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그들은 어떻게 과학을 지배하고 있나 세계 최고 학술지 NSC(네이처, 사이언스, 셀)

사이언스, 네이처, 셀, 그리고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현재 세계 최고로 불리는 과학학술지(저널)다. 이들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순간, 과학자는 스타가 된다. 하지만 몇 개 학술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현상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이들이 어떻게 현재의 지위를 갖게 됐는지, 이들을 둘러싸고 어떤 논쟁이 있는지 알아봤다.

과학자는 ‘논문’을 쓴다. 실험과 현장 답사 등을 마친 후에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결과물이 바로 논문이다. 수년에 걸쳐 정성껏 작성한 논문으로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알린다. 요컨대, 논문은 연구자들의 ‘목소리’다.
학술지는 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소통의 장(場)’이다. 연구자들은 학술지라는 공간에서 논문을 게재하고 동료들의 반응을 주고받으며 과학계를 이끌어간다. 당연히 대부분의 연구자는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원한다. 학술지의 정상이 바로 사이언스·네이처·셀·PNAS다. 한때 이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실으면 “국내 대학교수는 따논 당상”이라는 말이 있었다(지금은 아니다). 그만큼 극소수의 과학자만이 이들 학술지에 이름을 올린다.
이들이 세계 최고의 학술지로 성장한 배경은 뭘까. 대중성과 전문성, 학문별 특이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차별화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잡지’?
사이언스는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네이처는 영국의 네이처출판그룹에서 발행하는 주간 ‘과학잡지’다. 두 학술지는 ‘잡지’라는 성격을 내세우기 때문에 최대한 대중성을 표방한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쉬운 주제, 쉬운 단어로 풀어쓴 논문이 주로 실린다(물론 그래도 어렵지만 다른 학술지보다는 한결 낫다). 2013년 9월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이지웅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연구 내용은 우리 생활 속 의류와 관련된 것으로 공장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사이언스에 실린 요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고효율 2차전지, 나노다공성 산화물 저가합성법, 3D 뇌지도 같은 ‘최신 유행’ 논문도 최근 사이언스의 지면을 많이 장식하고 있다.
사이언스·네이처와 달리 셀과 PNAS는 전문학술지다. 셀프레스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셀은 격주간으로 나온다. 주로 생명과학에 대한 긴 논문을 게재한다. 미국국립과학원(NAS)에서 발행하는 PNAS는 주간 학술지로 과학 전 분야와 인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까지 다양한 학문의 특이성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에서는 처음 셀의 편집위원이 된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네이처나 사이언스는 짧은 논문인 ‘레터(letter)’ 형식을, 셀은 긴 논문(full article) 형식을 많이 싣는다”며 “셀은 단순한 발견에서 나아가 다각화된 증명을 담은 논문을 많이 싣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셀에 게재되는 논문은 1년에 375편이다. 격주간과 주간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1년에 1000편 내외를 게재하는 사이언스나 네이처보다 적다.
PNAS는 셀과 정반대의 전략을 취했다. 게재 논문 편수를 늘린 것. PNAS에는 1년에 3700편의 논문이 게재된다. 최근 PNAS에 논문을 실은 정해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산호와 공생하는 단세포 생물인 주산셀러가 식물성과 동물성을 동시에 띠고 있다는 연구 논문에 대해 네이처는 대중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지만 PNAS는 해양학이라는 특수성을 인정해 게재를 승인했다”라고 밝혔다.





너무 막강한 영향력…“더이상 논문 싣지 않겠다”
이들 학술지는 막대한 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사이언스는 100만 명, 네이처는 400만 명이 구독하고 있다. 매년 1000만 건의 셀의 논문이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되고, 일주일에 590만 명이 PNAS의 홈페이지를 방문한다. 네이처의 베로니크 키어머 편집주필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과학자들은 자신의 최고 성과를 네이처에 싣기를 희망하고, 네이처는 전 세계 과학 보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네이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편집위원인 원병묵 성균관대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는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네이처에 실린 내용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결은 다르지만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시조새 논란’도 네이처에 실린 기사를 통해 대중적으로 논란이 됐다.




이런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소수 학술지의 독점체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10여 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 UC버클리 랜디 셰크먼 교수는 “유명 학술지의 권력화로 폭정(tyranny)이 이뤄지고 있다”며 “앞으로 NSC(네이처·사이언스·셀의 앞글자를 따서 가리키는 말)에 논문을 싣지 않겠다”라고 영국의 주요일간지인 ‘가디언’을 통해 최근 선언했다.
과학자들은 소수의 학술지가 획일적으로 논문을 심사하다보니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학술지는 논문의 논리성이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해 심사를 2~3번 반복한 뒤 논문 게재를 결정하는데, 각 학술지는 다양한 심사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이언스는 각 분야의 전문 편집자들이 1차 심사를 본 뒤, 동료 평가인 ‘피어리뷰(peer review)’를 한다. 보통 공개되지 않은 2명의 해당 분야 연구자가 진행하는데, 연구자가 추천한 사람 중 1명과 사이언스가 선정한 권위자 1명으로 이뤄진다. 네이처나 셀은 1차로 포닥(박사 후 연구원)급의 심사 이후, 2차 피어리뷰가 이뤄지고, PNAS는 학술원 회원이 심사한다.
이렇게 1차 심사부터 최대 10명의 전문가들이 논문을 여러 번 평가하지만, 여전히 공정성과 객관성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셰크먼 교수는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과학적으로 중요한 논문보다는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인 논문을 게재한다”면서 학술지 심사과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사이언스는 2005년 황우석 교수가 조작한 논문을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황우석 신화’는 바로 사이언스에 논문이 나가면서 시작됐다. 사이언스의 권위에 누구도 제대로 된 비판을 하지 못한 것이다.



자매지들의 싹쓸이 전술
‘자매지’를 통한 학술지 시장 잠식 우려도 있다. 유명 학술지들은 새로운 자매지를 만들어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네이처와 셀이 두드러지는데, 네이처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네이처 지네틱스’ 등 100여 개의 자매지를, 셀은 ‘몰레큘러 셀’, ‘뉴론’ 등 30여 개의 자매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네이처 자매지 중 ‘네이처 기후변화’,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등 세부분야 1위인 것만 15개다. 네이처 이름값을 통해 과학계를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상으로 과학자들이 논문을 게재할 공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최근 논문을 게재한 한중탁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네이처의 다양한 자매지 창간으로 과학자들의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최근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자매지 논문 게재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각 나라마다, 각 학문마다 성과를 평가하는 전통은 다양하고 과학계 내부에서도 문화의 역할이 중요한데 네이처와 사이언스 광풍이 문화적 다양성을 죽이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 열람 방식도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이언스, 네이처를 비롯한 학술지의 논문을 보기 위해서는 논문 한 편당 30달러가 넘는 돈을 내야 한다. 이런 ‘과학지식의 상업화’에 반대해 최근 누구든 무료로 논문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오픈액세스 방식이 등장하기도 했다. 해럴드 바머스 미국 국립보건원(NIH) 전 원장이 2000년 ‘플로스’라는 과학단체를 만들어 2003년 오픈액세스 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플로스 원’ 등을 창간했고, PNAS도 과학자가 게재료를 지불하면 즉시 논문을 공개하는 하이브리드 오픈액세스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오픈액세스가 완전한 대안은 아니다. 미국 과학언론인 존 보하넌은 “지난 10월 짜깁기로 만든 엉터리 논문을 304개의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게재 신청해 본 결과 157개에서 승인이 났다”고 밝혔다. 학술지 일부는 게재료를 내라고 ‘장사’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한글로 된 수준 높은 학술지 만들자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국내 학술지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학술지를 만들려면 오픈액세스로 만들어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느니, 세계적 출판사에 발행대행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덕환 교수는 “피어리뷰나 편집 등 학술지 제작과 유통망도 갖추지 않은 채 세계적 학술지를 꿈꾸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과학계가 해외 학술지 게재를 중시하는 바람에 과학자들이 영어 논문만 쓰게 되면서 우리말로 학문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말로 제작된 대표학술지를 만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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