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5일 금요일

진도 8 강진에도 건물들이 멀쩡하네!

耐震·制震·免震 건물<내진·제진·면진>
미끄러지듯 이동해 충격 ⅛로 줄여… 바람 부는 반대로 움직이기도
서초동 트라움하우스·인천공항 관제탑·잠실 갤러리아팰리스에 적용

지난주 토요일 강원도 평창에서 발생한 지진은 전국 곳곳에서 진동이 감지될 정도였다.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국민 모두가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만약 평창 지진보다 더 강한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국내 건설사들은 이에 대비한 새로운 기술들을 잇달아 개발하고 있다.
지진에 대한 대비는 기둥이나 철근을 두껍게 해 지진의 충격을 이겨내는 이른바 ‘내진(耐震)’ 설계가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건물과 기초를 분리시켜 지진 충격이 건물에 전달되는 것을 막는 ‘면진(免震)’이나 충격이 오는 쪽과 반대로 움직여 보다 적극적으로 지진의 영향을 상쇄시키는 ‘제진(制震)’ 기술들도 개발되고 있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건물
면진기술은 이를테면 야구공을 받을 때 글러브를 낀 손을 약간 뒤로 빼면서 받으면 손바닥이 훨씬 덜 아픈 원리를 이용했다. 기계 부속품이 맞닿는 곳에서 마찰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베어링을 건물 기초와 상부 건물 사이에 설치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되면 건물 전체가 베어링 위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게 돼 지진의 충격을 6분의 1~8분의 1로 줄여준다. 지난 1994년 미국 노스리지에서 발생한 강도 6.7의 지진으로 모든 병원들이 다 파손됐지만 면진 베어링이 설치된 남가주대병원은 무사한 데서 이미 그 효과가 입증됐다.
국내에서는 면진 전문 업체인 유니슨 기술연구소와 서울 서초동 트라움하우스, 현대 김포 신곡아파트 일부 동(棟)과 충남 서산 주공아파트의 복지회관에 면진 설계가 적용됐다. 서산 주공아파트의 복지관은 대한주택공사의 면진기술 홍보관으로 운영 중이다. 이들 건물은 규모 6~8 정도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
면진 베어링은 건물 기초가 아닌 곳에도 사용된다. 다리에는 상판과 교각 사이에 면진 베어링이 들어가 다리 윗부분이 받는 충격과 지반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분리한다. 최근 이 기술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에도 적용되고 있다.
서울 상암동에 건설되는 누리꿈 스퀘어빌딩은 비즈니스센터와 연구·개발(R&D)센터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통로인 IT캡슐로 구성된다. 그런데 두 건물의 층수와 평면 형태가 달라 지진이 발생하면 각각 다르게 진동하게 된다. 연결 통로가 양쪽 건물에 틈 없이 접합돼 있다면 양쪽에서 다른 방향으로 비트는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삼성물산은 건물과 연결 통로 사이에 베어링 구슬이 오갈 수 있는 레일을 설치했다. 레일은 안으로 구부러진 모양이어서 구슬은 늘 중앙으로 이동하게 된다. 여기에 충격이 전해지면 레일의 위치가 변동되고 그에 따라 베어링 구슬의 위치도 바뀐다. 이에 따라 통로도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충격을 피하게 된다. 양쪽 건물 접합부에 모두 베어링이 설치돼 있으므로 충격에 뒤틀릴 염려 없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건물 내부의 고가품을 보호하는 데에도 면진기술이 적용된다.
현대건설 기술연구소 김윤석 박사팀은 지난 2001년 골동품과 같은 고가품을 지진으로부터 보호하는 면진 테이블을 개발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보다도 내부의 고가품들이 진동으로 인해 파손돼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착안했다. 면진 테이블은 박물관 전시 케이스 아래 10㎝ 두께로 들어가 전시 케이스가 지진으로 인한 진동보다 천천히 움직이게 해 충격을 완화시킨다. 실험에서는 일본 고베 지진과 같은 규모의 진동에도 전시 케이스 안의 도자기가 넘어지지 않았다.
▲ 서울 상암동 누리꿈 스퀘어의 조감도(왼쪽)와 두 건물 사이 이동통로에 설치된 면진장치. 이동통로와 각 건물이 맞닿는 부분에 베어링을 부착해 진동이 발생하면 이동통로가 유연하게 움직여 충격을 피할 수 있게 했다(오른쪽 위). 서울 잠실 갤러리아팰리스에 사용된 제진장치(오른쪽 아래). 진동에 따라 철골들을 아래위로 움직이게 해 건물에 미치는 진동을 상쇄한다.
◆바람 부는 반대로 움직이는 원리도
면진이 지진의 충격을 이리저리 피하는 원리라면 제진은 충격을 적극적으로 상쇄시키는 방법이다. 면진 설계가 주로 주상복합건물에 적용된다면 제진은 지진의 충격과 함께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30~40층 이상의 고층 빌딩에 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현대건설이 시공한 인천공항 관제탑 제진시스템이다. 관제탑이 지진으로 인해 일정 기준치 이상으로 흔들리면 무거운 무게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관제탑을 이동시킨다. 현대건설에 따르면 인천공항 관제탑의 제진시스템은 바람의 영향은 75%, 지진의 영향은 절반까지 감소시킨다.
주거 건물에 제진 설계가 적용된 것은 101층 508m로 현재 세계 최고 높이인 타이베이 101 빌딩이 대표적이다. 타이베이에는 태풍이 자주 오기 때문에 지진보다 바람 때문에 건물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진자(흔들이)형 제진장치(TMD·Tuned Mass Damper)’는 거대한 추를 빌딩 상층부 안에 매달아 빌딩의 요동을 없애는 장치이다. 진자의 추 부분은 지름 5.5m, 무게 650t의 거대한 쇠공이다. 이것이 92층에서 88층에 이르기까지 8개의 줄로 매달려 있다.
국내에서는 2003년 삼성이 지은 서울 잠실 갤러리아팰리스에 처음 제진장치가 들어갔다. 건물을 가로로 지탱하는 철골구조들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철골 구조물들이 아래 위로 이동할 수 있는 장치를 달았다. 이에 따라 진동이 오는 반대 방향으로 건물을 이동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부산 해운대구의 포스코 더 샵 센텀스타에는 TMD형 제진장치가 들어갔으며, 서울 양천구에 시공되고 있는 목등트라펠리스에는 49층과 42층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 양 끝단에 양쪽에서 오는 진동을 상쇄시키는 제진장치가 올 10월에 들어갈 예정이다. 두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에 제진장치가 들어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키워드
▲내진(耐震):기둥이나 철근과 같은 구조물을 강하게 하여 지진의 충격을 이겨내는 방법.
▲면진(免震):기초와 상부 건물 사이에 충격을 줄이는 분리장치를 삽입해 땅에서 오는 진동이 건물에 직접 전달되는 것을 막는 방법.
▲제진(制震):지진이나 바람으로 인한 진동이 오는 쪽과 반대로 건물을 움직여 충격을 상쇄시키는 방법.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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