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평화를 사랑한 수학자 핵무기 반대에 앞장선 버트런드 러셀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의 기운이 감돌 때 수학자들이 나서 문제 제기를 하곤 했다. 으레 수학자라고 하면 정치, 사회, 경제에는 관심이 없고 연구실에 콕 틀어박혀 연구만 할 것 같지만 이런 편견을 깨고 용감하게 평화를 외친 수학자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수학천재 버드러트 러셀이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부터 줄곧 전쟁을 반대했다. 이 일로 교수로 재직 중이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해공당하고 징역형에 처해졌지만, 이후에도 꿋꿋이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던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자 러셀은 핵무기의 위력에 놀라면서도 곧 이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수소 폭탄이 발명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히 이 무기가 인류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에 그는 본격적으로 핵무기 반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핵무기 반대 연설을 하는 버드런트 러셀. - 위키미디어 제공1961년 2월 18일 영국 런던에서 러셀과 그의 아내인 에디스 러셀이 핵무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영국의 수학자 버드러트 러셀이 핵무기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고, 핵무기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위키미디어 제공.

그러나 1951년, 러셀이 그토록 원치 않던 수소 폭탄이 개발되고 만다. 그러자 러셀은 절친한 친구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전세계 정치가들을 상대로 핵무기 반대 성명을 내기로 한다. 러셀은 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해 병상에 있는 아인슈타인에게 보냈고, 아인슈타인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으며 선언문을 완성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 러셀을 도왔다.
이후 독일의 막스 보른, 프랑스의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 일본의 히데키 유카, 영국의 조지프 로트블랫 등 당시 저명한 과학자 9명이 서명에 동참하면서 핵무기 반대 운동에 힘을 보탰다. 이렇게 완성된 선언문이 1955년 발표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이다. 그는 먼저 떠난 아이슈타인의 몫까지 대신해 1955년 7월 9일 영국 런던 캑스턴홀에서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많은 지식인들에게 호소했다.
이를 계기로 ‘퍼그워시 회의’가 창설됐고, 현재까지도 전세계 65개국 수 천 명의 회원들이 매년 한 차례 만나 핵무기와 세계평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퍼그워시 회의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것을 공로로 199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학자 중에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수학 세미나를 열고, 식민지 정책에 반대했다가 폭탄테러를 당해도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등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 많다. 
수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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