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8일 목요일

자연모방의 시대, 생체모방기술

자연에서 살아온 인류는 예부터 자연을 모방해 왔다. 작은 미생물에서 커다란 동물이나 기상작용 등 자연현상을 관찰해 생존에 활용해 온 것이다. 이러한 ‘자연모방’이 미래에는 갈수록 부각될 것이다. 산업화 과정을 통해 활용돼 온 기존 과학기술들이 보건 및 환경 이슈 등 지속가능성에서 많은 문제점도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자연적으로 선택되어 성능이 우수하며, 폐기물 발생이나 부작용도 최소화된 자연현상의 모방이 사회경제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2006년 9월 <타임> 잡지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발명품’인 유리판을 기어 올라가는 스티키봇(Stickybot)은 스탠퍼드대학에서 근무했던 김상배 박사(현재, 하버드대학 마이크로 로봇연구실 근무)가 개발했다.

스티키봇은 도마뱀붙이(Gecko) 발의 접착력을 모방한 것으로, 이 동물은 발가락당 200nm 굵기의 섬모를 무려 650만 개나 갖고 있으며, 반데발스 힘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유리판을 기어 올라갈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버클리대학 통합생물과 로버트 폴 교수에게서 시작됐으며, 도마뱀붙이 발의 접착력을 이용하는 ‘게코 테이프’를 버클리대학 기계공학과 오종호 박사와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서갑양 교수팀이 연구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유리 외에도 나무 등 울퉁불퉁한 표면을 올라가는 ‘라이즈 로봇(Rise Robot)’을 개발하고 있다.

동물, 식물 등 생명체의 기능·생체구조를 모방해 사람을 대신하거나 생체 일부를 보완·대체해 생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연구개발 분야를 ‘생체모방기술’이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지능’ 또는 미국의 ‘스마트’라는 개념과도 궤를 같이한다.

사람을 대신하는 분야의 대표적인 예는 로봇이다. 계단을 올라가거나 춤을 출 수 있는 균형감각을 지닌 로봇으로는 혼다의 ‘아시모’가 유명하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아이보(AIBO)는 1999년 소니가 개발했는데, 생활에 접근한 지능형 로봇이다. 서울대학교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KAIST 국방무인화기술특화센터, 건국대학교 신기술융합학과 등에서 파리로봇 등 초소형 비행로봇과 무인조정 지네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소금쟁이가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현상을 ‘초발수(super hydrophobic)’라고 한다. 이 현상은 연잎에서도 관찰된다. 독일 본대학교 식물연구소의 빌헬름 바르틀로트는 연꽃이 항상 깨끗한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977년 연잎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연잎 표면에서 많은 돌기를 관찰했으며, 이 돌기들이 연잎을 오염물질로부터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를 ‘연잎 효과(Lotus effect)’라 명명했다. 이러한 초발수 효과를 이용한 특수 페인트가 1999년 로터산(Lotusan) 브랜드로 생산되고 있으며, 본대학교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감시카메라 코팅용으로 연구하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나종주 박사팀은 핸드폰 기판에 사용하기 위한 처리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2세대에 진입한 생체모방기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 수영선수들이 전신 수영복을 입고 나온 이래, 전신 수영복은 수영계의 대세로 자리했다. 이 수영복은 상어의 방패비늘을 이용해 와류에 의한 속도 감소를 최소화한 것으로, 수영복을 개발했던 스피도 사와 NASA는 기능을 더욱 강화한 ‘레이저 레이서’를 개발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도입했다.


이와 같이 생체모방기술은 기능을 더욱 개선해 생체모방기술의 2세대에 진입했다. 박쥐의 초음파를 응용한 레이더는 1930년 독일과 영국에서 실용화됐고, 워싱턴대학과 바텔연구소를 중심으로 수중탐지기와 초음파 진단기기 등을 생산하는 클러스터가 형성됐다. 숲속을 다니는 동안 다른 동물의 눈에 띄지 않는 호랑이의 줄무늬를 이용해 군인들은 얼굴에 무늬를 그리거나, 군복과 자동차를 얼룩무늬로 위장한다.

2009년 미국 농무성 농업연구소와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은 토마토가 병든 것처럼 고령토 분말을 코팅해 토마토 질병을 일으키는 총채벌레(총채벌레가 일으키는 농업피해는 연 39억 달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장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은 북태평양 심해에서 살고 있는 발광 해파리의 형광단백질 유전자를 연구한 일본의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다.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의 곤충센터에서는 성호르몬(페로몬)을 따라 날아오는 누에나방의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과정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러한 연구에서 어떤 물질에 형광단백질을 부착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 자외선을 쪼여주면 세포 내에서의 생명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연구에 필요한 기초물질을 제공하는 데도 활용된다.

미래 전망과 과제

생체모방기술은 산업, 군사 분야를 넘어서 보건, 환경, 사회 분야 등 커다란 시장으로 확대될 것이다. 인구 고령화, 기후변화 등의 메가트렌드에 자연모방의 대세가 기여할 여지가 크다. 미래학자들은 미래 고령사회에는 ‘노인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는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기능이 약화된 조직이나 기관을 대체·보완하는 재생의학기술의 발달을 의미한다.


재생의학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줄기세포이며, 2005년도에는 우리가 주도할 기회도 있었다. 4개 염기 조합으로 구성되는 세포의 염색체 정보저장능력과 세포가 분열할 때 세포 내 정보도 실수 없이 복제되며, 뜨거운 열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려는 DNA 컴퓨터도 연구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사과와 인삼의 재배 적정지역이 강원도로 북상하고 있으며, 기존 재배지역에서 새로운 대체작목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민들레 같이 커다란 잎을 가지고 있으며 밀납으로 표피가 덮여 있어 물이 스며들지 않고 뿌리까지 흘러, 다른 식물보다 16배의 물을 수집·보관하는 ‘사막대황’이라는 식물의 특성을 활용해 온난화에 따라 증가되는 사막화 면적을 개간하는 세계적 과제에 도전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생체모방기술 연구개발은 단기적 가능성이 높은 산업화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적극적 사고로 기술·개념에 대한 원천에 접근하고, 새로운 더 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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