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원과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물건이 참 많습니다. 일상에서 가장 흔히 찾을 수 있는 도형이죠.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기하학이 원과 사각형의 문제에 집중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중에서도 원과 같은 면적의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하는 일(원적문제)은 수많은 수학자들을 괴롭혀왔습니다.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약 5000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방정식, 미적분
등 수많은 길을 거쳐야했습니다.
밝혀진 아르키메데스의 흔적
미국 볼티모어 월터 아트 박물관 한 구석에 잠들어있는 천 년 전 책. 비잔틴 제국 시절 콘스탄티노플 성당의 수도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기도서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기도서 안에 다른 책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죠. 1999년 책의 복원
의뢰를 받은 윌리엄 노엘박사가 x선을 비추자 원과 사각형, 소용돌이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도형과 고대 희랍문자들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곧 자신이 역사상 최고의 수학자이자 공학자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의 흔적을 밝혀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한 사람이 이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방대한 아르키메데스의 업적. 그 중에는 원적문제(squaring the circle)의 해결법도 있습니다. 원적문제란 원과 같은 넓이를 지닌 정사각형을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이용해 작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지름과 원주(원둘레)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 π를 알아야 하죠.
아르키메데스는 내접다각형과 외접다각형을 이용해 π값을 유추해냈습니다. 원의 정확한 넓이는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원의 넓이는 내접다각형과 외접다각형의 넓이 사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각형 변의 수를 늘릴수록 유추는 정확해집니다. 그는 96각형을 이용해 π값이 3.1410과 3.1427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계산해냈죠. (3.1410 < π < 3.1427) 그러나 아무리 정다각형의 변을 늘여도 그 값은 하나의 수로 고정되지
않았습니다. 변의 수를 늘릴수록 이전에 계산했던 값과 근소하게 달라지니 말입니다. 결국 이 방법으로는 정확한 π의 값을 구할 수
없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원적문제 해결법
하늘의 수_ 청컨대 그 수들이 어디서 왔는지 묻고자 하노라
고대 사회에서 원과 정사각형의 문제에 집중한 곳이 그리스 뿐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마야, 인도, 중국 등에서도
원과 지름의 비율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죠. 그 당시 선두는 중국이었습니다.
복희여와도-자와 컴퍼스를 든 복희와 여와
고대 중국 사람들은 네모난 땅을 둥근 하늘이 덮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개천설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고대
천문학서인 [주비산경]은 개천설을 바탕으로 천지를 측정하는 법을 기록한 책입니다. [주비산경]의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주공이 상고에게 묻기를
“대부가 수에 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청컨대 복희가 하늘 둘레의 역도를 세운 것에 대해 묻고자 하노라.“
상고가 답하기를
“그 수들의 법은 원과 정사각형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주비산경 上-
주공은 주나라 무왕의 동생이자 성왕을 보필하며 정사를 다스린 이로, 주나라를 가장 강성하고 평화로운 시기로
이끌었습니다. 그런 그가 상고를 찾아가 하늘을 측정한 법을 물었습니다. 상고는 주나라에서 가장 수를 잘 아는 이였죠.
주공이 상고에게 주비 사용법을 배운 이유는 역법, 즉 달력을 제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달력은 황제에게 강력한 무기이자 통치수단이었습니다. 하늘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어떤 별이 나타났을 때 씨를 뿌려야하고, 추수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태양과 별을 관찰하고 그 규칙을 이해해 시간과 연결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특별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
하늘의 아들(天子)인 황제
역시 하늘의 역도를 알아야 했고, 원과 사각형의 관계를 알아야 했습니다.
[주비산경]에도 원과 사각형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이 있습니다. 원방도와 방원도입니다.원을 정사각형으로 만들고,
정사각형을 원으로 만드는 일. 원적문제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원방도와 방원도를 이용하면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π의 값을 유추할 수도
있죠.
“원과 정사각형은 만물의 여러 가지 일에 두루 적용될 수 있다. 조물주의 일에도 컴퍼스와 곡척(직각자)이 배치되었던 것이다. 정사각형을 다듬으면, 원이 되고, 원을 헐어내면 정사각형이 된다. 정사각형 속에서 원을 만든 것을 ‘방원(方圓)’이라 부르고, 원 속에 정사각형을 만든 것을 ‘원방(圓方)’이라 부른다” - [주비산경]
르네상스의 이상형, 비트루비안 맨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원방도와 방원도와 닮은 유명한 그림 하나가 탄생합니다. 원과 정사각형 안에 있는 벌거벗은
남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안 맨’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 비례도
그림 속 남자가 양팔을 수평으로 펼치면 정사각형에 꼭 들어맞고, 양팔을 위로 올리면 원에 꼭 들어맞습니다. 사실
사람을 원과 정사각형 안에 그린다는 이 아이디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것이 아닙니다. 레오나르도가 이 그림을 그리기 1500년 전, 고대
로마제국의 군인이자 건축가인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가 처음 제시한 것이었죠. 그의 저서 [건축십서]에는 비트루비안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몸의 자연적 중심은 배꼽이다. 사람을 반듯이 눕혀 양손과 양발을 뻗게 하고 컴퍼스의 중심을 배꼽에 놓았을 때, 손가락과 발가락은 그 사람 주변을 지나는 원에 닿기 때문이다. 원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방법을 쓰면 몸이 만드는 정사각형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길이를 재고 그 치수를 뻗은 두 손과 비교하면, 마치 직각자를 가지고 그린 정사각형의 공간처럼, 너비와 높이가 똑같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3대 작도 불능 문제가 수학자들의 도전이었듯, 르네상스의 예술가들에게는 인간의 신체를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건축 십서]3권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합니다. 비트루비우스가 제시한 이상적 인간은 그의 실험 정신 덕에
좀 더 정교하고, 과학적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아마추어 수학자들의 황금기였고, 레오나르도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남긴 엄청난 양의 기록 중에는 원적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 문서도 있습니다. 그는 그 문서에 이런 말을
남기죠.
“무수한 방법을 시험한 끝에 나는 원을 사각형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또 사각형과 꼭 같은 면적을 가진 원을 만들었다.”
초월수 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된 원적문제에 대한 도전. 고도화된 문명을 누리는 오늘날이라면 우리는 π의 값을 쉽게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π값을 매우 빠르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π, 완전한 π는
찾을 수 없죠. π는 초월수이기 때문입니다.
초월수란 무리수 중에서도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수입니다. π는 소수점 아래의 숫자가 비규칙적으로 무한히
이어진다는 점 이외에도 대수 방정식의 답이 될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곧 자와 컴퍼스를 이용한 작도가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죠.
π가 초월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18세기 최고의 수학자 오일러가 쓴『셋 또는 그 이상의 수량 사이에서 성립되는
관계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원주율은 매우 특수한 종류의 초월수로 구성되어 있어 다른 수량, 즉 어떤 근이나 초월수와도 결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 매우 확실한 것 같다.”
오일러가 활동하던 시절의 수학자들은 π가 무리수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해왔으나 증명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수학의
세계에서 증명이 없는 명제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오일러의 생각대로 π가 초월수라면 π가 무리수임은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초월수는 무리수이니 말입니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인 1882년. 독일 수학자 페르니난트 폰 린데만은 π가 초월수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π는
작도할 수 없는 초월수였고, π라는 숫자를 이용해야하는 원적문제 역시 해결 불가능한 것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2000년 이상 수학자들을 괴롭히던
원적문제가 마침내 해결되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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