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5일 금요일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는 ‘내진설계’의 원리

진동 주기 변화시키거나 스스로 진동 제어

지축을 흔들고 지도까지 변하게 한 규모 9.0의 대지진. 전 세계가 이 끔찍한 자연재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세계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며 또 한번 놀랐다.

사상 최악의 재난을 겪으면서도 고도의 냉정함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일본 사람들도 감탄스럽지만 대지진 앞에서 당당히 서 있는 그들의 건축물도 놀랍다. 물론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로 무너져 내린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이 오래된 낡은 건물이었으며 도심지역의 고층빌딩과 같은 건축물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만약 이 지진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물론 한반도의 위치와 지질특성상 규모 9.0정도의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자연재해는 그 누구도 쉽사리 예측할 수 없기에 ‘절대 안전지대’는 없다. 소방방재청의 ‘시설물별 내진실태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내진 설계가 필요한 건축물 중 80%이상이 내진 설계를 적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소방방재청의 ‘지진 피해 예측 자료’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 6.5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경우 약 11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철저한 지진 대비, 우리나라는?

이는 9.0은 고사하고 일본에서 여진으로 발생하고 있는 정도의 지진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6.5라는 규모는 한반도의 지질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최대 규모 지진으로, 이 정도의 지진이 전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일본은 1995년 고베 대지진을 겪고 나서 3차례에 걸쳐 건축법을 개정하며 내진설계를 관리해 왔다. 또한 이미 설계된 건축물에도 내진보강을 하며 철저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노력들이 이번 대지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으며 막대한 양의 경제적 손실을 막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튼튼한 설계로 지진에 맞서는 내진구조

내진설계는 지진에 의한 피해를 어떤 방식으로 줄이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내진구조는 지진으로부터 발생하는 지반의 흔들림에도 전체적인 구조나 내부 시설물이 파손되지 않도록 튼튼하게 건설하는 것이다. 즉, 건축물 내부에 철근 콘크리트의 내진벽과 같은 부재를 설치해 강한 흔들림에도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것만으로 이번과 같은 대규모 지진까지 버텨내는 데는 무리가 있다.

튼튼한 구조 덕분에 건축물의 완전 붕괴를 방지할 수는 있지만 건물 내부의 설비들까지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시대가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축물 내부에 각종 설비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점점 더 큰 문제가 됐다.

건물 내 전기 및 통신설비가 끊기거나 가스관, 수도관 파손 등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지진이 멈춘 후에도 이차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물 내부에 매우 값어치 있는 물건이나 충격에 불안정한 물질 등이 있는 경우는 건축물 자체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건물’만으로는 지진에 완벽히 대비할 수 없다.

진동 주기를 길게 변화시키는 면진구조
이에 내진구조 외에도 지진 피해를 더욱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구조들이 고안됐다. 그 중 하나인 ‘면진구조’는 지진으로 발생하는 진동의 주기를 길게 변화시켜 건축물이 받는 에너지를 줄이는 원리다. 파동의 에너지는 주기가 짧을수록 크기 때문에 이를 변화시켜 충격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건축물은 사용된 자제나 그 구조에 따라 지진 발생 시 받게 되는 고유 주기가 있는데, 보통 고층건물일수록 고유 주기는 길어진다. 따라서 예상 외로 지진 발생 시 고층건물들이 저층건물에 비해 피해를 덜 보기도 한다.

이 고유 주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건축물과 지반을 격리시키는 것이다. 즉, 지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치 혹은 구조물 위에 건물을 올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은 고무와 같은 부드러운 물질이나 구슬 형태의 구조물 등이 있다. 지진 발생 시, 지반에 고정돼 있는 건축물의 경우 지진의 진동과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면진구조로 건설된 건축물의 경우는 진동이 완화돼 전달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다. 건물 자체는 진동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할지 몰라도 거대한 건축물이 크게 움직인다면 주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바로 감쇠장치다. ‘댐퍼’라고도 불리는 이 장치는 진동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구조물의 흔들림을 점차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스스로 진동을 제어하는 제진구조
이런 감쇠장치의 역할은 세 번째 지진 대비 구조인 ‘제진구조’에 포함된다. 제진구조의 이해는 급정차, 급출발 하는 버스를 생각하면 쉽다. 버스가 급정거 할 때 서있는 사람은 관성에 의해 몸이 앞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때 우린 넘어지지 않으려고 뒤쪽으로 힘을 가하게 된다. 이로써 관성과 자신의 근육에 의한 힘이 균형을 이뤄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제진구조는 이와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 지진으로 인해 전달되는 진동을 감지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는 힘 또는 진동을 발생시켜 구조물로 전달되는 진동을 저감시키거나 구조물의 강성, 감쇠등을 제어해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일본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내진설계들과 함께 유리의 보호용 외피처리, 지하매설 대신 전봇대를 이용하는 전력선, 수송관 보다는 철제 통에 담아 사용하는 가스 등과 같은 자잘한 요소들까지 신경 써왔다. 이에 지난 아이티 지진의 900배에 달하는 강도에도 불구하고 건축물 피해는 비교적 적었다 볼 수 있다.

내진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관리와 정책
하지만 내진설계라면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도 피해가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수차례의 폭발과 방사능 물질 유출이다.

원자력발전소와 같이 극도의 안전을 요하는 건축물의 경우는 내진설계에도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후쿠시마 원전은 전력 공급 중단으로 냉각펌프의 작동이 중지되고 이 때문에 과열된 핵 연료봉이 녹아 방사능이 유출됐으며, 이때 발생한 다량의 수소가 산소와 반응해 폭발한 것이다.

1995년에 있었던 고베 대지진 당시에도 인근 원자력발전소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으며 그 안정성을 입증한 바 있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관리 소홀과 무리한 수명 연장으로 대형 사고를 불러오게 된 것. 이는 첨단 내진설계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관리하고 운영해 가는 사람 또한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 사례라 볼 수 있다.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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