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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율이란 지름의 길이에 대한 원주(원의 둘레의 길이)의 비의 값인
3.14159…를 말하는 것으로 둘레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머리 글자인 π(파이)로 나타낸다. 모든 원은 닮은 도형이므로 원주율은 어느 원에서나
항상 일정하다.
원주율의 개념은 오랜 세월을 두고 발전되어 왔다. π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명한 아메스 파피루스(Ahmes papyrus)에는 기원전 1850년 고대 이집트인들은 π의 값으로
또는 3.16049…를 사용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π의 개념은「성경」에도 등장하는데 열왕기상 7장 23절에는 기원전
950년경 세워진 솔로몬 왕의 대사원에 대해 “직경이 10큐빗이요. 모양이 둥글며, 주위는 30큐빗 줄을 두를만하다.”라고 표현하여 π의 값을 3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측정이 아닌 수학적 계산을 통해 π의 값을 처음으로 구한 것은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에
의해서이다. 그는 정육각형에서 출발하여 원에 내접ㆍ외접하는 정다각형의 변의 개수를 2배로 늘려나가면 원주의 길이는 내접하는 다각형과 외접하는
다각형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원주율을 구하였다.
즉 원에 내접ㆍ외접하는 한 변의 길이가 1인 정육각형을 만든 다음, 변의
수를 두 배식 늘려 정12각형, 정48각형, 정96각형을 차례로 만드는 방법으로 π=3.1418이라는 답을 얻었는데, 이것은 현재 π의 값
3.1416에서 0.0002의 차이 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 것이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이 방법은 ‘다각형법’이라 하여 미적분학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훌륭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중국에서도 원주율을 계산해 사용한 기록이 있다. 고대 중국의 유명한 수학 교과서
「구장산술」은 수학에 대해 246개의 예제를 기록해두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π의 값이 약 3이었다. 또 3세기쯤 중국의 수학자 유휘(劉徽)는
무한등비급수와 유사한 방법을 이용해 아르키메데스보다 훨씬 더 정밀한 π의 값을 계산해 냈다.
그 후5세기 후반 송나라의
조충지(429~500)는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가장 근사치인 3.1415926이라는 π의 값을 얻어냈는데, 이 값은 1천년 동안 가장 정확한
값이 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정확한 π의 값을 계산하려고 도전을 했지만 서양에서는 15세기까지도 이처럼 정확한 π의 값이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당시 동양의 수학이 한걸음 앞섰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세기에 들어와 뉴튼(1642~1727)과
라이프니츠(1646~1716)에 의하여 시작된 미적분학과 더불어 원주율 π를 무한급수로 나타내는 식이 차례차례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무한급수
공식을 이용하면 아르키메데스의 다각형법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쉽게 π의 근삿값을 계산할 수 있었다.
무한급수를 이용하여 π의 값을
처음 계산한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그레고리(1638~1675)였다. 또한 스위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일러(1707~1783)는 또다른 무한급수 공식을 이용하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일러는 처음으로 원주율을 π라는 이름으로 표기한 학자이기도
하다.
그 후, 컴퓨터의 등장으로 현재 π의 값은 소수점 아래 천문학적인 숫자 자리까지 계산되어 있고, 실제로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가 등장한 1949년에는 π의 값은 소수점 아래 800자리까지 계산되었고, 지금도 이와 같은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π는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 즉 무리수이므로 아무리 소수점 아래로 계속 구해 나간다 하더라도 근삿값일 뿐 완전히 정확한 원주율 π의 값은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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