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적으로 창조경제 또는 창의인재와 관련해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융합’이라는 키워드다. 학교와 교사, 학생 모두 융합교육 또는
STEAM 융합인재교육이라는 용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니 융합이 얼마나 강력하게 교육을 이끌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역사적으로 융합의 대가들을 살펴보면 수없이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비롯해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학자들은 많은데 그중에서 필자는 약 25년 전 어느 과학의 날 행사에서 들은 일본의 과학자 유카와 히데키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융합에
대한 기발한 생각과 창의성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일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 박사는 그의 수필집
'旅人(여인)'에서 노벨상을 받게 된 중간자 원리를 발견한 동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네 살 때부터 외할아버지로부터 사서(四書 :
論語, 孟子, 大學, 中庸)와 효경(孝經), 사기(史記) 등을 뜻도 모르고 완전 암기식으로 배웠고, 그 덕택으로 중학교 때는 노자, 장자와
당나라 시를 애독하게 되었다. 미국에 건너가 물리학을 연구하면서 어느 날 잠을 못 이루다가 문득 어렸을 때 외웠던 이백(李白)의 시가 떠올랐다.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의 숙소(宿所)이고 광음(光陰)은 백대(百代)의 과객(過客)이다.’ 이 시에서 나는 시공(時空)과 소립자(素粒子)의
상호규정이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쳤고 그것이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된 중간자 원리 발견의 동기이다."
라고.
또한 동양의 고전인 장자의 우화에서 중간자 가설의 뿌리를 찾아냈다고 하는데 바로 장자의 응제편에 나오는 ‘혼돈사칠규’라는
이야기로 내용은 이렇다.
"남해의 임금 숙(枙)과 북해의 임금 홀(忽)이 중앙의 임금 혼돈(混沌)의 땅을 찾아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이들 두 임금은 그 대접에 보답하기 위해 상의했다. '사람에게는 모두 7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쉬는데 혼돈에는
그것이 없으므로 구멍을 뚫어주자.'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은 매일 혼돈의 얼굴에서 하나씩의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런데 칠 일째 마지막 구멍이
뚫어지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남해란 밝은 세상, 북해는 어두운 세상을 말하는데 상반되는 상대를 일컫는 것이고,
숙은 재빠르게 나타나는 것이며 홀은 재빠르게 사라지는 출몰의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은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뜻하고, 혼돈은
아직 미분화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은 원자란 것들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의 중심은
원자핵인데 이 원자핵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1930년대 당시에는 쉽지 않았다. 물리학계에서는 양전기를 띤
입자(또는 알갱이) 즉 양성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좁은 원자핵 안에 모여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 여러 주장을 하고 있었다. 즉 과학자들은
원자핵 속의 양성자들이 양전기를 띠고 서로 미는 척력이 작용하고 있음에도 원자핵이 깨지지 않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때 유카와 히데키는 바로 장자 이야기에서 그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원자핵 안에는 알갱이들이 득실거리며
쉴 새 없이 공 받기 놀이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마치 야구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선수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며 워밍업을 하느라 공을 주고받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 공이 양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공을 받은 알갱이는 양성자가 되고 공을 던지고 난 후의 알갱이는 곧 중성자가
된다는 착상을 하였다.
그러니까 양성자니 중성자니 하는 것은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며 항상 상대적인 상태이고, 공은 알갱이들 사이를
숙이나 홀처럼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면서 서로 연결해주는 중신아비 구실을 한다고 생각하고, 이 조절체 즉 중간자가 있기 때문에 폭발을
막을 것이라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바로 유카와 히데키가 1934년에 내세운 중간자(meson)이론의 구상이다.
이 기발한
발상에 대해 당시의 과학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그 후 미국의 앤더슨 교수가 우주선(宇宙線)을 측정하다가 이 중신아비의 공, 즉 중간자를
발견했다고 하며, 이것을 파이 중간자 즉 파이온이라고 부른다. 결국, 1949년에 유카와 히데키는 일본 최초로 영예의 노벨상을 타게 된다.
아직 쿼크라는 소립자가 제안되기 전인 그 당시에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이 어떻게 좁은 원자핵 내부에서
폭발하지 않고 모여 있을 수 있느냐를 설명한 것이 중간자 이론인데 중간자가 핵력을 매개해서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고 이 중간자의
유력한 실체로 확인된 입자가 바로 파이온이라는 것이다. 이후에 이론은 더 발전해서 머리 겔만 등이 ‘쿼크’와 ‘글루온’ 이론을 내놓게 되고
현재는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글루온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중간자 이론은 낡은 이론이지만 당시 기준에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으며, 핵력의 정체로 힘을 매개하는 입자가 작용한다는 이 아이디어는 실험을 거쳐 유도한 것도 아니고 관찰을 해본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장자의 ‘혼돈사칠규’란 우화에서 계시를 받아 찾아낸 창조물이다. 정확한 통찰이고 이후에 더 정확한 이론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를 했던 중간자
이론은 바로 인문학 속에서 과학을 캐낸 융합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융합이란 무엇일까?고전과 과학, 인문학과 자연과학,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소통과 공감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융합이라 할 것이다.
‘융합과 창의성’이 이
시대의 화두이고 융합적 사고가 과학의 창의성을 통해 새로운 발전으로 거듭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융합적인 생각의 깊이를 더욱 키울
필요가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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