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4일 수요일

노벨상만 7명… '헝가리 현상' 만들려면 잠든 호기심 깨워라


헝가리 창의성 교육 특별고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

- 과학·수학 천재 대거 배출
1880년~1920년대 출생자,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교육 중시… 수학 문제 풀면서 사고력 키워
- 소련식 획일적 교육 이후…
창의성 금기시… 주입식 교육… 평균 이하의 교육 후진국 전락
- "한국 교육, 호기심 자극 못해"
미래 사회에 대비할 수 있게 도전을 즐기는 방법 가르쳐야

창의성과 몰입적 사고의 효과에 대해 연구한 헝가리 태생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다.
창의성과 몰입적 사고의 효과에 대해 연구한 헝가리 태생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대학에서 강연하고 있다. /중부유럽대학(CEU) 제공
현대 창의성 연구의 선구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몰입(Flow)'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83)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특훈교수는 말년을 모국 헝가리에서 보내고 있다. 그는 최근 헝가리 교육부의 '창의성 교육 특별 고문'으로 위촉돼 교육 개혁을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헝가리 태생인 칙센트미하이는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때 세계 최고의 천재들을 배출했던 헝가리가 평균 이하의 교육 후진국으로 전락한 배경에는 창의성을 살리지 못한 획일적 교육이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현상(The Hungarian Phenomenon)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했듯 1880년~1920년대 헝가리에서는 노벨상 수상자 7명, 울프상 수상자 2명을 포함해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들이 줄줄이 태어나 교육을 받았다. 핵분열 연쇄 반응을 발견해 원자탄 개발의 초석을 놓은 실라르드, '수소폭탄의 아버지' 텔러, 홀로그래피를 발견한 물리학자 가보르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 갑자기 인재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헝가리 현상'이라고 부르게 됐다.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당시 헝가리인들은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교육'을 중시했다. 대표적인 것이 헝가리 고교생들 사이 수학 붐을 일으킨 '에트뵈스' 수학 경시대회다. 수학학회가 매년 고교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이 대회는 수학 문제를 통해 지식의 깊이와 창의성을 테스트했다. 다른 요인은 '쾨말'이라는 수학 월간지다. 당시 학생들은 쾨말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잡지가 나오면 며칠씩 걸려 문제를 풀었다. 헝가리 현상을 연구한 황농문 서울대 교수는 "고도의 몰입을 요구하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학생들은 깊고 날카롭게 생각하는 사고력을 발달시켰다"고 분석했다. 폰 카르만, 하르, 리스 등 헝가리가 배출한 수학·과학자들은 고교 시절 바로 이 에트뵈스 대회 수상자들이다.

◇구원투수로 나선 '몰입'의 대가
칙센트미하이는 "2차 세계대전과 50년의 소련 지배로 헝가리 교육은 획일화됐고 학생들은 학습이 '지루한 일'이란 인식을 갖게 됐다"며 거기서부터 헝가리가 추락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공산주의 체제에서 창의성을 금기시했고 교육도 주입식 위주로 바뀌었다. 헝가리는 2015년 국제학업성취도시험(PISA) 점수가 OECD 평균 이하의 하위권 국가로 전락했다. 칙센트미하이는 "교육 수준이 낮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기업들이 매우 혁신적인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국 교육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헝가리 현상'을 재현하기 위해 헝가리 교육부에 가장 먼저 "제도권 교육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학습 부진아'로 취급하지 말고, 각 학생의 특색·장점·관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해 학습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칙센트미하이는 "교육이 단일 체계여야 한다는 관념이 창의성의 가장 큰 적(敵)"이라며 "가지 않은 길을 가려 하는 학생을 막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칙센트미하이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지식을 전수하는 데는 강하지만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학생의 PISA 성적은 최상위권이지만 과목에 대한 열정·호기심은 매우 낮게 나타나는 현상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칙센트미하이는 "정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면 주입식 교육으로 인재를 계발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다가올 미래는 매우 크고 잦은 변화가 예상된다"면서 "이에 따라 한국의 교육 정책도 창의성 위주로 바꿀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 가장 이상적 교육에 대한 '정답'은 아직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칙센트미하이는 "학생들을 미래 사회에 대비할 수 있게 불확실성과 변화를 포용하고 도전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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