. 음수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이 생겼지만, 그 개념이 명확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필요했다. 18세기 최고의 수학 책들에서도 여전히 음수 앞에 붙는 부호와 뺄셈 기호를 혼동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는 그의 저서 「대수학 입문」에서 “빚을 갚는 것은 선물을 주는 것과 같다.”라는 비유를 통해 ‘-b만큼 빼는 것’과 ‘+b만큼 더하는 것’의 뜻을 비교했다. 결국 서양수학사에서 음수(陰數, negative number)의 개념이 인정된 것은 180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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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에 관한 재미있는 논쟁
파스칼의 친구 아르노는 프랑스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1:1=1:-1에 대해 -1이 1보다 작다고 가정하고, ‘작은 것과 큰 것의 비가 어떻게 큰 것과 작은 것의 비와 같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였다.
아르노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거의 1세기가 지난 후에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달랑베르(1717~1783)에 의해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답이 음수로 나오는 문제는 틀린 가정을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음수를 경계하고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던 당시에 있을 수 있는 흥미로운 논쟁이다.
주요용어정리

양수(陽數, positive number)
0보다 큰 수를 말한다. 양수를 나타내는 +를 양의 부호라 하는데 이것은 때에 따라서 생략하여 쓸 수도 있다.
음수(陰數, negative number)
0보다 작은 수를 말한다. 음수를 나타내는 -를 음의 부호라 하는데 이것을 사용하여 음수는 -1, -2, -3과 같이 나타낸다. 음수를 도입함으로써, 양수의 범위에서는 자유로이 계산할 수 없는 뺄셈, 예를 들어 2-3과 같은 계산이 항상 가능하게 되었다.
눈높이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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