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박상민 박사(36)는 클라우드 기술로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컴퓨터공학 전문가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눌러앉은 그는 블로그에 ‘한국에서는 초기 벤처의 모험에 뛰어들기 쉽지 않아 돌아가지 않았다’라는 글을 써 많은 이공계생들의 공감을
샀다. 그는 “정형화된 인재를 요구하는 대기업 이외에 갈 곳이 없는 한국의 산업구조에서 창조적인 인재가 남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집계하는 두뇌유출 지수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급 두뇌가 빠져나가는 국가군에
속한다. 특히 이공계 석박사급 인재의 해외 유출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공계 석박사들은 대부분 미국 유학을 선호하고, 일단 해외로
나가면 국내에 돌아올 생각을 접는다. 우리나라 연구 환경이 후진적일 뿐만 아니라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대우가 선진국에 비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과학재단(NSF)이 2008년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의 국제 유동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과학기술보건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인 가운데 절반 이상(54%)이 미국에 남아 있고 44%만 한국으로 돌아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2006년부터 3년마다 조사하는 ‘이공계 인력 유출입 실태조사’를 보면 이공계 대학원생은 2006년
1만866명이 해외로 나갔으나 2011년에는 1만2240명이 나가 연평균 2.4% 증가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자문관을 지낸
한양대 배영찬 교수(화공생명공학부)는 이공계 석박사 유출이 심한 이유로 세 가지를 꼽았다. 학생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취업할 곳이 적으며, 우리 연구 문화가 창의성을 살리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배 교수는 이 중에서도 연구 문화 개선이 가장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가 이공계 기피 현상을 막겠다며 연구비나 연구시설만 늘리는 것, 즉 돈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은 연구 문화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과학기술대학에서 외국인 수장을 대거 영입해 폐쇄적인 과학계 문화를 바꾸고 엄격한 위계질서를 타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유출입 실태조사에서 유학생들이 밝힌 이유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미국과 일본에 유학 중인 이공계
석박사들은 ‘학문 기술 수준이 높아서’ ‘금전적 조건이 좋아서’라는 응답과 더불어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직장 문화와 연구 환경
때문에’라는 응답을 많이 했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돌아올 곳이 없는 것도 문제다. 광주과학기술원 임신혁 생명과학부 교수는
“외국에서 공부한 박사후연구원이 얻을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 중에서 바늘구멍 같은 교수직을 제외하면 정부출연 연구소와 기업 연구소가 있다.
정부출연 연구소는 인원이 동결돼 있고 기업체는 연구 분야가 조금만 달라도 뽑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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