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1일 일요일

달라진 해외 유학 트렌드 간판보다 '실리'… 진로·학비 고려해 다양한 나라로 간다


'유학이 능사'라는 인식 변화 … 꼭 필요한 학생만 가는 추세
공대 유학생 '현지 취업' 목표 … 20·30대 전문직 유학도 늘어

최근 몇 년간 해외 유학생 수가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해 외교부가 발표한 '2017 재외동포 현황' 가운데 재외국민의 체류 자격을 분류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해외에 유학하는 한국인은 26만284명으로 2014년(27만6834명)보다 1만6550명이 줄었다. 6년 전인 2010년(32만9579명)보다는 6만9295명 감소했다. 교육계에선 경기 악화와 해외 유학 거품 붕괴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과거 많은 부모가 학교 간판만 보고 자녀를 유학 보냈지만, 졸업 후 취업 등에서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유학이 능사는 아니다'는 인식이 커졌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사는 "한때 유학 희망 학생이 학년당 100명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학년당 4~5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꼭 필요한 학생만 유학을 간다'는 것이다. 최근 달라진 해외 유학 트렌드를 전문가들과 함께 짚어봤다.

유학서도 '실리' 추구… 유학 국가 다변화 추세

최근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은 학생들이 자신의 상황과 경제적 부분을 고려해 유학에서도 '실리(實利)'를 좇는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덮어놓고 미국 아이비리그를 지원하기보다는 중국, 일본, 홍콩 등 미국 외 다른 지역에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었다. 학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데다 그 나라의 언어까지 같이 겸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위준호 대원외고 국제부장은 "요즘은 처음부터 유학을 꿈꾸며 외고에 지원하는 학생보다는 외고에 들어와 중국, 일본 등 반에서 언어를 배우다가 자연스럽게 해당 국가 대학에 지원하는 사례가 많다"며 "이런 대학의 경우 아이비리그보다는 경쟁이 덜하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분야 및 유망한 분야의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 유학 국가가 다양해지는 현상도 뚜렷하다. 최지영 용인한국외대부설고 국제부장은 "지난 입시에서 영국 옥스퍼드대에만 7명이 합격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말)로 환율 면에서 영국 유학이 유리해지면서 올해도 아이들이 영국 대학에 많이 지원했다. 금융업 등 현지 취업이 잘되는 홍콩으로 가는 경우도 매년 늘고 있다"고 했다.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뉴욕대 아부다비 캠퍼스도 최근 주목받는 대학의 하나다. 최 국제부장은 "대학 측이 전액 장학금과 항공료는 물론 수천만원에 이르는 생활비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블루오션인 아랍권에 진출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어 외대부고에서도 매년 3명씩은 입학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외고·국제고·자사고에 재학했다가 해외 유학을 가는 사례도 줄고 있다. 아이비리그 등에 진학한 선배 합격생들이 대학에 잘 적응하지 못해 중도 퇴교하는 사례가 많은 데다 최근 미국 대학이 중국 학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뽑아 경쟁률이 높아진 게 주된 원인이다. 이수진 ESC 어학원장은 "요즘 유학을 꿈꾸는 학생 중에는 일찍 해외에 나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보딩스쿨에 다니거나 국내 외국인학교에 재학하는 사례가 많다"며 "상담을 위해 유학원을 찾는 학생 대다수도 국내 외국인학교 재학생"이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 영향… '공대' 유학 강세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공대 인기가 높아진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공대 유학에선 '실리 추구'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윤희정 경기외고 국제교육지원팀장은 "공대 유학을 가는 학생 상당수가 '현지 취업'을 목표로 한다"며 "그래서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학보다는 현지에서의 학과 인지도·위치 등을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공대 유학이 늘면서 영국 대학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유지영 구루어학원장은 "영국엔 수학, 기초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대학이 많다"며 "수학 교육과정에 파이선(python·프로그래밍 언어의 하나)을 포함했을 정도로 교육 혁신이 빨라 이공계 학생들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나이젤 베닝(Nigel Venning) 브리티시 에듀케이션 코리아 대표는 "미네르바 스쿨 등 새로운 대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해외에서도 기존 형태의 대학은 없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며 "그럴수록 어떤 교수에게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더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또 이과생들이 영국을 주목하는 건 입시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내신(GPA)과 SAT·ACT 성적, 비교과 활동 실적까지 모두 준비해야 하는 미국과 달리 영국 입시는 소수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A레벨만으로도 준비가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요즘은 항공(조종), 미술, 음악 등 구체적 진로를 염두에 두고 유학 가는 사례가 증가했다. 단순히 대학 진학만이 아니라 좀 더 먼 장래(영주권 획득 및 편입)를 내다보고 유학을 계획하는 학생·학부모가 느는 추세다. 윤철환 EF국제사립학교 입학처장은 "영주권 받아 유럽 현지에서 취직 및 정착을 하는 방법과 확률을 묻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그런 면에서 독일어를 잘 익히고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다면 선진국 중 비교적 정착이 수월한 독일이 요즘 최고 인기 국가의 하나"라고 말했다. 정윤주 뉴욕포커스 유학원장은 "음악 유학의 경우에도 과거와 달리 악기 연주 외에 자기만의 전문성을 갖추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며 "최근 해외 음대 입시 준비생 사이에서는 '음악 경영' '음악 치료' '영화 음악' '음악 기술' 등 과정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20대 중반~30대 초반의 '직업 유학'이 늘면서 유학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신종민 더유학 대표는 "이들은 현지 취업이 가능한 전문직인 회계사·변호사·의사·간호사·약사·파일럿 등을 양성하는 학과에 진학하는데, 특히 의학·간호 분야가 늘었다. 해외에서 직업이나 전공을 전환하는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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