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0일 금요일

2000년간 풀지 못했던 작도(作圖)문제

수학에는 해결한 문제보다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 때문에 더 매력을 느끼는 상황이 왕왕 벌어진다. 다음 세 문제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 무려 2000년 이상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너무나도 유명한 문제들이다.

‘주어진 원과 같은 넓이를 가지는 정사각형 만들기’ ‘주어진 정육면체의 두 배 되는 부피를 가지는 정육면체 만들기’ ‘주어진 각을 삼등분(三等分)하기’.

그런데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제약조건이 있으니, 반드시 눈금 표시가 없는 직선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야 하며 다른 도구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주어진 조건에 알맞은 선이나 도형을 그리는 것을 작도(作圖)라 한다.


도대체 그리스인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쓸데없는 제약을 가해 보다 편하고, 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대체로 수학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태도에 비추어 설명하는 것이 꽤 그럴싸하다.

직선자는 기하학의 직선에, 컴퍼스는 기하학의 원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한 물리적 대응물이다. 전반적으로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기하학을 단지 직선과 원, 두 개의 도형에 대한 고찰로 제한하고자 하였고, 그 밖의 도형도 이 두 개의 도형으로부터 추론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원뿔도 이와 같이 환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원뿔을 잘랐을 때 발견되는 포물선, 타원, 쌍곡선 등도 하나의 평면이 원뿔을 통과함으로써 발생하는데, 이 때 평면과 원뿔이라는 도형도 실제로는 모두 하나의 움직이는 직선에 의하여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인이 기하학을 이와 같이 직선과 원에 한정시키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 결과 기하학을 단순하고 조화로운, 그래서 미학적으로 매력적인 학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그들의 희망사항을 투영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그럴 듯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미화하였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그렇지만 눈금이 없는 자와 컴퍼스의 제약을 설명하면서 이보다 더 깊은 인내를 요구하는 대목이 있으니 다름 아닌 플라톤의 주장이다. 그는 “위의 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더 세련되고 복잡한 도구를 도입하는 것이야말로 나와 같은 철학자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육체적 기술을 필요로 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는데 “만일 그 이외의 다른 도구를 사용한다면 기하학의 유용성은 옆으로 제쳐지고, 파괴된다. 왜냐하면 신이 사용하였던 기하학을 그런 식으로 적용하면 기하학을 이데아의 세계로 한껏 고양시켜 영원하고 영적인 사고에 대한 이미지로 채색하는 대신에, 그것을 다시 (보다 저급한) 감각적 세계로 환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글쎄다. 분명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좀 심한 것 같다. 다른 도구를 사용한다고 해서 감각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감각적 세계의 심미화는 오히려 곧바로 영원하고 영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지름길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 저세상에 가 있는 플라톤과 논쟁에 빠지고 싶지 않으니 여기서 멈추자. 그 대신 이와 같은 주장에 반기를 든 새로운 주장으로 대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수학에서의 증명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작품으로, 기하학의 어떤 명제를 증명한다는 것은 주어진 명제를 처음에 설정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공리 수준까지 추론하여 이들 공리(公理)처럼 자명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의 공리는 유클리드의 공리를 말하는 것으로 ‘두 점을 연결하는 직선은 오직 하나다’ ‘같은 것에 같은 것을 더하면 같다’(a=b일 때 a+c=b+c) 등과 같이 자명한 사실들을 말한다.

따라서 눈금이 없는 직선자와 컴퍼스만을 이용해야 하는 제약하에서 이루어지는 작도는 결국 역으로 추론하여 자명한 유클리드의 공리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인 셈이다. 만약 자와 컴퍼스 이외의 도구를 사용하여 작도하면, 주어진 명제는 결코 유클리드가 설정한 다섯 개의 공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클리드의 눈에, 아니 고대 그리스인의 눈에 그것은 결코 증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리스인은 자와 컴퍼스를 강조했던 것이다.

위의 세 문제는 결국 작도 불능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니 그것은 작도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해결 과정이 유클리드가 설정한 다섯 개의 공리로 추론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도구를 사용해서 작도를 하고 싶다면, 새로이 설정한 다른 주춧돌 위에서 새로운 빌딩을 건축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섯 개의 공리는 어느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참이다. 따라서 이들 공리로부터 추론되는 모든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오늘날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이들 공리를 타당한 것으로 가정한다면, 이들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도 타당하다.”

위의 세 가지 작도 불능 문제는 그리스에서도 꽤나 인기가 있었나 보다. 태양은 뜨겁고 빨갛게 달궈진 돌멩이에 지나지 않다거나 매년 발생하는 나일강의 범람은 상류 근처의 산에 있는 눈이 녹아서 발생하는 것이고, 일식과 월식은 달과 지구가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주장을 펼친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는 너무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태양이 신이라는 것을 부정한 자신의 이론 때문에 불경죄로 얼마 동안 아테네에서 감옥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을 작도하느라 시간을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꽤나 유명한 문제였던 것 같다.

뛰어난 그리스 수학자들의 거듭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은 결국 해결되지 못했다. 그 이후 2000년 동안에도 해결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882년에야 마침내 이 문제들은 주어진 조건하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주장하는 아마추어 수학자의 행렬이 어느 나라에서나 끊이지 않고 있어 전문 수학자들마저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작업은 모래성 쌓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 혹시나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괜한 헛수고는 하지 말기를.

그러나 우리는 2000년 동안 이 유명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던 수학자들의 집중력, 엄격성, 인내심 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사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들은 전혀 가치를 찾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컴퍼스와 자에만 의존한단 말인가? 조금만 더 복잡한 도구를 사용한다면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에 대한 도전은 지적인 도전을 충족시키고 싶다는 억누를 수 없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순수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동안 공들였던 그들의 노력이 단지 수포로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산삼을 캐러 다니던 사람이 종종 황금을 발견한 것과 같은 일이 수학사에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반사였다. 이들의 역사는 결코 실용적이지 못한 그리스인을 비난하는 것이 커다란 잘못임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수학의 역사는 소위 실용적인 사람들이 이루었던 것보다 이런 몽상가들이 그 발전에 훨씬 더 많은 공헌을 하였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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