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월요일

지나침을 경고하는 '계영배(戒盈杯)'와 래퍼곡선


공자(孔子)의 언행을 기록한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유좌지기(宥坐之器)’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그곳에서 속이 빈 채 기울어져 있는 그릇 하나를 발견했다. 공자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그릇이 기울어진 까닭을 궁금히 여기자 사당지기가 대답했다. “환공이 살아생전 곁에 두고 보던 그릇입니다. 속이 비어 있으면 기울어지고, 속을 적당히 채우면 바로 서지만, 가득 채우면 이내 엎질러지고 맙니다.” 사당지기의 말을 들은 공자는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세상 무엇이든 가득 채우면 넘치거나 엎어지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 또한 이와 같으니 항상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공자가 말한 유좌지기의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의미하는 바와 같다. 즉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으므로, 마음이 지나친 욕심으로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좌지기’에 담긴 뜻은 비단 중국인들에게만 교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도 ‘유좌지기’와 비슷한 그릇이 존재하고 있다. 절주배(節酒杯)로도 불리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바로 그것이다. ‘가득 채움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이름의 계영배는 조선후기 실학자였던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백원은 오늘날의 양수기와 같은 자승거와 때가 되면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을 만들었을 정도로 유명한 발명가였고, 우명옥은 ‘설백자기’로 명성을 떨쳤던 당대의 도공이었다. 이 둘은 각자의 과학지식과 도자기 빚는 기술을 활용해 잔의 70% 이상을 술로 채우면 술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리는 계영배를 제작했다.

가득채움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 속에 ‘사이펀(siphon)’이라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펀이란 기압차와 중력을 이용해 액체를 옮기는 관(tube)으로,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면 용기를 옮기거나 기울이지 않고 액체를 다른 용기에 옮겨 담을 수 있다. 계영배의 중앙에는 조그마한 기둥이 설치돼 있다. 이 기둥 안에는 거꾸로 된 ‘U’자 형태의 관이 들어 있는데, 이 관이 사이펀의 역할을 한다. 술을 관의 높이만큼 채우면 관 안의 기압과 위로 솟아오르는 술의 압력이 같아져 술이 밑으로 새지 않지만, 술을 계속 부어 높이가 관보다 높아지면 관 속의 술이 정점을 넘어 술잔 밑의 구멍으로 흘러내리게 되는 것이다. 한편 술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관 속에는 그만큼의 진공상태가 만들어진다. 이때 관의 안과 밖의 기압차가 서로 달라지는데, 이로 인해 관 속으로 계속 술이 빨려 들어가고 유입된 술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져 잔 속의 모든 술이 밑으로 흘러내리게 된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를 보면 주인공 임상옥이 계영배를 소유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임상옥은 인삼무역권을 독점해 재산을 모았고, 후에는 나라님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엄청난 부를 축적한 조선제일의 부자였다. 그런 그가 계영배를 소유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환공이 유좌지기를 곁에 두었던 것처럼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시시때때로 바라봄으로써 재물에 대한 욕심을 억제하고 권력을 탐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는 계영배가 단순히 과음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술잔이 아니라 지나친 욕심이 불러오는 폐해를 경고하고 절제의 미학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일깨워준다. 계영배가 주는 교훈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강조돼야 할 만고불변의 진리다. 따라서 환공과 임상옥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곱씹어 볼 만한 가치 있는 내용이며, 이는 조세제도를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부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Hankyung
과도한 조세의 부작용

과도한 조세가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경제학적 상식이다.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둬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면 국민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어나지만, 화폐수요도 덩달아 증가해 이자율이 상승한다. 이자율이 올라가면 대출에 대한 기회비용이 커져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감소한다. 이와 같이 정부지출의 증가가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현상을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하는데, 구축효과는 수요의 측면에서 관찰한 조세의 부정적인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는 조세가 수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세율에 따라 공급측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세율과 정부의 조세 수입 간에 계영배 속의 관과 같이 거꾸로 된 ‘U’자 형태의 관계(래퍼곡선)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 관계에 따르면 래퍼곡선은 ‘0’과 두 번 교차한다. 세율이 0%면 세금을 납부하는 사람이 없고, 100%면 소득의 전부를 세금으로 내야 하므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어 정부의 조세수입이 ‘0’이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영역에서는 최적세율인 t에 도달할 때까지 세율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의 조세수입도 증가한다. 하지만 t에서 극대화된 조세수입은 이후 세율이 높아져도 조세수입은 감소하게 된다. 래퍼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세율이 경제주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즉 높은 세율로 근로의욕을 상실한 노동자들이 노동공급을 줄이고, 마찬가지 이유로 기업의 투자가 감소해 생산활동이 위축되고 조세수입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계영배가 주는 교훈을 정부가 되새겨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계영배가 정부에 주는 교훈

래퍼곡선은 세율이 높은 나라가 세율을 낮추면 국민들이 경제활동에 대한 유인을 가지게 돼 조세수입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최적세율 t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또한 감세로 실질소득이 증가한 사람들이 소비를 증가시키면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경제학계에서는 래퍼곡선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결국 문제는 세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율이 국민경제의 공급과 수요측면 중 어느 쪽을 견인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래퍼곡선의 옳고 그름은 세율을 받아들이고 이를 경제활동에 반영하는 경제주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 래퍼곡선(Laffer curve)

세율과 정부의 조세 수입 간의 관계를 설명한 곡선으로,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에 의해 주창됐다. 래퍼는 일정 수준의 세율까지는 정부의 조세 수입이 증가하지만, 세율이 적정수준을 초과하면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 의욕이 감소해 조세 수입도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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