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이름만 있던 중국식 악보와 달리 음높이·길이 나타낸 악보 만들었죠
악보 기호와 가사란도 있는 정간보… 1칸에 음이름 2개 적어 반
박자 표현, 지금도 악보 그대로 연주하고 있어요
아빠께서 책상에서 편지를 쓰는 예준이 뒤로 다가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으셨어요.
"아니에요. 내일이 스승의 날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편지 쓰고 있었어요."
"와~ 선생님께서 정말 좋아하시겠는데? 마음이 담긴 편지만큼 좋은 선물도 없지."
"그런데 편지를 쓰다 보니 궁금한 게 생겼어요. 왜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이 된 거예요?"
"스승의 날은 원래 5월 26일이었는데, 1965년에 좀 더 의미 깊은 날로 정하자고 하여 5월 15일로 바꿨단다. 그날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분이 태어나신 날이거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승? 그게 누구예요? 아, 혹시 세종대왕?"
"맞았어! 예준이가 용케도 한 번에 알아냈구나?"
"하하하! 세종대왕은 과학적이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한글을 만들고, 측우기, 물시계 등을 제작해 과학 발전에도 기여한 분이잖아요."
- ▲ /그림=이창우
"물론이에요. 제가 이렇게 쉬운 글로 편지를 쓸 수 있는 것도 세종대왕 덕분이잖아요."
"그런데 세종대왕이 철학, 문학, 과학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능했다는 건 알고 있니?"
"음악이요? 그건 처음 들어요."
"세종대왕은 음악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고 해.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던 박연이 세종대왕 앞에서 편경을 연주했을 때, 세종대왕이 편경 하나의 소리가 약간 높다고 지적했을 정도란다. 또한 수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보기 쉬운 악보도 만들었지."
"예? 악보요?"
"그래. 세종대왕이 새로운 악보를 만들기 이전에는 중국식의 악보를 보고 연주했는데, 그 악보에는 음이름만 적었기 때문에 박자를 외운 후에 연주할 수밖에 없었어. 세종대왕은 그런 불편함을 없애고 좋은 곡을 후대에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음의 길이까지 나타낼 수 있는 악보를 만들었단다. 그 악보가 바로 '정간보(井間譜)'야."
중국과 우리나라 음악에서는 12율(律), 즉 12개의 음(音)을 사용했대요. 황종(黃鍾·C), 대려(大呂·C#), 태주(太簇·D), 협종(夾鍾·D#), 고선(姑洗·E), 중려(仲呂·F), 유빈(蕤賓·F#), 임종(林鍾·G), 이칙(夷則·G#), 남려(南呂·A), 무역(無射·B♭), 응종(應鍾·B) 등이 바로 12율이에요. 이렇게 복잡한 한자를 악보에 모두 넣으면, 악보를 쓰거나 읽는 것이 무척 복잡하겠지요? 그래서 세종대왕은 음이름의 앞 글자만을 사용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사각형 칸 안에 글자들을 넣었지요. 이때 사각형 칸 하나는 한 박자를 의미해요. 더 길게 연주하려면 음이름 뒤의 칸을 비워두었고요.
"와~ 정말 칸을 채우고 비우는 방법을 쓰면 음의 길이도 나타낼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악보에는 1박자(4분음표)뿐 아니라 반 박자(8분음표) 같은 것도 필요하잖아요?"
- ▲ /그림=이창우
"와~ 설명을 들어 보니 정말 표현 못 하는 박자가 없겠어요. 그런데 서양의 오선악보에는 쉼표, 붙임표 등 여러 기호가 쓰이는데 정간보에도 그런 것들이 있나요?"
"물론이야. '<'는 숨을 쉬라는 숨표, '△'는 연주하지 말고 쉬라는 쉼표, '―'는 앞의 음을 연장하라는 붙임표지. 그리고 정간보에는 행과 행 사이에 빈칸이 있어서 가사도 적을 수 있었어."
"그러고 보니 정간보가 수학과 상당히 연관되어 있네요."
"그래. 사실 음악은 수학에 소리를 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학과 깊은 연관이 있단다. 세종대왕은 그것을 깨닫고 이와 같은 수학적인 악보를 만든 것이지. 원리를 알고 보면 간단해 보여도 세종대왕의 정간보는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有量樂譜)'로 평가받고 있어. 유량악보란 음의 높이와 길이를 표기할 수 있는 악보를 말하지. 정간보는 서양의 오선악보와 함께 세계 2대 유량악보로 꼽히는 훌륭한 악보란다. 더 놀라운 것은 정간보에 새긴 우리 음악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악보 그대로 연주되고 있다는 점이야. 그만큼 기록 방법이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지."
"와~ 그러고 보니 세종대왕은 한글, 정간보 등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 참 많네요. 정말 시대를 넘어선 최고의 스승이라 할 만해요. 스승의 날을 세종대왕 탄신일로 정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네요."
"그래. 가르침을 주는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고, 늘 스승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
"네. 아빠께도 감사해요. 아빠도 늘 이렇게 가르침을 주시잖아요."
"하하, 우리 예준이가 어른이 다 됐구나."
[관련 교과] 3학년 1학기 '분수' 3학년 1학기 '규칙 찾기와 문제 해결'
[함께 생각해봐요]
아래 정간보의 칸 하나하나를 오선악보에 옮겨 보세요.
- 조선일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