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영화에서 스테레오까지, 소리는 진화했다
사람은 오감 중에 시각에 의존하는 생물이다. 눈앞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영상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다른 감각이 상대적으로 무뎌진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제2, 제3의 감각을 자극하도록 극장이 진화하고 있다. 카메라 시야에 맞춰 의자가 흔들리거나 대형 팬을 이용해 극장 안에 바람을 불어넣어 촉감을 자극하는 것. 그리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음향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영화의 음향은 꾸준히 진화해왔다. 1927년 알 졸슨의 ‘재즈 싱어’가 무성영화를 유성영화로 바꾸는 데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다. 그 뒤 19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스피커 두 대를 이용해 소리에 입체감을 주는 스테레오 방식 음향이 등장했다. 스테레오 음향은 점점 진화해 왼쪽 앞, 중간, 오른쪽 앞, 오른쪽 뒤, 왼쪽 뒤 방향의 5개 채널과 저음을 보강하기 위한 서브 채널인 우퍼까지 포함해 5.1채널로 발전했다. 미국 돌비사가 개발했으며, 대부분의 극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향 시스템이다. 앞뒤 좌우를 꽉 둘러싼 스피커 덕에 극장 좌석에 앉으면 소리로 감싸인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천장에서 떨어진다
최근 여의도 CGV의 사운드X 상영관에서 영화 ‘전설의 주먹’을 봤다면 깨달았을 지도 모른다. 극중에서 황정민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맞는 장면이 있는데 빗소리가 그냥 들리는 것이 아니라 황정민이 맞는 것처럼 ‘머리 위’에서 들린다. 국내 벤처 기업이 개발한 ‘소닉티어 오디오’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지금까지 스튜디오에서 음향을 만들 때는 현장에서 녹음한 음과 새롭게 추가하는 음을 2차원적으로 배치하는 데 그쳤다. 자동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간다면 현장에서 녹음한 소리를 바탕으로 왼쪽 스피커에서 소리를 크게 냈다가 점점 소리를 줄이고, 오른쪽 스피커를 키우는 방식이다. 관객 주위를 둘러싼 스피커를 이용해 사방에서 소리를 들려줄 뿐 소리가 진짜 입체로 들리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5.1채널에 머물러 있던 음향 시스템을 국내 벤처 기업인 소닉티어에서 한 단계 도약시켰다.
소닉티어 오디오는 3D로 ‘움직이는 소리’를 만든다. 구체적으로는 음향 제작 단계에서 소리에 공간상의 위치 정보인 3차원 좌푯값을 지정한다. 그런 뒤 좌표에 따라 소리가 이동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스크린의 오른쪽에서 자동차가 튀어나오면 소리도 실제로 스크린 오른쪽 아래에서 튀어나오도록 할 수 있다. 설명만 읽어서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예시를 하나 더 들어보자.
스크린 한 가운데서 연기하던 배우가 야구공을 배트로 쳐 객석을 향해 공을 날렸다. 3D 영화로 보고 있었다면 공이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였을 터다. 이 때, 기존의 음향 시스템은 앞쪽에 있는 스피커를 이용해 배트에 맞는 소리를 내고, 앞에서 뒤로 가면서 공이 날아가는 소리를 만든다. 어느 좌석에서 들어도 같은 소리가 난다.
소닉티어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조금 다르다. 왼쪽 좌석에 앉은 사람은 실제 공의 궤적처럼 오른쪽 귀에서 공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오른쪽 좌석에 앉은 사람은 왼쪽 귀에서 공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스크린에서 객석까지의 실제 공간을 기준으로 소리를 좌표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극장에서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들리게 할 수는 없다. 극장은 어느 좌석에서나 동일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3차원 음향 시스템은 가수의 공연을 재현하거나, 영화가 단순 3D를 넘어 완전한 입체 영상이 될 때, 관객으로 하여금 극한으로 실제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올 여름 기대작, 3D 음향으로 무장한다
여름을 앞두고 어마어마한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영화들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 선두에는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익숙한 김용화 감독의 신작 ‘미스터고’가 있다. 허영만 화백의 만화 ‘제7구단’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고릴라다. 아시아 영화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3D 입체 캐릭터로, 무려 주연이다. 4년 전 시작된 프로젝트로, 모든 작업 과정을 국내 기술로 해결하느라 올해야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 감독은 내친 김에 음향까지 최신 국내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전세계 극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돌비사의 5.1채널 시스템이 아닌 소닉티어의 3D 음향을 채택한 것. 취재 차 찾은 덱스터 스튜디오는 한창 음향 기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올 여름, 소닉티어 시스템이 있는 스크린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화면에서 시원하게 뻗어나오는 야구공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배우와 감독이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세계로 진출하는 것은 이미 흔한 일이 됐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 나은 영상과 음향으로 작품을 빛내고, 관객들에게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학기술이 있다. 흑백 무성 영화에서 시작해 3D 입체 영상과 음향으로 무장한 영화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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