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1일 목요일

"물의 기원, 혜성 아닐 수도"… 과학계 大혼란

'로제타 탐사선'이 보내온 자료 유럽 연구팀 사이언스誌 게재

혜성 물 분자의 중수소 비율 지구 물보다 4배가량 높아
소행성과 혜성 충돌로 물이 지구 밖에서 왔다는 과학계 유력學說 오류 가능성 생명체는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이 때문에 외계 생명체를 찾는 연구에서도 물이 있는 곳을 먼저 찾는다. 그렇다면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수십억년 전 원시 상태의 지구에 혜성(彗星)이 충돌하면서 혜성의 물이 지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해 왔다. 하지만 로제타(Rosetta) 우주탐사선이 우주 과학자들을 큰 혼란에 빠트렸다.

로제타는 유럽우주국(ESA)이 지구에 있는 물의 기원을 찾기 위해 10년 전 혜성 탐사용으로 발사한 무인 탐사선이다.

캐서린 알트웨그 스위스 베른대 물리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유럽 공동 연구진은 10일(현지 시각)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로제타의 분석 결과 혜성의 물은 지구와 크게 달랐다"고 밝혔다.

지구의 물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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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는 2004년 발사돼 10년간 64억㎞를 날아간 끝에 지난달 13일 탐사로봇 필레(Philae)를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착륙시켰다.

로제타는 지난 8월 접근 과정에서 혜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 속에서 물 분자를 포획했다. 그 물 분자를 분석해 최근 보내온 메시지는 "지구에 있는 물의 기원이 혜성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로제타는 혜성으로부터 1000㎞·100㎞·50㎞ 거리에서 세 차례 물 분자를 포획해 '질량분석기'로 분석했다. 질량분석기는 물 분자를 쪼개 원자로 나누고, 전기장과 자기장을 가해 휘어지는 정도를 측정해 무게를 알아낸다. 물은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로 구성돼 있는데 수소 원자는 다시 일반적인 수소와 무거운 중(重)수소로 나뉜다. 두 종류의 수소 모두 물을 만들지만, 수소와 중수소의 비율은 지구와 혜성, 소행성 등에서 각기 다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중수소 비율이 일정한 만큼, 과학자들은 67P 혜성의 물이 지구와 비슷하다면 지구의 물이 혜성에서 왔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봤다"면서 "쉽게 말해 물의 족보(族譜)를 비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로제타의 분석에 따르면 67P 혜성의 물에서 중수소의 비율은 지구의 물보다 4배가량 높았다. 기대와 달리 혜성의 물은 지구의 물과 족보가 달랐다. 태양계 내 혜성들은 수소와 중수소 비율이 비슷한 만큼 혜성이 지구 물의 기원이라는 학설 자체가 힘을 잃게 된 것이다. 물의 기원을 다시 찾아야 하는 과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혜성에 집중돼 온 우주 연구 방향도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약 46억년 전 뜨겁게 달아올랐던 원시 지구가 식는 과정에서 수증기가 발생, 비가 내리면서 물과 바다가 생겼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당시 원시 지구의 온도에서는 어떤 종류의 물도 남아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이 지구 밖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43억~44억년 전 식기 시작한 원시 지구에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이 충돌하는 '대충돌기'에 물이 옮겨져 왔다는 학설이 유력하게 여겨졌다. 특히 2009년 미국항공우주국이 혜성에서 채취한 먼지에서 생명체 탄생의 근원이자 단백질의 주요 성분인 아미노산까지 발견하면서 혜성이 물과 생명 탄생의 근원이라는 과학계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로제타의 주요 임무 역시 혜성의 물 분자를 분석해, 지구상의 물과 비교하고 아미노산을 찾는 것이었다.

이태형 충남대 천문과학과 교수는 "탐사로봇 필레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확실해지겠지만, 물의 기원이 혜성이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 "상당수 과학자가 충격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물의 기원 연구 방향이 소행성 등으로 급격히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필레는 배터리가 방전돼 태양광 충전을 진행하고 있지만, 재가동될지는 미지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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