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7일 화요일

수학은 건너뛰기 없는 마라톤…기본부터 꾸준히 수학 장벽, 이렇게 넘자

한겨레

수학 장벽, 이렇게 넘자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국제대회에서 곧잘 상위권에 오른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수포자’가 늘어만 간다. 수학의 양극화다. 전문가들은 수포자가 되지 않으려면 기초부터 꾸준히 ‘공든 탑’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11년 수학·과학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TIMMS)에 따르면 조사 대상 42개국 중 한국 중학 2학년의 수학 실력은 1위였다. 반면, 수학 공부를 좋아한다고 답한 한국 학생은 8%(세계 평균 26%)로 14위였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정작 수학은 좋아하지 않는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어만 간다. 수포자라고 밝힌 서울 동명여고 2학년 장윤진양은 “예를 들어, 선생님은 ‘1+1’이라는 기본은 알려주지만 문제는 ‘99+85…’ 식으로 꼬아 내니 처음 본 것처럼 생소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 사는 지민(가명·고2)양도 “중학교 때 수학은 늘 벼락치기 공부를 했다. 수학 공부는 꾸준히 해야 하는데…수학만 생각하면 막막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국수학교사모임의 최수일 수학교육연구소장은 학생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로 “수학의 위계성”을 꼽았다.

“우리나라 수학 교육과정은 다 연계돼 있다. 어느 한순간 소홀히 하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다시 회복하려면 이전 단계를 잘 알아야 하니 학습 속도가 더뎌지고 결국 포기한다.”

3년 걸쳐 배울 것을 2년에 몰아 배워

최 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수학문제는 외국보다 어렵다. 외국은 한 문제당 한두 개의 개념이 연관된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는 여러 개의 개념이 섞여 있어 하나의 공식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고2~3학년 문제는 중학교 때 배운 개념들까지 동원해 몇 단계를 거쳐야 답이 나온다.

그는 “입시 준비 때문에 고교 3년간 가르쳐야 할 과정을 2년에 몰아서 가르치며 ‘점수 따는 기계’를 만든다”며 “현재 한국의 수학 시험문제는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것이지 수학적 사고는 크게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수학 범위가 넓고 복합적인 것도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 그는 “미국은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게 ‘한 학년 한 단원(과목)제’다. 가령, 우리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미국의 9학년은 대수학1, 10학년은 기하학, 11학년은 대수학2를 배운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지역의 월터 존슨 고등학교를 졸업한 홍혜림(24·서울대 수학과 석사과정)씨도 “여러 분야가 섞여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방정식 1년, 기하학 1년 등 한 분야를 한 해에 집중적으로 배운다”며 “시험 때는 보통 계산기를 사용한다. 계산하는 것보다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우리도 과목은 구분돼 있다.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문과는 수학1·수학2·미적분1·확률과 통계를 배우고, 이과는 수학1·2, 미적분1·2, 적분과 통계, 기하와 벡터를 배운다. 하지만 각 과목 속에는 여러 분야의 개념들이 섞여 있고 중학교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수학 교육과정을 완전히 바꾸는 건 국가 차원의 문제다. 제도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생들은 기다릴 수 없다. 일단 ‘대입’을 위해서라도 수학을 포기할 수 없다. 취재 때 만난 아이들 대부분 “수학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싫지만 대학에 가기 위해 억지로 붙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수능시험이 눈앞에 다가온 학생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고려대 미디어학부 1학년인 조은경씨는 수학 때문에 재수했다. 그는 수학의 기초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중학교 교과서를 다시 집어들었다.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걸 자꾸 배우려고 하니 실력이 늘지 않았다. 특히 도형이 약해서 재수학원 다니면서 따로 중학교 수학교과서와 고1 기본서로 개념을 잡고 기초부터 새로 쌓아나갔다.”

여러 개념 연관된 문제들 많고
수학 공부 범위도 넓고 복합적

빼먹고 가면 갈수록 힘들어져
논리적으로 푸는 훈련 반복해야
그렇다고 반복계산 연습은 금물
개념 이해 뒤 문제 푸는 게 중요
성급한 기대나 포기 모두 안돼
수준맞는 교재로 여러번 풀어야


중학 교과서 다시 집어들고 새로 시작

조씨는 문제집 한권당 네다섯번씩, 모두 5~6권을 봤다. 밥 먹는 시간이나 재수학원을 오가는 버스에서도 봤다. 그는 “진짜 징그러울 정도로 했다. 한 문제집에서 더 이상 얻어낼 게 없을 정도로 완벽히 이해한 뒤에야 다음 단계 문제집을 찾았다”며 “무조건 문제 패턴을 익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의도를 파악하려고 했다. 안 풀리는 문제는 연습장에 따로 적어서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연구했다”고 말했다. 수능 때 수학 3등급을 받았던 조씨는 일년 뒤 치른 ‘두번째 수능’ 수리영역에서 한 문제 틀렸다.

5수 끝에 올해 경희대 한의예과에 입학한 허혁재(24)씨는 원래 수포자였다. 수학에 흥미를 잃었던 고1 10월 모의고사 때 수학 6등급을 받았다.

“재수할 때 전과를 하며 문·이과 수학문제를 모두 풀어봤다. 문과 수학은 다루는 내용이 많지 않고 출제 문제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가령, 행렬에서는 어떤 조건을 주고 내용의 참·거짓을 판별하는 문제가 나온다. 이과는 범위도 넓고 복잡해서 계산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훈련이 더 필요하다.”

허씨는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2005년도부터 가장 최근까지의 수능과 6·9월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분석해 문제 유형을 익혔다. 어느 정도 정해진 틀에서 문제가 출제된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논리적으로 푸는 훈련을 했다. 그는 현재 과외를 하면서 7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허씨는 “수포자 대부분 수학적 표현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끈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공식을 알려주고 문제에 대입해 풀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수포자나 고등학생을 가르칠 때, 가장 기초적인 계산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를 연습시키고 바로 기출문제로 들어간다. 중간에 이전 단계의 개념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발췌해서 설명하고 채워나간다. 기본부터 차근차근 할 시간이 부족한 고등학생이라면 기출문제 위주로 문제유형을 익힐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아직 고등학생이 아니라면 ‘드릴학습’(문제의 유형을 나눠서 틀리지 않도록 계속 훈련하는 반복계산연습)은 피해야 한다. 기본부터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의 한 중학교 수학교사 김아무개씨는 2년째 육아휴직중이다. 현재 그는 동네 교육공동체 ‘마을학교’에서 초·중학교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는 이유가 ‘드릴학습’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은 대여섯 살부터 수학수업을 받다 보니 초등 5, 6학년이 되면 이미 지쳐 있다. 수학이 강요되니 호기심이나 자극을 느끼기보다 흥미를 잃고 ‘수학이 짐’이라고만 여긴다.”

서로 묻고 답하다 보니 수학 개념 터득

김 교사는 마을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고민을 이해하면서 ‘서로 개념을 설명하면서 가르치기’를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은 그날 학교에서 배운 개념을 서로 질문하고 답한다. 김 교사는 먼저 중요 개념을 설명해주거나 아이들에게 직접 설명해 보도록 한 뒤 문제를 낸다. 아이들은 문제를 손으로 써서 풀기 전에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생각을 얘기한다.

중학생은 노트를 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문제를 풀고 오른쪽에는 설명을 글로 풀어쓴다. 가령, 한 학생이 이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푼다면 왼쪽에는 수식을 써서 계산한 내용을 적는다. 오른쪽에는 왜 방정식을 써서 풀었는지, 근의 공식이 무엇인지 정리한다. 그러고 나서 그 과정을 친구나 교사, 엄마한테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개념을 자기식으로 이해하고서부터 문제 푸는 게 쉬워졌다고 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거의 얘기를 안 했다. 선생님이 말하는 게 다 옳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직접 말로 답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대학생에게 과외를 받으며 선행학습을 했던 중학생의 경우, 시험문제를 반밖에 못 풀었는데 두세 달 만에 자신감이 생겨 지금은 다 푼다고 한다.”

하승열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물어보니 함수는 중1 때 배운다고 했다. 교과서에는 함수를 숫자만 가지고 설명한다”며 “함수를 풀 때 사칙연산과 수집합이 필요해서 숫자를 이용하는 것뿐이지, 함수의 개념 자체는 일상생활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함수의 사례로 5인조 아이돌들의 미팅 얘기를 꺼냈다. 걸그룹 ‘에프엑스’와 보이그룹 ‘카오스’가 미팅을 한다고 치자. 남자 멤버가 먼저 여자 멤버를 선택한다. 여자 멤버는 자신을 선택한 남자 멤버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한다. 하 교수는 “함수의 기본 본질은 관계 맺기다. 남자 멤버가 여자 멤버를 한 명씩 선택하면서 관계가 달라진다. 그 선택과정이 바로 함수”라고 말했다. 하 교수는 지난주 금요일 인터파크에서 마련한 수학콘서트 ‘카오스’에서 함수의 본질과 일상 속 함수에 대해 강연했다.

“몇해 전 교육방송에서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강의하는 걸 봤다.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샌델 교수가 질문을 던지고 학생과 대화하는 걸 보며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더라. 수학 개념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수포자도 줄고 일반인들도 수학적 저변이 깔린 사회·자연 현상을 정확하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다. 책이나 강연을 찾아보면 수학에 대한 흥미도가 확실히 높아진다.”

서울 강남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이홍권(48)씨는 자녀 수학 성적과 관련해 학부모들이 착시 현상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은 중학교 때 수학 90점 맞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해 첫 시험에서 60~70점을 맞아도 적응을 못해서 그렇지 좀 노력하면 곧 90점 받을 거로 생각한다. 한데 그게 착각이다. 처음 60~70점 맞았다면 다음 목표는 65~75점이 돼야 한다. 90점이 돼서는 안 된다. 중간고사에서 50점 맞은 아이가 기말고사에서 52점 성적표를 들고 오면 꼭 칭찬해줘야 한다.”

수학은 짧은 시간에 점수가 오르지도 않을뿐더러 부모의 지나친 기대나 비난으로 아이들이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공부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자신의 수준에 맞는 교재를 골라 여러 번 풀어보라고 조언했다. “교재마다 난이도가 조금씩 다르다. 한 페이지 전체 문제 중 절반 이상 맞힐 수 있다면 그 교재가 자신 수준에 맞는 거다. 그 교재를 적어도 서너 번, 다섯 번까지 반복하면서 오롯이 자기 힘으로 푸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하 교수는 “수학에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학생들은 시험을 못 보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천재만 하는 게 아니다. 짧은 시간 습득해서 시험을 잘 보는 건 단거리 선수다. 수학은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하는 마라톤이다. 시험을 망쳐서, 점수가 안 나온다고 포기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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