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4일 토요일

일부 학원 부정행위에 美유학 수험생들 날벼락

[SAT 5월시험 취소 파문]
올 2월 동남아서 문제 유출로 강남 유명 어학원 수사 후폭풍
美대학 준비하던 많은 학생들, 한밤중 전격 통보에 우왕좌왕


지난 30일 새벽 2시쯤, 미국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해 온 국내 고3 학생들에게 이메일이 한 통씩 왔다. 발신자는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주관하는 비영리 민간기관 칼리지보드(www.collegeboard.org) 였다.

"우리는 한국 검찰로부터 일부 한국 어학원들이 SAT 시험 정보를 빼내서 돈벌이한 혐의가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았습니다. 현재 우리는 여러 대학에 '한국에서는 올해 5월에 SAT 시험이 없다'고 통보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잠든 시간, 큰 혼란이 벌어졌다. 국내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미국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주로 외국어고·국제고·자사고 학생들이다. 숫자로 보면 연간 수백~2000명에 불과하지만, 입시에 쏟는 노력·집념·기대치는 어느 집단보다 맹렬하다.



 지난 2010년 SAT 문제 유출로 수사를 받은 학원 사진
지난 2010년 SAT 문제 유출로 수사를 받은 학원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은 홍콩·일본 등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 5월에 시험을 볼 수 있는지, 한국에서는 5월에만 SAT 시험을 볼 수 없는지 6월 이후에도 줄곧 볼 수 없는지, 인터넷을 뒤지고 서로에게 전화하느라 잠을 설쳤다. 일부 학부모들은 칼리지보드 미국 사무실에 격한 항의 전화를 걸었다.

이날 SAT 전격 취소 조치에 대해 입시 전문가들은 "결국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지난 2월 SAT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서울의 몇몇 유명 어학원을 압수수색했다. 이들 어학원은 동남아가 한국보다 시차가 빠르다는 점에 착안해, 아르바이트생들이 동남아에서 SAT를 치르게 한 다음 각자 맡은 부분을 외우거나 몰래 적어 나오게 해서 시험지를 재구성, 한국으로 문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SAT 학원가에는 은밀한 소문이 돌았다. "평소 SAT 2400점 만점에 1600점 맞던 아이가 1월 SAT에서 별안간 만점 가까이 받았다더라", "시험지가 돌았는데, 가격은 1인당 최대 800만원이었다"는 내용이었다.

SAT 시험 취소는 이런 와중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앞서 2007년에도 한국에서 SAT 문제가 유출돼 한국 수험생 900여명의 점수가 모두 취소 처리된 적이 있다.

20년 이상 유학원을 운영해온 A씨는 "한국, 정말 자성(自省)해야 한다"면서 "지난 2월 SAT 유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도 일부 극성스러운 엄마들은 '저런 나쁜 학원에 가면 안 되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저런 학원에 가야 우리 애도 점수를 잘 맞는다', '다음엔 저기 등록해야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문제는 이기적이고 뻔뻔한 소수 때문에 정직한 대다수가 피해를 보는 점이다. 그리고 나라 전체가 '거짓말쟁이 한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학부모 B씨는 "어제오늘 혼란을 겪은 것도 화가 나지만, 정말 속상한 건 따로 있다"면서 "시험지를 돈 주고 사본 건 다른 사람들인데, 정직하게 공부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벌을 받게 생겼다"고 했다.

윤정일 민족사관고 교장은 "국격(國格)까지 떨어뜨린 행위"라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외국 대학이 한국 학생들을 선발할 때 얕잡아 보고 색안경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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