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0일 금요일

부분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프랙탈 이론’

물리학자 갈릴레이는 근대 과학을 열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에다 검증 가능한 실험정신까지 겸비한 과학의 발판을 굳건히 마련했다. 물리학자 뉴턴은 그걸 이어받아서 고전 역학을 당당히 완성했다.

뉴턴의 학문은 결정론을 대변한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화살의 비행 궤도와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의 낙하 궤도를 정확히 예측한다. 화살과 원숭이가 몇 초 후 어느 위치에 있을지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몇 시간 후, 며칠 후의 인공위성과 우주선의 궤도를 결정해준다. 운동 법칙의 이러한 놀라운 특성을 간파한 뉴턴은 더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자연 현상의 초기 조건을 완벽하게 알기만 하면 그 이후의 변화는 별 어려움 없이 예측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뉴턴의 결정론이다.

▲ 가장 큰 나뭇잎을 이루는 잎이 또 다른 나뭇잎으로 이뤄져 있다. 이 과정이 무한 반복되는 프랙탈의 전형적인 그림.
결정론은 만병통치약일 줄 알았다. 자연 현상의 미래는 물론이고, 초기 상태만 완벽하게 주어지면 사회 현상의 변화무쌍함도 감히 예측 가능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았다. 뉴턴 결정론의 자신만만함과 호언장담은 20세기 초 양자론이라는 현대물리학의 큰 기둥을 만나면서 흔들렸다. 원자 내부라는 미시 세계로 들어가자 자연 현상의 완벽한 예측은 원천적으로 무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다 보니 사회 현상 쪽으로의 접근은 더 더욱이나 요원한 일로 여겨졌으나,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과학자 만델브로(Benoit Mandelbrot)가 프랙탈(Fractal)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프랙탈 이론은 혼돈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이론이다. 만델브로는 해안선에서 프랙탈 이론의 영감을 얻었다. 만델브로는 굴곡이 심하기로 악명 높은 영국의 해안선 길이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면서 측정의 잣대가 무엇이냐에 따라 해안선의 길이가 현저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거인과 개미가 영국의 해안선을 걸으며 길이를 재고 있다. 거인의 보폭은 개미와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해안선이 일직선으로만 곧게 뻗어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거인과 개미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이지 길이 측정이라는 결과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해안선이 구불구불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보폭이 짧은 개미는 들쭉날쭉한 해안선의 세세한 곳까지 일일이 다 거쳐서 걸어가야 하는 반면 거인은 어떤가. 개미의 걸음걸이론 한참을 돌고 돌아서 가야 했던 길을 단번에 성큼성큼 걸어갈 수가 있다. 해안선을 걷는 상황이 이렇게 판이하다 보니 개미의 입장에선 100여킬로미터나 되었던 거리가 거인에겐 채 10여미터도 되지 않는 엄청난 이격이 생긴다.

만델브로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아내었다. 거인과 개미가 지난 해안선의 구부러짐은 거시적으론 동일하지 않지만, 두 해안선 사이에 유사한 자기닮음이 깔려 있다는 걸 간파해낸 것이다. 즉 거인이 걸은 해안선의 형태 일부를 떼어내서 확대해보면 개미가 걸은 해안선과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모양이 계속 반복되며 이어지는 자기닮음현상을 프랙탈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프랙탈이란 세부 구조가 전체 구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현상이다. 만델브로는 프랙탈이라는 용어를 라틴어의 ‘불규칙한 조각으로 쪼개고 부수는’ 뜻을 가진 단어 프랙투스(Fractus)에서 따왔다고 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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