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9일 화요일

감정 로봇 시대의 개화…"인간에겐 도라에몽이 필요해

4차 산업 혁명이 인류를 ‘신세계(新世界)’로 안내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클라우드가 모든 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5세대 통신이 현실과 가상현실(VR)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도 진화를 거듭한다. 200억개가 넘는 사물의 연결, 급속한 클라우드화, 일상화된 인공지능, 가상화폐와 가상현실의 보편화 등이 특징인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조선비즈 특별취재팀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차 산업 혁명이 이끄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이른바 ‘매트릭스(matrix)’로 불리는 세계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진화의 방향을 알면 우리의 대응 방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제1부 극단의 기술 융합 > ③ 감정 로봇 시대의 개화…"인간에겐 도라에몽이 필요해”

‘깜박깜박’

대형 스크린(화면)에 뜬 기자의 얼굴 위로 아주 작고 엷은 흰색 점들이 나타났다. 멋쩍어진 기자가 소위 ‘썩소’라고 말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수 백개에 달하는 흰 점들은 기자 얼굴의 미묘한 움직임을 따라 물결치듯 흘러갔다.

“당신의 감정 상태는 약 50%의 즐거움(enjoy)과 20%의 두려움(fear)입니다.”

감정 분석 솔루션 기업 어펙티바(Affectiva)의 인공지능이 판단한 기자의 감정 상태였다. 지난 5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맥커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GTC 2017’ 행사에서 기자는 AI 분야의 새 강자로 떠오른 어펙티바(Affectiva)의 솔루션을 직접 체험해 봤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랩(Lab·연구소)에서 지난 2009년 분사한 이 기업은 얼굴 표정과 목소리, 맥박수 등의 방대한 데이터에서 감정을 추출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천, 뉴욕타임스 등이 선정하는 2017년 유망 스타트업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어펙티바의 표정 인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감정 상태./ 어펙티바 제공
▲ 어펙티바의 표정 인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감정 상태./ 어펙티바 제공
기자는 어펙티바의 감정 분석 솔루션이 웃는 얼굴이나 우는 얼굴, 화난 표정 등 기본적인 감정 표현을 데이터베이스로 한 알고리즘 수준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훨씬 정교했다. 사람의 표정은 한 가지 감정만 나타내지 않는다. 웃을 때 조금은 슬플 수 있고, 슬플 때도 조금은 기쁠 수 있다. 어펙티바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 상태를 귀신같이 잡아낸다.

제이 터콧(Jay Turcot) 어펙티바 연구개발(R&D) 총괄이사는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로봇이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데는 감정 인식 기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로봇이 특정 행동을 한 후 사람의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의 행동 방식을 스스로 교정하며 규범을 정립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터콧 총괄이사는 “사람이 로봇에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일일이 말해야 한다면, 사람은 하루 종일 로봇만 가르치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 소셜봇 개발 붐...250만개 감정태그부터 자폐 치료 로봇까지

인구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 개인주의 심화 등이 특징인 현대 사회에서 ‘소셜 로봇(Social Robot)’이 주목받고 있다. 인간의 일을 돕는 수동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인간의 소소한 일상생활을 보조하는 한편, 다양한 감성 인지 기능을 바탕으로 인간과 적극 소통하는 로봇 말이다.

 소프트뱅크 ‘페퍼’/류현정 기자, flickr, 그래픽 = 김종형 인턴 기자
▲ 소프트뱅크 ‘페퍼’
소프트뱅크는 ‘사랑을 가진 로봇(愛を持つたロボット)’라는 비전 아래 자체 개발한 감정 로봇 ‘페퍼(pepper)’를 계속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페퍼는 각종 시각·청각·촉각 등의 센서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고 클라우드로 연결된 감정 엔진을 통해 감정을 분석해 인간과 소통한다. 페퍼는 일본 내 소프트뱅크 대리점을 비롯해 미즈호 은행, 네슬레 등 서비스 현장에 배치돼 사람들의 심심함을 달래주고 영업을 도와준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비욘드버벌(Beyond Verbal)’은 40개 언어 250만개 이상의 ‘감정 태그가 붙은 음성’을 축적했다. 비욘드버벌의 기술은 말의 내용과 맥락이 아닌 사람의 목소리 억양·어조 등을 분석해 불안, 흥분, 분노 등 감정을 짚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목소리만으로 사람 몸 상태를 파악하는 서비스 ‘무디즈(Moodies)’를 개발했으며 지난 6월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개발자용 응용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도 내놨다. 이 회사의 기술이 고도화하면 인공지능 스피커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콜센터 등 서비스 업계에서 사용자나 환자, 고객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이밖에 MIT의 ‘지보(Jibo)’, 블루프로그로보틱스의 ‘버디(Buddy)’, 인젠다이나믹스의 ‘아이도(Aido)’, 아수스의 ‘젠보(Zenbo)’, 세그웨이와 인텔의 ‘루모(Loomo)’, IPL의 ‘아이지니(IJini)’ 등이 대표적인 소셜 봇들이다. 샤프의 ‘로보혼(RoboHon)’, 다카라토미와 NTT도코모의 오하나스(OHaNAS), 유니로봇의 ‘유니보(Unibo)’, 브이스톤의 ‘소타(Sota)’, 아카인텔리전스의 '뮤지오(Musio)'도 소셜 로봇으로 분류된다.

특수한 기능을 갖춘 소셜 로봇도 있다. ‘마일로(Milo)’, ‘레카(Leka)’, ‘다윈-OP2’ 등은 자폐아동의 사회성을 키워주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기술 방향을 보면, 현대인들이 인간과 교감하고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 반려자(Companion) 로봇은 고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셜 로봇 종류 / ETRI 제공
▲ 소셜 로봇 종류 / ETRI 제공
이아름 융합연구정책센터 연구원은 “음성인식, 감정표현 기능까지 탑재한 소셜 로봇은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기쁨, 분노, 슬픔, 불안, 편안 등 심리·감정 상태 패턴을 분석해 그에 맞는 대응으로 인간과의 감성적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유발 모어 비욘드버벌 최고경영자(CEO)는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는 우리가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21세기 인류의 외로움을 달래줄 도라에몽

“우리는 ‘도라에몽(ドラえもん)’을 만들고 싶습니다. 도라에몽은 진구에게 끊임없이 묻죠. '진구야, 너 배고프지 않니? OO 과자 먹을래?' 무엇을 같이 먹자는 말은 지식이 아닌 감정이죠.”

 코코로SB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닌 감정지능까지 갖춘 만화 ‘도라에몽’과 같은 로봇을 꿈꾼다./ 코코로SB 제공
▲ 코코로SB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닌 감정지능까지 갖춘 만화 ‘도라에몽’과 같은 로봇을 꿈꾼다./ 코코로SB 제공
코코로SB의 오오우라 키요시 이사는 지난 7월 열린 '소프트뱅크월드 2017'에서 강연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코코로SB(Cocoro SB)는 ‘페퍼’의 감정인식기능을 담당하는 감정 엔진을 만든 곳으로 소프트뱅크의 자회사다. 이 엔진 덕에 페퍼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면, 사람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학습한다.

도라에몽은 일본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파란색 로봇 고양이로, 무엇을 해도 잘 안되는 열살배기 남학생 진구를 돕기 위해 22세기 세계에서 왔다. 도라에몽은 자신의 배 쪽에 있는 비밀의 4차원 주머니 속에서 마법처럼 신기한 도구를 꺼내 진구를 돕는다.

오오우라 키요시 이사는 "언젠가 로봇뿐만이 아닌 자동차도 당신에게 '오늘같이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나랑 같이 OO 도로를 달려볼래?'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코코로SB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7에서 혼다와 협력한 콘셉트카 ‘뉴브이(NeuV)’를 선보였다. 혼다와 코코로SB는 탑승자의 감정까지 자동차가 인식해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주행에 반영하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다. 코코로SB는 일본 르네사스와도 감정 엔진을 활용해 운전자가 내는 소리에서 자신감과 불안 등 감정을 인식하고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표현하는 자동차를 개발 중이다.

◆ 기계에 ‘희로애락’을 가르치는 사람들

인공지능에 감정을 가르치는 방식은 기업마다 각양각색이지만, 방대한 데이터 수집을 기본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령, 어펙티바의 경우 700만여명의 표정을 인식해 데이터로 구축한 뒤 이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인공지능의 정확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어펙티바가 개발한 알고리즘은 사람의 표정이나 말에 반응해 인공지능 스스로 자신의 결정 방식을 계속 수정하도록 설정돼 있다.

또 어펙티바는 인종이나 문화권, 나이 등에 따라 다양한 변수를 설정해 인공지능이 사람의 행동 패턴을 빠르게 학습할 수 있도록 진화시키고 있다. 영어, 중국,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에 따른 감정 표현과 심박수, 얼굴 표정과의 상관관계 등을 분석해 인간의 감정 상태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해 나간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코코로SB의 감정 엔진 구조도. 왼쪽부터 감정생성 엔진, 감정인식 엔진, 자연어처리 엔진이다./ 코코로SB 제공
▲ 코코로SB의 감정 엔진 구조도. 왼쪽부터 감정생성 엔진, 감정인식 엔진, 자연어처리 엔진이다./ 코코로SB 제공
코코로SB의 감정 엔진은 ‘감정생성 엔진’과 ‘감정인식 엔진’, ‘자연어처리 엔진’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감성 엔진은 얼굴표정, 음성인식을 포함해 여러 센서로 받아들인 정보로 감정을 생성하고, 감정인식 엔진은 분노·슬픔·기쁨·평온 등의 감정을 도출하며 자연어처리 엔진은 '기분이 좋아보입니다'처럼 실제 사람이 말하는 자연어로 바꾸는 식의 알고리즘이다. 감정은 기쁨·슬픔 이외에도 의욕·열정·분열·허무함·쾌락·성실·공포·망상·정의·자신감 등 세세하게 나눠져 있으며 색깔과 양으로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코코로SB는 소프트뱅크 산하에 있는 또 다른 자회사인 AGI와 함께 색다른 감정생성 및 감정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ST음성감정인식 기술'이라고 부르는데, 음성 감정을 읽어 사람의 목소리에 표면적 의미와 본심을 구분하는 것이다. 표면에 드러나는 언어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성대에서 나오는 음성은 긴장하거나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 목소리가 떨리게 돼 있기 때문에 이를 포착한다.

코코로SB는 감정지능을 인간의 뇌 중 '대뇌변연계(둘레계통)'에 해당한다고 보고 이와 연결되는 신체적 반응을 연구해 엔진을 개선하고 있다. 대뇌변연계는 감정에 관련된 행동을 주관하는 부위로, 사고와 언어 등의 지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과 시상하부 사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오오우라 키요시 이사는 "우리는 배고프면 먹고 무서우면 도망가는 본능이 있는데, 이는 대뇌변연계와 관련된 것"이라면서 "대뇌변연계의 기능을 인공감정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감정지능을 연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 영화 ‘그녀(The Her)’처럼 인간이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감정을 가진 로봇이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여생을 함께 보내는 '동반자'는 될 수 없을까. 영화 ‘그녀(The Her)’에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대필 작가 테오도르가 등장한다.

실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들도 제법 있다.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Love and Sex with Robots)’의 저자 데이비드 레비 박사는 로봇기술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간과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결혼하는 광경이 앞으로 35년 이내에 보편화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2050년 이전에 로봇과 (사람과의) 결혼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비 박사는 “로봇과의 사랑과 성관계가 보편화함에 따라 로봇과의 결혼이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런던시티대 교수인 애드리언 척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35년 전에 동성결혼도 터무니없다는 취급을 받았다”면서 “또 1970년대까지 미국 일부 주에서는 백인과 흑인 간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봇과의 결혼 가능성에 무게를 둔 발언이었다.

올 초에는 중국 IT 기업인 화웨이에서 근무하던 정지아지아(郑佳佳·31)씨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 '잉잉(Yingying)'을 직접 만들어 결혼한 사례가 해외 토픽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도 한 여성이 3차원(3D) 프린터로 직접 만든 로봇과 결혼을 결심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직접 3D프린터로 만든 로봇과 일 년째 함께 생활하며 사랑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행복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홍콩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할리우드 스타 ‘스칼렛 요한슨’ 로봇./ 유튜브 캡쳐
▲ 홍콩 그래픽 디자이너가 만든 할리우드 스타 ‘스칼렛 요한슨’ 로봇./ 유튜브 캡쳐
외형적으로도 사람과 거의 흡사한 수준의 로봇을 만들려는 노력도 계속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오사카대학 컴퓨터과학자인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는 가장 인간에 가깝고 매력적인 로봇 '제미노이드'를 만들었다. 아직 제미노이드의 실리콘 피부는 실제 사람 피부와 감촉이 다르고, 표정 등이 어색하지만 지난 5년간의 발전 속도에 비춰볼 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업계의 분석이다.

홍콩 그래픽 디자이너인 릭키 마 와이카이도 3D프린터와 실리콘으로 미국 할리우드 스타 '스칼렛 요한슨'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들었다. 로봇은 스피커를 통해 말할 수 있고 머리와 팔다리도 간단하게 움직일 수 있다. 머리카락 색도 실제처럼 자연스럽고 섬세한 표정도 짓는다.

로봇과 인간과의 교감에 큰 걸림돌이었던 ‘대화'와 ‘소통'의 문제는 감정 엔진의 고도화로 빠르게 해결되고 있다. 하루 끝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인간을 향해 로봇 배우자가 “고생했다”며 어깨까지 토닥여 줄 날이 과연 오는 것인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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