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흩날리던 지난 1월 16, 17일 중력파 국제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던 서울대 연구공원 강당을 찾았다. 중력파 연구의 역사를 짚어보고,
현재 연구 현황과 앞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검출 기술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였다. 대표적인 중력파 검출기인 라이고(LIGO)와
버고(VIRGO)의 연구진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눴다.
현재 중력파 발견에 대한 기대치는 높다. 미국과 유럽에서 운영하고 있는 레이저 간섭계 검출기의 감도가 점점 높아져 마침내 중력파 발견을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형목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라이고와 버고의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 몇 년 안에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도 중력파를 검출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력파의 역사는 거의 1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질량이 있는 물체는 시공간을 구부린다. 질량이 클수록 구부러지는 정도도 크다. 이때 물체의 위치가 바뀐다면 시공간도 바뀐 위치에 맞게 모양이 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공간이 일렁이면서 중력파가 생기는 것이다.
중력파가 아직 검출이 안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중력파는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 전자기파와 같은 다른 파동은 물질과 상호작용을 해서 이를 이용해 관찰할 수 있지만, 중력파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중력파는 세기가 너무 작다. 중력파가 시공간을 일렁이게
만들면 거리의 변화가 생기는데, 그 정도가 태양 반지름이 수소 원자 하나 크기만큼 변하는 수준으로 작다. 그래서 엄청나게 큰 질량을 지닌 물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중력파를 검출하기 어렵다.
이 작은 거리 변화를 과학자들은 어떻게 측정하려고 할까. 중력파 검출 연구의 선구자는 미국의 물리학자 조셉 웨버였다. 1960년대에 웨버는 알루미늄 원통과 압전소자(압력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로 ‘웨버-바’라는 중력파 검출기를 만들어 실험했다. 중력파가 지나가면 원통이 진동하고, 이 진동으로 생기는 미약한 전류를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1968년 웨버는 그동안의 실험 결과를 종합해 중력파를 검출했다고 발표했지만,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이은 재현 실험에서는 중력파를 검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력파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가 드러난 건 몇 년 뒤였다. 1974년 미국의 물리학자 러셀 헐스와 조셉 테일러는 쌍성을 이루고 있는 중성자별을 발견했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서 8시간마다 한 바퀴씩 서로 공전했다.
정밀하게 관측한 결과 두 중성자별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공전주기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중력파가 나오면서 그만큼 에너지를 잃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는 일반상대성이론으로 계산한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헐스와 테일러는 이 공로로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서 다른 방식의 중력파 검출 계획이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쓰는 검출기는 길이가 수백 m~수 km에 달하는 진공 터널 두 개로 이뤄져 있다. 두 터널은 한 점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터널이 만나는 지점에서 레이저 빔을 동시에 두 터널로 쏜 뒤 거울에 반사시켜 돌아오게 하면 간섭무늬가 생긴다.
이때 중력파가 지나가면 터널의 길이에 변화가 생겨 간섭무늬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이를 이용해 터널 길이가 변하는 정도를 측정하는 원리다. 이형목 교수는 “실제로는 간섭무늬로 거리를 알아내기 어렵다”며 “그래서 일부러 거울을 미세하게 움직여 항상 빛을 상쇄시켜 어둡게 한다”고 설명했다. 거울이 움직이는 정도로 측정해 터널의 길이 변화를 알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거울이 중력파가 아닌 외부의 진동에 움직이지 않게 막아주는 장치가 매우 중요하다.
이 방식을 쓰는 검출기로는 미국의 라이고, 이탈리아의 버고, 독일의 지오600(GEO600)이 있다. 라이고와 버고는 2014~2015년 완료를 목표로 업그레이드 중이라 현재는 지오600만 유일하게 가동하고 있다.
이들은 기본 원리가 똑같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터널의 길이는 미국의 라이고가 4km로 가장 길다. 버고는 3km고, 지오600은 600m다.
터널이 길면 감도가 좋다. 버고와 지오600은 거울의 진동차폐기가 뛰어나다. 지오600은 터널 길이가 600m에 불과함에도 고주파에서는 감도가 라이고에 육박한다. 반대로 라이고는 터널이 길어서 중파와 저주파에 강하다.
검출기가 워낙 민감한 장비라 잡다한 진동은 중력파 검출에 큰 방해가 된다. 지난해 6월 지오600을 방문했을 당시 기자를 안내한 피터아우프무스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은 지오600 입구에 들어서자 곧바로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지진이나 자동차 진동은 물론 크고 짙은 구름이 지나가는 것도 실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지의 검출기가 협력해서 동시에 관측해야 한다. 심지어 라이고는 미국에만 두 곳에 있으며, 인도에도 하나 더 지을 예정이다. 가브리엘라 곤잘레스 라이고 과학협력단 대변인은 “터널이 길면 감도가 좋지만, 터널 하나로는 잡음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력파는 우주에서 오지만 잡음은 지역에 따라 다르므로 세계 여러 지역에 있는 검출기의 자료를 비교하면 잡음을 걸러낼 수 있다.
검출기 여러 대가 협력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중력파가 날아온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검출기가 한 대면 우주 어디에서 중력파가 날아오는지 알 수 없다. 검출기가 여러 대 있어야 각 검출기에 중력파가 도착한 시각 차이를 이용해 위치를 계산할 수 있다.
라이고와 비고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각각 어드밴스트 라이고와 어드밴스트 버고로 거듭날 예정이다. 곤잘레스 대변인은 “더 강한 레이저와 더 정교한 진동차폐기로 감도를 10배 향상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드밴스트 버고 역시 감도가 10배 높아진다.
감도가 10배 높아지면 10배 더 먼 곳의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다. 공간으로 따지면 세제곱이므로 1000배나 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중력파를 찾을 수 있다.
이 정도의 감도로도 작은 천체에서 나오는 중력파는 검출하기 어렵다. 은하는 질량이 크지만, 부피가 커서 강력한 중력파가 나오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쌍성을 이루는 중성자별 혹은 블랙홀이다.
이들이 서로 공전하다가 충돌하면 강력한 중력파가 나오는데, 이를 검출하려는 것이다. 이교수는 “공간이 1000배 늘어나면 이런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며 “목표 감도를 달성하면 반경 약 200Mpc(메가파섹, 1pc=3.26광년) 안에서 중력파 신호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중력파를 찾는 걸까. 일단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파 예측이 정확한지 검증할 수 있다.
중력파천문학도 시작된다. 중성자성이나 블랙홀이 서로 충돌할 때 생기는 중력파의 종류에 따라 구조나 질량을 파악할 수 있다.
블랙홀끼리 충돌해 내는 강한 중력파를 검출하면 그곳까지의 거리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이교수는 “현재 1a형 초신성의 밝기가 일정하다는 가정 하에 초신성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데,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으면 더 정확한 거리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우주론에서 우주팽창 속도를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이라 매우 중요하다.
우주배경복사처럼 빅뱅 때 생긴 중력파를 측정하려는 계획도 있다. 이론에 따르면, 빅뱅 이후의 인플레이션(급격한 팽창) 모델에 따라 중력파가 달라진다. 이 중력파를 측정할 수 있다면 어떤 인플레이션 모델이 맞는지, 현재 모델 중에 맞는 게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
중력파가 발견된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이같은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더 성능이 뛰어난 차세대 검출기를 계획하고 있다.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검출기로는 지하에 건설할 ‘아인슈타인 망원경’과 우주 중력파검출기가 대표적이다. 아인슈타인 망원경은 유럽의 중력파 연구 기관이 협력해 계획하고 있는 검출기로, 땅의 진동을 피하기 위해 지하 100m에 설치한다. 터널의 길이는 10km로 늘어나 감도가 더욱 좋아진다. 라이고나 버고 등과 달리 터널 세개가 삼각형을 이루는 모양이다. 이론상으로는 우주 어디에서 블랙홀이 충돌해도 그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추진했던 우주 중력파검출기는 진동을 피하기 위해 반대로 우주에 설치한다. 리사(LISA)라고 불린 이 검출기는 인공위성에 실린 세 대의 검출 장치로 이뤄져 있다. 각 검출기는 서로 500만 km 떨어져 있다. 우주이기 때문에 따로 진공 터널을 만들 필요가 없고, 길이가 길어서 주파수가 낮은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유리하다.
대신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검출 장치 사이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강력한 레이저가 필요하다.
거대한 장치를 인공위성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야 하며, 전력 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리사는 예산 문제로 당분간 실행이 불투명하다. NASA와 ESA는 현재 리사를 바탕으로 규모를 축소한 우주 중력파검출기를 계획하고 있다. 카미오카 광산에 ‘카그라(KAGRA)’라는 중력파검출기를 건설하고 있는 일본도 2027년 발사를 목표로 우주 중력파검출기 ‘데시고(DECIGO)’를 준비하고 있다.
한편, 레이저 간섭계가 아닌 원자 간섭계를 이용한 방법도 차세대 검출기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레이저 대신에 원자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원자 간섭계 중력파검출기는 수평이 아닌 수직 진공 터널을 이용한다. 원자는 레이저와 달리 지구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수직으로
위를 향해 쏜다. 원자끼리의 경로 차이에 따라 생기는 간섭 무늬를 관측해 중력파를 검출하는 것이다. 거울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진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떤 과학자들은 물질의 파동인 물질파를 이용하는 방법도 제안하고 있다. 이 역시 물질파 사이의 경로 차이로 생기는 간섭 무늬를 이용한다.
과학자들의 예상대로 몇 년 안에 중력파가 검출된다면 차세대중력파 검출기 사업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중력파검출기는 대규모의 부지와
인력, 비용은 물론 고출력 레이저, 진동차폐, 극저온 등의 분야에서 최신의 공학 기술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국제협력이 필수다. 이미 미국과 유럽, 일본, 호주 등이 협력해 연구하며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9년부터 국가수리과학연구소 (NIMS),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서울대 등으로 구성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라이고 과학협력단에 참여하고 있다. 주로 검출기에서 나온 신호 자료를 처리하는 연구를 한다.
신호에는 환경이나 장치 자체에서 나오는 온갖 가짜 신호가 섞여 있어 여기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려면 수학적 이론이나 알고리즘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2015년 어드밴스트 라이고와 어드밴스트 버고가 가동을 시작하면 중력파 검출 연구는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잊지 말고 소식에 귀를 기울여보자. 노벨상이 탄생할 바로 그 순간을 놓치면 아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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